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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Y Aug 18. 2021

돌이킬 수 없는 길 위의 죽음

미국 그리즐리 & 울프 디스커버리 센터

  길가에 죽어있는 동물들 수를 세다 지쳐 그만두었다. 내가 차를 몰며 동물을 죽이지 않았다는 게 매우 드문 일로 느껴졌다. 여행을 하며 장거리 운전을 하다 보면 도로 위의 주검을 보고도 무디어지는 자신을 발견한다. 사람이 누워있다면 멈추겠지만 동물의 시체는 다들 그저 빠른 속도로 지나칠 뿐이다. 길가에 널브러지고 터지고 납작해진 사체가 너무 많아서. 슬퍼하기엔 갈 길이 너무 멀어서. 멈춰서 살펴볼 시간이 없어서. 


그 동물들을 잡아먹지는 않지만 죽일 수 있는 천적이 바로 우리가 타고 다니는 자동차와 도로다. 동물을 차로 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도로는 고의 없이 일어난 살해 현장이다. 하지만 무감각은 위험하다. 일부 운전자들이 의도적으로 핸들을 조정해 파충류를 밟고 지나간다는 보고가 있었다. '약육강식'이라는 말이 변명에 쓰이기도 한다. 나약한 존재에게 피해를 주고 죽이는 것을 어쩔 수 없고, 당연한 거라 여기게 한다. 생태계 순환을 거스르고 사는 인간에게 적용할 말은 아닐진대. 


도로 위의 사체를 먹으려고 모인 까마귀들이 보여 속도를 더 줄여본다. 까마귀들이 먹으면 다시 생명이 순환되기도 하지만 그러다 그들도 차에 치인다. 도로 위의 '장애물'이기에 도로와 야생동물을 관리하는 사람들이 사체를 수거해갈 것이다. 그렇게 많은 동물들이 다른 동물에게 먹히지 않고 세상에서 사라진다. 도로는 그때까지 동물들의 죽음을 보란 듯이 전시할 수밖에 없다. 때로 엘크같이 큰 동물과 부딪히면 차가 망가지거나 사람도 다칠 수 있지만 이 전쟁터에서 야생동물들은 거의 대부분 패배한다. 사실 '적'도 아닌데. 


그곳에서 살아남은 동물들, 그러나 야생으로 돌아갈 수 없는 동물들은 어디로 가야 할까?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을 나서니 이런 동물들이 살고 있는 디스커버리 센터가 있어 찾아갔다. 그리즐리라 불리는 북미 불곰과 회색늑대, 여러 맹금류, 유인타땅다람쥐, 북미수달이 구조되어 지내는 곳이었다. 


디스커버리 센터 전시관에는 박제와 골격 등을 전시하고 설명회를 통한 교육도 진행한다. 


모두 야생으로 돌아갈 수 없는 대신 이름을 얻었다. 검독수리 아퀼라는 트럭에 치였다. 맹금류들은 멀리 볼 수 있는 높은 곳을 좋아하지만 제대로 날 수 없는 아퀼라는 낮은 나뭇가지에 앉아 있었다. 옆 칸에 있는 흰머리수리 잭은 날개가 부러진 채 구조됐다. 다친 이유는 정확하지 않았지만 흰머리수리들은 도로 위의 사체를 먹다가 차에 치이는 경우가 많다.


아퀼라


하늘에 서 자유롭게 날았을 흰머리수리들

여기 있는 불곰들은 대부분 어미가 총에 맞아 죽었다. 국립공원에서 방문객들에게 너무 가까이 갔거나, 사람들이 키우는 닭을 잡아먹었거나, 도시로 들어가 쓰레기통을 뒤졌기 때문이다. 어미를 잃은 새끼들은 야생에서 먹이 찾는 법을 배우지 못해 또다시 사람 가까이 갔고, 결국 이곳에 왔다. 만약 다 자랐을 때 발견됐다면 어미처럼 총에 맞는 결말이었을지 모른다. 사람의 활동 영역이 곰들의 서식지까지 넓어지며, 이제 곰들은 자연사보다 이런 인간과의 충돌로 죽는 경우가 보통이다. 


먹이를 찾아 먹고 있는 불곰


야생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이제는 이곳이 집이다. 사실 야생동물들 에게는 피난처일 뿐, 진정한 의미의 집이 될 순 없다. 이곳의 동물들은 야생과 비교적 유사한 환경에서 살고 있었다. 자극을 위해 새로운 냄새를 묻혀주고 야생에서처럼 살아있는 물고기나 죽은 엘크 고기, 가죽과 뼈를 여기저기 숨겨 찾아먹도록 한다. 곰들은 시간에 맞춰 방사장을 바꾼다. 늑대들은 무리 별로 지낸다. 돌아갈 수 없기에, 최선의 환경을 마련해주고 남은 날을 야생동물로서 잘 살아가도록 하려는 마음이 느껴졌다. 


동면을 하고 있어 볼 수 없다는 설명판과 다양한 풍부화 및 교육 프로그램 


먹이를 숨겨주고 찾도록 하는 것은 가장 필수적인 풍부화다

다친 야생동물의 운명은 사실 누구에게 구조되어 어디로 가는지 따라 크게 달라진다. 일부 야생동물 구조센터나 동물원은 동물이 야생으로 충분히 돌아갈 수 있는데도 돌려보내지 않는다. 구조한 야생동물은 가능한 사람과의 접촉을 줄이고 빠른 시간 내 야생으로 보내 생태계에서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한다. 전시를 위해 다른 동물원으로 보내거나 계속 가둬두는 구조센터는 동물 모으기에 집착하는 애니멀 호더와 다를 바 없다. 


동물원은 다친 동물을 전시하는 것을 꺼리기도 한다. 새로운 동물을 구입하기보다, 몸이 온전하지 않아 야생으로 돌아갈 수 없는 야생동물을 돌보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주면 좋겠다. 미국 디트로이트 동물원에서 구조된 야생동물을 전시하는 모습을 본 적 있다. 설명판을 통해 그 동물들의 사연과 함께 사람들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알렸다. 이런 곳을 방문한 사람들은 인간의 행동이 동물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직접 눈으로 보고 해결책을 고민할 것이다.  


다만 야생동물들이 살아남아 더 큰 정신적, 신체적 고통을 겪는다면 안락사하는 것이 그 동물을 위해 옳은 일이다. 결정을 내리지 못해 고통만을 연장시키는 일도 없어야 한다. 


곰들은 2-3년간 어미에게서 생존에 필요한 지식을 배운다. 배우지 못하면 야생에서 살아남을 확률이 낮다. 센터 전시 박제.


자연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야생동물들은 날로 늘어만 간다. 인간 중심의 사회에서 그런 동물들의 존재를 알아채기란 쉽지 않다. 인간의 영향으로 죽거나 다치는 야생동물들의 삶에 무뎌지지 않도록 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 그러려면 돌아갈 수 없는 야생동물들이 자연과 가까운 환경에서 지낼 곳이 필요하고, 동시에 근본적인 원인을 없애야 한다. 자동차의 속도를 줄이고, 불필요한 도로를 만들지 않고, 파괴가 아닌 서식지 보호에 찬성하는 여러 방법이 있다. 


분명 달라질 수 있다고, 공존이라는 말이 공허하지 않을 수 있다고, 너무 늦지 않았다고, 도로 위에서 죽은 그리고 그곳에서 살아남은 야생동물들이 온 몸으로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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