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Arizona-Sonora Desert Museum
미국 위쪽에서 아래로 내려올수록 마치 한 나라안에 여러 행성이 들어서 있는 듯 풍경이 달라졌다. 먼지를 마시며 애리조나주 소노라 사막에 도착했다. 메마른 땅에 큰 키를 자랑하며 솟아있는 사과로 선인장(Saguaro)이 나를 내려다봤다. 이렇게 척박한 환경에서 적응해 살아가는 생명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언제나 놀랍다. 애리조나-소노라 사막 박물관으로 갔다. 소노라 사막의 동식물들을 집약해 놓은 곳이었다. 읽었던 책에서 칭찬을 많이 들었기에, 그곳이 바로 내가 보고 싶은 동물원의 이상향이길 바랐다.
박물관이라 이름 붙인 이 동물원의 큰 장점은 소노라 사막 생태계라는 단 하나의 주제를 다각도에서 심도 있게 배울 수 있다는 점이다. 원래부터 이 지역에 서식하는 동물들을 자연스러운 환경에서 보여준다. '이곳은 동물만 보여주는 동물원이 아닌 환경 그 자체로 이루어진 박물관이다.'라는 걸 말해주는 듯하다.
동굴 생태계를 재현한 곳에는 '고대 생명의 자연 박물관'이라고 쓰여 있었다. 동굴 내부는 어둡고 종유석을 만들어 놓아 진짜 같았다. 숲쥐가 동굴에 모아놓은 것들을 통해 이곳이 12000년 전에는 사막이 아니라 숲이었고, 한 때 샤스타땅늘보가 살았다는 내용도 다른 곳이 아닌 해당 현장에 대한 이야기라 더 관심이 갔다.
사람이 다니는 길 뿐만 아니라 동물이 살고 있는 전시장 내 식물들 모두 이 지역의 진짜 식물이었다. 가짜 식물도 있지만 만들어 이질감이 없었다. 동물을 가두는 '울타리'는 없는 것처럼 보였다. 자세히 찾아봤더니 죽은 선인장 모양의 구조물이 기둥 역할을 했다. 이 기둥 사이를 이어주는 얇은 그물은 신경 써서 보지 않으면 눈에 띄지 않았다.
다른 동물원들은 세계 주요 지역과 기후대를 한 동물원에 구겨 넣는다. 대륙별로 나누거나 열대우림, 사바나, 툰드라, 사막 등으로 구획한다. 하지만 이곳은 다르다. 1952년 이래 40년간은 다를 바 없는 동물원으로, 소노라 사막을 대표하지 않는 동물들 위주였다. 그런데 점차 사막 파괴 속도가 빨라지자 동물원은 결단을 내리고 지역 생태계인 소노라 사막을 보호하자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집중했다고 한다.
특히 사막 트레일이 인상 깊었다. 입구에는 더위에 쓰러지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설명판이 있었다. 걸어서 30분 정도지만 곳곳에 물을 마실 수 있는 곳을 표시해 놓고, 이른 아침이나 늦은 오후에 가는 게 좋다는 말도 덧붙여져 있었다. 국립공원에서나 볼 수 있는 안내였다. 멧돼지처럼 생긴 페커리와 코요테, 도마뱀 등을 볼 수 있지만 장담은 하지 않았다. 도마뱀이 있다는 곳에 가니 동면에 들어갔거나 날씨와 계절에 따라 자고 있을 거라고 했다. 주변 환경이 함께 설득을 하니 동물이 안 보여도 받아들여졌다.
지루하진 않았다. 주변에 야생 도마뱀과 벌새, 새가 만든 둥지, 테디베어 선인장들을 보며 걸어가니 흥미로웠다. 페커리가 있다는 곳에 가서도 페커리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그렇게 길을 걷다 한 구석 그늘에서 쉬는 페커리 무리를 보니 반가웠다. 페커리 전시 환경이 바뀐 후 페커리와 사람 모두의 행동이 변했다고 한다. 페커리들은 소리를 내며 더욱 다양한 의사소통을 하고 진흙에서 놀았다. 사람들은 동물을 보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썼으며 조용하고 세심히 동물들을 관찰했다.
