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게야마 동물원의 쓸쓸함에 대하여
어째서 주목받지 못하는 동물원은 이렇게도 도가 지나치게 쓸쓸할까
아무도 관심가지지 않는 구석에 모인 외로움 덩어리같다.
누군가 바라보지만 언제나 외면당하는 동물들과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것 같은 직원들이 모여
음울한 분위기를 만든다.
아무리 밝은 색으로 설명판을 치장한다해도 정형행동을 하는 레서판다는 한없이 어둡기만하다.
기어오르지 못하게 벽에 덧대어 놓은 널판지, 시선을 길게 가로막는 철장, 자연미라고는 없는 시멘트 바닥이 모두 한가지 말을 한다. '이곳은 인간을 위한 곳이다' 아무리 그 안에 살아있는 동물이 있을지라도
도저히 야생과 하나된 경이로운 존재는 상상이 어렵다.
그 와중에 좋은 인상으로 남은 것은 기린을 마주하고 있던 직원들, 그리고 빈 공간으로 둔 북극곰 우리였다.
한 사육사가 타겟(훈련을 위한 긴 막대기)을 가지고 기린의 경정맥에서 피를 뽑는 훈련을 하는 중이었다. (이를 긍정강화훈련이라고 한다)
기린이 타겟 쪽으로 가도록 한 다음 바가지 안에 든 먹이를 보상으로 주었다. 그리고는 수의사가 와 목에 바늘을 꼽았다. 빨간 액체가 줄을 타고 나왔다. 채혈은 순식간에 끝났고 기린, 사육사, 수의사 모두 침착했다.
사실 피를 뽑기 위해 동물을 마취하고, 그러다 죽는 경우도 있다. 그 과정이 이렇게 평화롭게 끝날 수 있다는 사실.
북극곰 우리는 멀리서 봐도 하얗게 칠해 놓은 것이
분명 '얼음'이 있는 북극을 복사해 놓은 모양새였다. 우리는 때로 새빨간 거짓말에 아무 느낌도 없다. 모두가 거짓말을 해서인가?
북극곰은 조형물로 남았다. 내실까지 들어가 볼 수 있었다. 다른 동물을 채워넣을 수(물건 같지만 이렇게 말한다)있는데도 불구하고 비워둔채 과거의 역사를 보여주는 모습이 좋았다.
예전에 지었을 수록(아니 최근에 지었다하더라도) 동물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은 공간이 많다. 그저 인간의 편의에 맞춰 지었기 때문이다.
청소하기 쉽고, 동물을 볼 수 있는. 반대로 동물에게는 한없이 딱딱한 바닥에 자신의 모습이 언제나 노출되는 그런 곳이다. 하지만 더 많은 동물을 보여주기 위해 이렇게 적당치 않은 곳에도 동물들이 산다. 하긴 적당한 곳이 이런 동물원 안에 어디 있으랴. 그냥 살아야하니까 사는 것이다. 갇혀 있는 동물에게 선택의 폭은 한없이 좁다.
철장과 철장과 철장을 지나 쥐와 기니피그를 만질 수 있는 곳에 갔다.
물론 나는 만지지 않고 지켜보았다. 작은 쥐들은 모두 구석에 모여 손을 피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듯했고, 가니피그는 자기가 언제 먹힐지 몰라 멈춰버린 듯했다. 물론 나에게만 이렇게 보였고, 동물을 만지는 사람들, 대부분 아이들은 그저 귀여움에 사로잡혀 동물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있었다.
글쎄, 나는 이런 경험을 교감이나 체험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다.
동물원 방문은 언제나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삼키지도 못하고 뱉지도 못하는 현실이다.
...어쩌면 주목받는 동물원은 거짓말에 능하고, 주목받지 못하는 동물원은 그저 예전 그대로 남아있어 속내가 다 드러나 있을 뿐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