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남섬 여행(2): 더니든로열알바트로스센터
뉴질랜드 남섬 오타고 반도 끝으로 갔다. '타이로아 헤드'라고 불리는 이곳에서 알바트로스를 볼 수 있다고 해서다. 바다와 맞닿아 파도가 들이닥칠 듯한 도로를 달렸다. 언덕 꼭대기에 도착해 내리자 강한 바람이 느껴졌다.
'알바트로스를 띄워 줄 바람이란 모름지기 이래야지 '
알바트로스는 바람과 한 몸이 되어 난다. 제대로 된 바람을 만나면 3m의 큰 날개로 바람을 타고 날갯짓 하나 없이 몇 시간을 하늘에 떠있다. 아래를 내려다보는 검은 눈은 우주의 진리를 꿰뚫어 보는 듯하다. 곧게 뻣은 부리에서는 기상이 느껴진다. 사람들은 이런 알바트로스를 하늘의 조상이 보낸 새라 하여 '신천옹'이라 불렀다.
마치 신을 영접하듯 '로열 알바트로스 센터'로 들어갔다. 미리 예약해둔 가이드 투어 티켓과 한국어 안내서를 받았다. 안내서에는 '보전을 위해 1967년 설립된 비영리단체 '오타고 반도 위원회'가 운영하는 곳'이라 적혀 있었다.
투어 전 전시 공간을 둘러봤다. 한쪽 구석에 낚싯줄에 걸려 죽은 모습 그대로 박제된 알바트로스가 있었다. 세계 자연보전 연맹이 지정한 멸종위기종인 살빈알바트로스(Salvin's Albatross)였다. 어선들이 생선 조각이나 오징어를 미끼로 사용하는 데, 이를 먹다가 낚시 바늘에 걸려 물에 빠져 죽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했다. 하늘에서 보인 웅장한 모습은 허망하게 사라지고 비참한 죽음이 박제되었다.
옛 선원들은 땅이나 갑판에 내려오면 큰 날개와 물갈퀴 때문에 뒤뚱거리는 알바트로스를 바보새라 불렀다. 프랑스의 시인 보들레르는 뱃사람에게 잡혀 괴롭힘 당하는 알바트로스를 자신의 처지에 비유했다.
자주 선원들은 심심풀이로 붙잡는다
거대한 바다새인 알바트로스를
아득한 심연 위를 미끄러지듯 나아가는 배를
태평스레 뒤따르는 길동무를.
선원들이 갑판 위에 내려놓자마자
창공의 왕자(王者)는 서툴고 창피해하며
그 크고 하얀 날개를 배의 노처럼
가련하게 질질 끌고 다닌다.
날개 달린 이 여행객은 얼마나 어색하고 무기력한가!
조금 전까지도 멋있던 그는 얼마나 우습고 추해 보이는지
선원 하나가 담뱃대로 그의 부리를 성가시게 하고
절뚝거리며 다른 이는 더 이상 날지 못하는 불구자를 흉내 내는구나!
시인은 폭풍우를 넘나들고 사수들을 비웃는
이 구름 속의 왕자(王子)와 비슷하다.
야유 속에 지상에 유배당하니
거인의 날개가 걷기조차 힘겹게 하는구나.
[네이버 지식백과] 알바트로스 (보들레르-저주받은 천재 시인, 2006. 7. 20., 이건수)
다행히 몇몇 사람들은 이 새의 고귀함을 알아봤다. 그중에는 더니든의 한 교사가 있었다. 전망대 앞에 '한 사람이 변화를 만든다'는 문구와 그의 사진이 보였다. 이 지역은 1890년대부터 북방로얄알바트로스(Northern Royal Albatross)가 찾아왔지만 보호되지 않아 번식지로 적합하지 않았다.
그는 평소 해양 조류에 관심이 많았고, 이 곳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했다. 결국 1938년부터 알바트로스들이 이 언덕에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우기 시작했다. 원래 적의 침입을 살피기 위한 전망대였던 이곳은 1970년대 초부터 새들의 안전한 서식지로 변모했다.
가이드를 따라 소수의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작은 전망대로 들어갔다.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알바트로스가 보였다. 알을 품고 있었다. 모두 숨죽여 그 모습을 관찰했다.
가이드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예전에는 새끼가 알을 깨고 나올 때쯤 파리가 냄새를 맡고 둥지 주변에 알을 낳아 피해를 입었다. 이를 막으려고 알바트로스 알에 라벤더향 화장실 세제를 뿌려 파리의 접근을 막았다고 했다.
파리뿐 아니라 족제비나 고양이도 알을 노리는지라, 때로는 알을 가짜 알과 바꿔서 인공부화한 후 부모에게 돌려보낸다. 이런 노력들로 멸종위기종인 북방로얄알바트로스는 가까스로 17,000마리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바트로스는 여전히 멸종의 바람에 올라타 있다. 전망대 안에는 교육 자료들이 있었는데, 그중에 칫솔과 장난감 등 플라스틱 쓰레기가 담긴 상자가 보여 가이드에게 물었다. 한 상자 안에 있는 모든 물건이 새끼 레이산알바트로스(Laysan Albatross) 한 마리에서 나온 것이라 했다. 200개가 넘었다.
알바트로스는 수면 위로 떠오르는 오징어를 먹는데, 기가 막히게도 이런 플라스틱 쓰레기가 오징어와 비슷해 보인다고 한다. 이를 먹은 알바트로스는 굶어 죽게 된다. '한 사람이 변화를 만든다'지만 여러 사람의 무관심은 하늘이 보낸 새에게 비극을 안겨줬다.
내가 쓴 플라스틱 칫솔이 망망대해를 떠돌다 알바트로스에게 먹히리라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우리가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행동들이 모이면 누군가에게 재앙이 될 수 있다.
개인의 실천도 중요하지만 이로써 무언가 깨달았다면 정부와 기업들의 변화를 요구해야 한다. 개인의 실천에만 기댈 게 아니라, 우리가 삶에서 자연스럽게 환경을 보호할 수 있도록 판을 다시 짜야한다.
우리가 죽고 난 후에도 남을 플라스틱 쓰레기들을 생산하지 말고, 대규모 어업으로 피해를 입는 해양생물들을 무시하지 말고, 환경친화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올바른 선택을 촉구해야 한다. 누군가의 이득을 위해 우리의 눈을 가린 장막을 걷어내야 한다.
일부 나라에서는 벌써 플라스틱 봉지 사용을 막았다. 우리나라에서도 의약외품에서 미세 플라스틱 사용을 금지했다. 늦었지만 이제 변화의 바람이 조금씩 불고 있다. 알바트로스가 희망의 바람을 타고 오래도록 날기를 바란다.
로열 알바트로스 센터 홈페이지 https://albatross.org.n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