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에카(Ekka) 동물 축제
에카는 8월 중순에 열흘 동안 호주 퀸즐랜드주 브리즈번에서 열리는 농축산업 박람회다. 퀸즐랜드에서는 그중 하루를 공휴일로 지정한다. 그만큼 큰 행사다. 호주는 단어를 호주식으로 줄여서 말하곤 하는데 에카(Ekka) 역시 박람회(Exhibition)의 약자다. 1876년에 처음으로 시작한 에카는 1919년 스페인 독감, 1942년 제2차 세계대전, 2020년 코로나 유행 때를 제외하고는 약 140년간 매년 열렸다.
초창기에는 농업과 산업 분야 기술을 선보이는 자리였다. 1964년부터 양, 염소, 소 등을 데리고 나오는 동물체험장이 생겼다. 지금은 물고기, 개, 고양이, 말 등을 전시하는 경연 대회가 열리기도 한다. 한쪽에는 놀이기구와 먹을거리가 많아 호주의 큰 축제로 자리 잡았다.
에카에 있는 동물들이 어떤지 보려고 브리즈번 쇼그라운드에 갔었다. 동물체험장은 인기가 많아 줄을 서야 했다. 십분 정도 기다렸다. 들어가기 전에 안내 동영상이 나왔다. 동물을 만지기 전후 손을 잘 씻자는 내용이었다.
한 사건이 떠올랐다. 미국의 한 페팅주(동물을 만질 수 있는 동물원, Petting Zoo)에서 남매가 동물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 후 3살인 여동생이 죽고 5살인 오빠는 중태에 빠졌다. 대장균 감염으로 인한 용혈성 요독 증후군 때문이었다. 독소로 인해 적혈구가 파괴되어 신장 손상을 야기하는 심각한 병이다.
이는 '햄버거병'이라는 이름으로 국내에서도 주목을 받았다. 2016년에 맥도널드에서 햄버거를 먹은 후 복통을 느끼고 중환자실에 입원해 결국 신장장애 2급 판정을 받았다.
원인은 아래와 같다.
물이나 음식이 동물의 분변으로 오염되었을 경우
덜 익은 고기
살균되지 않은 유제품 또는 우유
닦지 않은 더러운 도마 사용
세척하지 않은 과일이나 채소
동물과 접촉
에카 홈페이지를 보니 동물과 접촉하면 이 질병에 걸릴 수 있음을 명시해놨다. 사람들이 이를 찾아봤는지 모르겠지만 안내 영상을 유심히 보지는 않았다. 드디어 문이 열리고, 한 번에 40명이 넘는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갔다. 이미 안에 동물들과 사람들이 빽빽했다.
주로 양이 많았고 소, 돼지, 닭, 오리 등도 보였다. 입구에서는 동물 먹이를 팔았다. 사람들은 저마다 먹이를 사서 양들에게 갔다. 나는 먹이를 사지 않고 동물들과 사람들을 관찰했다. 나에게도 양 몇 마리가 다가왔지만 먹이가 없는 것을 알고 바로 고개를 돌렸다.
그중 새끼 양 한 마리가 눈에 띄었다. 새끼는 어미를 따라다니며 젖을 먹으려고 했다. 그런데 아이들은 그런 새끼의 입에 자꾸만 풀을 들이댔다. 아이들은 새끼를 따라가고, 새끼는 어미를 따라가고, 어미는 사람들이 주는 먹이를 먹으려고 자꾸만 자리를 옮겼다. 새끼는 젖을 물 수 없었다.
다른 새끼 양 한 마리는 사람들을 피해 구석진 곳에 앉아 있었다. 사람들은 울타리에 손을 넣어 그런 양을 만졌다. 한쪽에는 동물들이 쉴 수 있는 곳이 있었는데, 사람들의 손길이 닿지 않는 제일 먼 곳에 거위와 닭들이 몰려 있었다. 그들의 두려움이 느껴졌다.
그때 함께 있던 새끼 돼지 한 마리가 밖으로 나갔다. 많은 사람들이 그 돼지에게 우르르 몰려들었다. 돼지는 도망쳤다. 한 아이는 달려가는 돼지에게 걸려 넘어졌다.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그 옆에는 큰 돼지들이 한 데 모여 누워있었는데, 모두 자는 중이었지만 사람들은 들어가서 돼지를 만졌다. 이렇게 폭력적이고 일방적인 관계가 있나. 정말 극성이었다.
새끼 오리와 병아리를 만질 수 있는 곳도 있었다. 새끼들은 유리 상자 속에 있다가 꺼내져 사람들의 무릎 위 수건에 올려졌다. 두 손으로 병아리를 감싼 사람들의 모습은 행복해 보였다. 병아리의 마음을 알기는 어려웠지만 무척 피곤하리라는 것만큼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동물을 만지는 행위가 우리의 정서 함양에 도움이 된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런 상황에서 느낄 수 있는 정서에 '공감'은 분명 없었다.
그 후로도 자료 조사 차 두어 번을 더 갔다. 갈 때마다 달라지는 건 없었다. 언젠가는 새끼 돼지들을 가지고 경주하는 모습을 봤다. 돼지들은 상자에서 나와 앞으로 힘차게 달렸다. 땡볕에 너무 더운 날이었다. 하루에도 여러 번 달렸을 돼지들을 생각하니 일사병에 걸리지 않을까 걱정됐다.
경주가 끝나고 주최 측에서 미끄럼틀을 설치했다. 돼지 한 마리가 경사진 계단을 올라온 다음 물이 담긴 수조로 떨어졌다. 물에서 나와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오던 돼지는 바닥에 굴러 떨어져 나뒹굴었다. 관객들로부터 뜻 모를 탄성과 웃음이 섞여 나왔다. 돼지는 바로 몸을 일으켜 준비된 먹이를 먹었다. 사회자는 '돼지가 구르는 걸 좋아한다'라고 말했다.
몇 번을 굴렀을까. 돼지를 그렇게까지 웃음거리로 만들었어야 했나. 내가 지불한 입장료가 그들의 호주머니로 일부 들어간다고 생각하니 더 이상 에카에 갈 수가 없었다.
혼란의 소용돌이 같은 그곳을 나와 인파 속으로 들어갔다. 동물을 이용하는 인간들의 축제에 신이 날 수 없었다. 축제의 화려함이 동물들의 삶을 가리고 있는 듯했다. 예전에 방문했던 동물원이 떠올랐다. 그곳에서도 병아리를 만질 수 있었다. 마침 직원이 있어 나는 이 병아리들이 크면 어디로 가냐고 물었다. 직원은 놀랍게도 '죽인다'라고 솔직히 대답해주었다.
사람들은 막연히 자신이 '체험'이라는 미명 하에 만나는 동물들이 오랫동안 편안한 삶을 살다 죽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동물들은 수가 많고 몸집이 커지면 살 공간이 부족하다. 더 이상 귀엽지도 않다. 이용가치가 없어지면 팔아버리는데, 더 좋은 곳으로 가기보다는 더 열악한 곳으로 가기 마련이다. 이런 사실을 동물을 만지는 사람 앞에서 하지는 않겠지만, 묻지 않기 때문일지 모른다. 우리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페팅주 피해 사례
https://secure.mediapeta.com/peta/PDF/PettingZooFactsheet.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