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남섬 여행(1): 오로코누이 생추어리
열흘 정도 뉴질랜드 남섬을 여행했다. 거의 모든 곳이 영화 ‘반지의 제왕’ 촬영지처럼 보였다. 끝없이 펼쳐진 녹색 땅과 양들 사이를 가로질렀다. 고개를 숙이고 풀을 뜯고 있는 양들은 마치 초록색 카펫 위에 하얗게 뿌려진 소금 같았다.
이 나라에 사람은 없고 양뿐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뉴질랜드 인구는 447만 명, 양은 3,000만 마리나 된다고 하니, 도시에 가지 않고서야 사람 구경하기 힘든 게 당연했다.
운전을 하던 중, 차에 치여 죽은 동물들을 많이 발견했다. 작은 개인가 싶어 차를 길가에 세우고 내려 확인하니 포섬(Common brushtail possum)이었다. 가만, 호주에서는 많이 봤는데, 뉴질랜드에도 포섬이 살던가.
‘주머니 여우’라고도 하는 이 유대목 포유류는 1830년대부터 호주에서 뉴질랜드로 들어왔다. 모피를 벗겨 쓰고 고기는 식용으로 수출했다. 뉴질랜드 야생 전역으로 퍼진 포섬은 1980년대가 되자 7,000만 마리까지 늘었다. 포섬은 우결핵(Bovine tuberculosis)이라는 질병을 전파하기 시작했고, 목축업은 큰 타격을 입었다.
포섬의 영향력은 뉴질랜드 생태계까지 뻗어나갔다. 뉴질랜드에만 서식하는 희귀 새인 키위 새끼를 잡아먹기 시작한 것이다. 키위는 성체가 되면 포섬을 이길 수 있지만 새끼 때는 쉽게 공격당한다. 성체가 되어도 안심할 수 없다.
외부에서 도입된 토끼를 죽이기 위해 들여온 족제비, 사람이 키우는 개, 고양이가 가장 큰 천적이다. 천적이 거의 없던 뉴질랜드에서 키위의 날개는 이미 퇴화했기 때문에 쉽게 도망칠 수 없었다. 이러한 무차별적인 공격으로 현재 남은 키위 개체수는 5만 마리 정도다. 그리고 매년 약 6%씩 줄어들고 있다. 키위는 모두 5종이 있지만 그중 두 종은 100마리밖에 없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다행히 뉴질랜드에서는 70개 이상의 동물원과 보호단체가 정부와 함께 키위 보전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키위가 야생에서 살아남을 확률은 매우 낮기 때문에 야생에서 알을 가져와 인공부화시킨다. 그리고 새끼가 천적에 대항할 수 있을 만큼 크면 울타리가 쳐진 자연보호구역에서 적응 후 야생으로 간다.
그중 오로코누이 에코생추어리(Orokonui Ecosanctuary)에 키위가 있다고 해서 찾아갔다. 가이드 워크를 신청했다. 생추어리는 아주 컸다. 높이 1.9m의 울타리가 천적의 유입을 막고 있었다. 쥐새끼 한 마리도 들어올 수없을 만큼 촘촘했다. 망 사이사이가 움직이지 않도록 용접까지 했다.
위로는 전책을 달아 고양이나 포섬이 넘어올 수 없었다. 땅 아래에는 40cm 너비의 그물을 깔아 어떤 동물도 땅을 파고 들어오지 못했다. 울타리를 따라 묻은 수로 내부에도 그물을 쳐 외부 생물의 유입을 막았다.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가방 안에 외부 동식물이 없는지 확인받았다.
네부에도 확인 장치를 50m마다 설치했다. 작은 상자처럼 생긴 장치 안에는 땅콩버터를 넣어두고 입구에 잉크를 묻혀두었다. 그러면 잉크를 밟고 들어가는 동물의 발자국이 찍히고, 이를 두달마다 확인한다. 개와 함께 돌아다니며 천적의 냄새와 배설물 흔적을 찾기도 한다.
