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그랜드캐년 국립공원
드디어 그랜드캐년이다. 이름도 그랜드. '웅장하다'는 뜻이다. 그랜드 피아노에서 나오는 선율처럼 흐른 콜로라도 강물과 땅, 바위가 합작하여 만든 협곡이다. 그 안에 90종이 넘는 포유류와 440여 종의 조류, 수백 종의 곤충과 거미 등 많은 야생동물들을 품고 있다. 그간 국립공원들을 거치며 많은 야생동물들을 봤지만, 엄청난 사람들이 찾는 관광지이기에 솔직히 큰 기대는 없었다. 좋다는 풍경을 따라 여유를 즐기던 첫날, 입간판 하나가 눈에 띄었다. 'Hawk Migration Talk.' 라니, 야생동물 냄새다!
그랜드 캐년에 차를 타고 오면서 하늘에서 맹금류를 많이 봤다. 정확히 어떤 새일까 궁금했는데 잘됐다 싶었다. 공원을 순환하는 오렌지색 버스를 타고 다음날 야키 포인트로 갔다. 그곳에 수염이 덥수룩한 젊은 자원봉사자가 있었다. 매년 이 시기(9월 말이었다)가 되면 맹금류 수천 마리가 추운 북쪽에서 따뜻한 남쪽으로 이동하는데, 그랜드캐년이 중간 기착지였다.
이곳에는 곤충과 설치류 같은 먹이가 많다. 상승하는 온난 기류는 비행을 돕는다. 따뜻한 날에는 매가 날갯짓 없이 기류를 타고 400km를 이동한다. 덜 따뜻한 날에도 절벽에 부딪혀 올라가는 바람이 있어 에너지를 적게 쓰고 하늘을 날 수 있다고 한다. 추석명절에 뻥 뚫린 고속도로를 타고 휴게소에 들러 맛있는 음식을 먹고 고향 가는 기분 아닐까?
자원봉사자를 따라 덤불 사이로 들어갔다. 절벽 위에 서너 명의 사람들이 맹금류를 관찰하고 있었다. 때마침 하늘에 붉은꼬리말똥가리가 나타났다. 그들은 아이처럼 좋아했다. 빠르게 휙 날아가는 모습만 봐도 어떤 새인지 알아채는 전문가들이었는데, 바로 호크왓치인터내셔널 자원봉사자들이었다. 가을에 그랜드캐년을 지나가는 맹금류 수를 세고 자료를 수집하는 일을 한다. 이 포인트에서만 연평균 4800여 마리가 관찰된다고 한다. 현재는 19종의 맹금류가 그랜드캐년을 집이나 휴게소로 삼는다.
가장 많이 오는 손님은 줄무늬새매, 붉은꼬리말똥가리, 쿠퍼매다. 매, 물수리, 아메리카황조롱이, 검독수리도 온다. 이렇게 북미 하늘을 이동하는 맹금류의 존재는 100년 동안 알려져 있었지만 그랜드캐년 하늘 고속도로는 1987년에서야 주목을 받았다. 호크왓치가 1991년부터 2011년까지 관찰한 결과, 캐나다와 미국 서부에 걸쳐 그랜드캐년을 지나는 맹금류 수가 가장 많았다. 한 시즌에 10,000~12,000마리다.
맹금류를 관찰하는 이유는 생태계 상황을 전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다. 이런 척도가 되는 생물을 지표종이라 한다. 맹금류는 먹이 사슬 최상위에 있어 살충제, 서식지 파괴, 기후 변화에 급격한 타격을 입는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많이 알려진 DDT(Dichloro-diphenyl-trichloroethane)의 영향이다. 1960년대까지 살충제로 쓰인 DDT는 말라리아를 줄이는 역할을 했지만 먹이사슬 단계가 올라갈수록 몸에 고농도로 축적됐다. 흰머리수리, 매 등 맹금류의 몸에 쌓인 DDT로 알껍질에 칼슘이 부족해졌고, 결국 번식률이 떨어졌다.
미국 과학자 레이철 카슨은 이를 발견해 1962년 '침묵의 봄'이라는 역사적인 책을 냈다. 이로서 DDT가 인간에게 암을 유발할 뿐 아니라 생태계에도 큰 피해를 준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미국은 그로부터 10년이 지나 DDT 사용을 금지했고 맹금류 번식률은 다시 올라갔다. 레이철 카슨은 소리 없이 파괴되는 생명을 바라보는 눈을 우리에게 빌려주어 경종을 울렸다. 그 눈으로 그랜드캐년에서 하늘의 맹금류를 찾는 사람들이 있어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