박쥐의 세계: Tolga Bat Hospital
박쥐는 수의학과를 졸업한 나에게도 미지의 동물이다. 박쥐에 관해 아는 것은 광견병을 전파시킬 수 있고, 포유류라는 정도다. 대부분 과일이나 곤충을 먹고 흡혈하는 박쥐는 일부라는 것도 알지만 박쥐 하면 자동적으로 드라큘라가 떠오른다. 주인공이 사람의 피를 빨아먹어야 사는 박찬욱 감독 영화 제목도 '박쥐'다. 박쥐는 무서운 영화에서 불길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역할을 맡는다. 주인공 또는 곧 죽을 조연이 길을 잃고 동굴을 찾게 되면 푸드덕 소리를 내며 등장한다.
이런 을씨년스러운 이지미를 뒤집어쓴 박쥐가 날아다니는 호주의 하늘은 어색하기만 했다. 그것도 아주 큰. 새인가 싶어 바라보면 아니었다. 어디선가 조커가 나쁜 짓을 하고 있고 곧 배트맨이 출동할 분위기다. 큰 박쥐 무리를 가까이서 처음 본 곳은 케언즈였다. 거리를 걷다 보면 만나게 되는 큰 나무가 있는데, 거기에 큰 박쥐들이 매달려 있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얼굴이 얼굴이 어찌나 귀엽던지! 큰 눈망울을 가진 털북숭이 강아지 같았다. 그래서인지 이름도 '날아다니는 여우(Flying fox)'였다.
박쥐가 궁금해 '톨가 박쥐 병원(Tolga bat hospital)'에 갔다. 케언즈에서 차로 1시간 반 정도 걸리는 곳이었다. 이 병원은 1990년, 진드기 마비증으로 수백 마리의 박쥐가 피해를 입었을 때 박쥐 구조를 시작했다. 그로부터 수많은 박쥐를 구조, 치료하고 어미를 잃은 새끼들을 키워 야생으로 돌려보내고 동물원에서 은퇴한 박쥐들을 돌봐왔다. 현재는 여러 야생보호단체, 정부, 방문자들에게 받는 기부금과 자원봉사자들의 활동을 통해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중이다.
가기 전에 이 곳에서 봉사를 해볼까 싶어 병원에 가서 광견병 항체가 검사를 받았다. 몇 년 전에 맞았던 광견병 예방 접종이 다행히 몸에서 제 역할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스케줄이 맞지 않고 비용도 많이 들어 설명회만 참석하기로 했다. 한 시간 정도 걸리는 이 설명회는 최대 8명 정도만 사전 예약을 해야만 들을 수 있었다. 조사해보니 생태관광 인증도 받았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인증제도가 있는지 찾아봤다. 한국산업환경기술원에서 주관하는 환경성적표지 인증 프로그램이 있었다. 이런 제도가 널리 알려지면 환경과 동물에 피해가 가지 않는 여행 프로그램을 선택하기도 수월해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디네이터 제니 맥클린이 우리를 작은 박쥐들이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백발의 짧은 머리에 키는 작지만 다부진 인상이었다. 박쥐 소리를 잡아내는 기계(bat detector)를 보여주었다. 귀로는 들리지 않았지만 박쥐가 소리를 내면 화면의 선이 움직여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박쥐가 스스로 소리를 내 물체에 부딪쳐 되돌아오는 음파를 받아 위치를 파악하는 것을 반향정위(ecolocation)라 한다. 작은 박쥐류(소익수아목, microchiroptera)는 주로 이 방식으로 곤충을 찾아 먹고, 큰 박쥐류(대익수아목, megachiroptera)는 시각과 후각으로 열매를 찾아 먹는다.
유령 박쥐는 작은 박쥐류에 속하지만 먹이를 찾을 때 반향정위뿐 아니라 시각도 활용한다. 큰 발 박쥐는 발이 커서 어류, 양서류, 곤충 등을 잡아먹을 수 있다. 동영상을 보니 박쥐가 물수리처럼 멋지게 물고기를 낚아채는 모습이 정말 멋졌다.
넷지오 동영상(물고기 잡는 박쥐)
https://www.youtube.com/watch?v=wgLHUNBWR58
작은 박쥐들은 가까이서 자세히 보니 역시 못생겼지만 귀엽고 정이 가는 외모였다. 왜 귀여운 면모를 찾아야만 조금이라도 관심이 갈까...못생겼다는 것도 인간의 기준이 아닌가...박쥐에 선입견을 가진 것이 미안했다.
톨가 박쥐 병원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