곳곳에는 도슨트들이 있었다. 교육 재료들을 가지고 동물에 대해 자세하고 친절히 설명해주었다. 이곳에서 활동하는 봉사자는 약 350명 정도며 거의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들이었다. 모두 열정적으로 설명해주셔서 이곳을 사랑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동물원에 가면 동물에 대해 많이 알 수 있다고 하지만 실상은 별 배움 없이 동물원을 나오는 경우도 많다. 설명회를 들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다만 시간을 맞추기 어렵기도 하고 사육사도 일이 많아 오랜 시간을 할애하기 힘들다. 그 결과 일부 사람들은 침팬지를 원숭이나 고릴라로 알고 지나가거나, 유리창을 두드려 갇힌 동물들의 관심을 요구할 뿐 정확한 지식을 얻거나 존중하는 마음을 내기 어렵다. 그런데 도슨트들의 설명은 일대일 과외나 마찬가지여서 사람들은 집중해서 들을 수 있었다.
처음 만난 도슨트는 힐라딱다구리가 만든 둥지를 들고 아이들 앞에서 이야기 중이었다. 머리에 빨간 모자를 쓰고 등에는 줄무늬 담요를 덮은 이 딱다구리는 선인장에 구멍을 뚫고 3-4달간 그대로 둔다. 그러면 선인장은 스스로를 보호하려고 구멍 주변에 껍질을 만드는데 이 공간을 둥지로 쓴다고 한다. 게다가 이 구멍은 엘프올빼미, 피그미올빼미 등 다른 새들에게도 인기가 좋다. 머릿속에 느낌표가 파바박 꽂혔다. 사막에 적응해 살아가는 동물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여러 도슨트를 만나고 설명을 들으며 '소노라 사막 생태계'라는 단 하나의 주제에 흠뻑 빠졌다. 동식물들, 그리고 인간은 서로 독립된 존재가 아니라 관계를 맺고 생태계를 떠받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느꼈다. 기후에 맞는 야생과 흡사한 공간은 이 기관이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를 지지했다.
그리고 동물들은 덜 불편했다. 북극곰을 데려와 온도를 낮추려고 과한 에너지를 사용하지도 않고 기린을 데려와 추운 겨울 내내 내실에 가둬둘 필요도 없었다. 동물들은 오랜 시간 진화해온 이유를 부정당한 채 맞지 않는 기후에서 사느라 고생할 필요도 없었다.
이곳을 나서며 이상적인 동물원이란 무엇일지 생각해봤다. 내가 갔던 그 어떤 동물원도 완벽하지 않았다. 애리조나 소노라 사막 박물관도 이제까지 언급한 훌륭한 면이 많았지만 한 편에는 좁고 단순한 공간에서 사는 동물들도 여전히 남아있었다. 게다가 한쪽에서 돈을 따로 더 받고 '가오리 만지기 체험'을 하고 있어 매우 실망스러웠다. 아마도 점점 줄어가는 방문객을 어떻게든 끌어들이기 위한 미봉책일 것이다.
이런 터치풀을 설치하거나 대여하는 동물원들이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동물복지 상 문제가 크다. 가오리 꼬리에 있는 가시는 스스로의 몸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 수단인데 사람들이 만지다가 이에 다칠 수 있으므로 미리 가시를 없어버렸다. 인간의 호기심과 즐거움을 위해 자연스러운 삶을 망치는 행위다. 몇몇 동물원에서는 가오리가 다른 개체의 공격을 받아 죽거나, 수온이 너무 높아져서 또는 물속에 산소가 부족해 죽은 사례들이 나오기도 했다.
왜 동물을 존중하지 않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일들이 생길까? 동물원의 비전이 명확하지 않거나, 동물 복지에 대한 이해가 없는 사람이 결정권을 가지게 되었을 때 그저 유행을 좇아 사람들의 일방적이고 수준 낮은 욕구를 불러일으켜 채우고 돈을 버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