오로코누이 생추어리에서는 이런 철저한 대비 덕에 키위를 안전하게 지킬 수 있다. 1.2kg이 되어 충분히 자신을 방어할 수 있을 때 뉴질랜드 웨스트랜드에 있는 보호구역으로 보낸다고 한다. 가이드에 따르면 14마리까지 보호할 수 있다. 다만 야행성이고 사람을 피해 돌아다녀서 실제 이곳에서 키위를 보기는 힘들다고 했다. 키위를 보진 못했지만 사람에게 익숙해지면 좋지 않으니 잘 숨어있는 게 다행이라 생각했다.
키위는 키위 버드라이프 파크(Kiwi Birdlife Park)에서 볼 수 있었다. 이곳은 키위 알을 인공부화하는 곳으로, 다섯 마리의 키위가 야생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키위를 위해 어둡게 해 놓은 공간으로 들어갔다. 빛과 소리에 민감한 키위를 위해 관람객 모두 조용히 해야 했고 사진도 찍을 수 없었다. 눈이 어둠에 적응하자 키위가 긴 부리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먹이를 찾는 모습이 보였다. 키위는 유일하게 부리 끝에 콧구멍이 있는 새다. 뛰어난 후각을 가지고 있어, 부리로 땅을 헤집으며 냄새로 먹이를 찾는다.
키위는 생각보다 컸다. 키는 35~46㎝로, 뒷모습은 둥글둥글하니 축구공처럼 보였다. 색은 키위 껍질색이었다. 마치 조류와 포유류의 중간 정도 되는 동물 같았다. 타조의 친척인 키위는 날지 않기 때문에 다른 새들과 깃털이 다르다. 다른 새들은 미늘(barb)이 있는 깃털이 서로 연결돼 매끈한 반면, 키위 깃털은 미늘이 없어 서로 연결되지 않는다. 마치 포유류의 털처럼 덥수룩하고 복슬복슬해 보였다. 며칠 안 감은 머리카락 같기도 했다.
키위버드라이프파크 사육사가 키위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키위는 여러모로 일반 조류와 달랐다. 다른 새들은 뼈 일부에 공기가 있어 가벼운 반면, 키위는 뼈에 공기가 없이 골수로 차서 무겁다. 체온도 38℃로 다른 새들에 비해 낮다. 가장 놀라운 점은 크기가 몸의 20%나 되는 큰 알을 낳는다는 점이었다. 전시돼있는 엑스레이 사진을 보니 엄청 큰 알이 키위 몸속에 있었다. 인간으로 치면 네 살짜리 아이를 낳는 셈이다.
영상에서 뛰는 모습을 보니 곧 넘어질 것 같았다. 마치 바지를 채 올리지 못하고 뛰는 것 같아 펭귄처럼 보이기도 했다. 빠르게 뛰지도, 날지 못하고 큰 알을 낳다 보니 인간과 함께 유입된 천적을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매주 27마리의 키위가 죽는다. 태어난 지 6달 이하의 키위 새끼가 보호구역이 아닌 야생에서 살아남을 확률은 5%도 안 된다. 보호구역은 그야말로 파괴된 자연에게 주는 심폐소생술이다. 현재는 뉴질랜드의 사육-번식(captive-breeding) 프로그램 덕에 매년 150마리가 야생으로 돌아간다. 생존확률은 50-60%로 높다. 인간의 개입으로 파괴된 야생이 또 다른 인간의 개입으로 회복 가능하다는 희망을 보았다.
동물들이 돌아갈 곳이 없어 동물원에서 살아야 한다고들 한다. 그런데 돌아갈 그곳이 얼마나 보호받고 지켜지고 있을까? 눈앞의 이익만을 쫓아 동물을 들여오고 개발 논리로 생태계를 파괴해 건물을 짓거나 양을 키웠다. 당장은 눈에 안 보일지 몰라도 이런 무분별한 인간의 장악력은 사람과 동물 모두에게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현재 우리가 가진 소중한 자연을 지키려는 노력이 우선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