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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Y Oct 01. 2021

저 지금 동물원에서 태어나도 될까요?

미국 신시네티 동물원

 동물원에서 태어난 아기 동물들은 인기 스타다. 동물원은 새끼의 성장 과정을 보여준다. 이름을 공모하기도 하고 첫 생일 파티도 열어준다. 많은 사람들이 새끼를 보러 동물원에 간다. 미국 신시네티 동물원의 스타는 '피오나'였다. 2017년에 태어난 피오나는 신시네티 동물원이 75년만에 얻은 하마다. 조산에다 젖 먹기를 거부했지만 다행히 살아남아 어미와 함께 지낸다. 현재 피오나의 페이스북 그룹 회원은 15만명에 가깝다.  



신시네티 동물원에서 만난 피오나 2017년

동물 스타라면 2006년 베를린 동물원에서 태어난 북극곰 크누트를 빼 놓을 수 없다. 그덕에 방문객 수는 백만 명이나 늘었고 동물원은 삼천만 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렸다. 다만 피오나와 달리 어미에게서 '버림 받은' 크누트는 사육사 손에서 자랐다. 크누트가 태어났을 때의 호들갑스러운 반응만큼 그 최후는 그다지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2011년, 불과 4살의 나이로 연못에 빠져 익사했다. 사인은 희귀한 뇌염이었다. 이미 성장하면서 귀여움을 잃어 인기는 사라지고, 크누트를 키운 사육사도 사망한 후였다. 


귀여운 새끼 동물이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경제적 이득도 크기 때문에 동물원에서는 새끼를 얻으려 안간힘을 썼다. 어떤 동물원은 새끼를 일부러 어미에게서 떼어 내 사람들 앞에 전시하고 젖병을 물렸다. 사람들과 사진을 찍고 유리 전시관에 갇혀 야생동물로서 자라지 못한 동물들은 이상행동을 해 동물원의 골칫거리가 되었다. 태어난 동물들이 성장하면서 한정된 공간은 점점 비좁아졌고 싸우거나 다치는 일이 생겼다. 한 동물원에서만 번식하다보니 유전적 다양성도 낮아져 건강에 문제가 있는 동물들도 태어났다.  


베를린 동물원 크누트 출처 https://www.nbcnews.com/slideshow/news/knut-the-polar-bear-42168961/


한편 동물원의 보전 역할은 점차 커지고 동물 복지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동물원은 더이상 야생에서 멸종위기종을 데리고 오지 못했다. 이제는 동물원 스스로 수요를 충당해야 했고 더 나아가 야생에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 했다. 


이러한 과제를 인식한 동물원들은 종 보전을 위해 계획적으로 멸종위기 동물들을 번식시켰다. 미국은 이를 SSP(Species Survival Plan), 유럽은 EEP(European Endangered Species Programmes)라 명명했다. 목표는 적절한 번식과 동물 이동으로 유전적 다양성을 높이고 안정적 개체군을 유지하는 것이다.


1981년에 SSP를 시작한 미국 동물원 수족관 협회는 현재 500여개의 번식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각 프로그램에는 자문 그룹이 있다. 종 코디네이터가 혈통, 나이, 성별 등 정보를 수집하고 논의를 통해 결정을 내리면 동물원은 권고를 따른다. 예를 들어, 검은코뿔소 보전 프로그램에는 78개 동물원이 참여한다. 동물원 간 개체 이동을 통해 짝을 맺어 번식률을 높이고 야생 검은코뿔소 연구도 후원한다.


신시네티 동물원 검은코뿔소 설명판 오른쪽 구석에 코뿔소 모양의 SSP 프로그램 표시가 그려져 있다.


가장 대표적인 성공 사례는 황금사자타마린 복원이다. 이 동물은 브라질 서식지 파괴로 야생에 200마리 밖에 남지 않은 작은 영장류다. 미국 국립 동물원과 세계자연기금을 중심으로 140개 동물원이 함께 했다. 동물원들은 황금사자타마린을 번식시키고 방사 전 훈련을 통해 야생에 적응시켰다. 또한, 브라질 정부의 도움을 받아 서식지를 보전하고 해당 지역민을 교육했다. 그 결과, 현재 야생의 황금사자타마린 개체수는 2500마리로 늘었다.  


하지만 동물 행동학자 마크 베코프는 '동물의 감정'이라는 책에서 미국의 한 동물원 관계자의 말을 빌려 이를 비판했다. 이런 계획들은 허풍에 불과하다고 말이다. 성공적인 사례는 극히 일부다. 이를 따르지 않는다고 법적인 제제가 있는 것도 아니다. 동물원 건축가 데이비드 핸콕스는 동물원이 보전에 쓰는 돈은 예산의 3%도 안된며 대부분의 돈은 최첨단 전시와 마케팅에 쓰인다고 일침했다. 


동물원이 보전에 기여한다는 것을 비웃기라도 하듯,  2021년 8월 '보전 게임 The conservation game'이라는 다큐멘터리가 나와 현실을 알렸다. 언젠가부터 미국 TV 토크쇼에 새끼 호랑이나 설표 등 야생동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동물을 데리고 나온 사람들, 특히 전 콜럼버스 동물원장은 그 동물들들이 동물원에서 귀하게 태어났다며 보전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했다. 그런데 그 동물들이 야생동물을 마구잡이로 번식해 이용하는 농장에서 왔음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밝혀졌다. TV에 나온 후 쓸모없어진 동물들은 다시 번식업자, 길가 동물원이나 경매로 넘어갔다. 2021년 10월 미국 동물원수족관 협회(AZA)는 콜럼버스 동물원의 회원 자격을 박탈했다. 이런 일이 오랜 기간 지속될 동안 AZA는 뭘 했나? 고작 뒤늦게 인증을 취소할 뿐이었다. 


번식은 무조건 칭찬해야할 경사가 아니다. 동물원에서의 번식은 보전과 연결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고 여전히 계획없이 번식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경우 오히려 동물의 복지를 해칠 가능성이 있다. 번식은 동물원 환경과 동물의 삶, 그리고 목적을 충분히 고려해 결정해야한다. 멸종위기종이고 미래에 어떻게 될지 모르니 일단 낳고보자는 구먹구구식 번식을 해서는 안된다. 


덴마크 코펜하겐 동물원은 근친교배를 막는다는 이유로 기린을 죽여 사자에게 먹이로 주고, 무리에서 밀려날 사자 네마리를 죽이는 결정을 했다. 오히려 콜럼버스 동물원보다 솔직하다고 볼 수 있다. 다른 곳으로 보내면 된다고 하지만 공간이 남아도는 동물원은 찾기 힘들다. 최소 면적 기준은 과거에 비해 커졌고 동물원을 확장하는 데는 큰 돈이 들기 때문이다. 분명 코펜하겐 동물원이 불필요한 번식을 막지 못한 것은 과실이다. 그런데 과연 태어날 새끼들의 수를 철저히 조절할 수 있을까? 물론 했어야 하지만 여기서 잠깐 2019년 말 국내에서 일어난 사건을 보자. 서울동물원은 그물무늬왕뱀이 낳은 알에서 부화한 20여 마리 중 2마리를 제외하고 모두 냉동시켜 고발당했다. 다 부화해 자란다면 법적으로 정해진 사육 공간이 부족해지기 때문이었다. 정부와 동물원도 사전 합의가 없었으며 동물원 내에서도 향후 발생할 결과에 대한 고려가 없었다. 


결론적으로, 동물원에서의 탄생은 그 자체로 보전과 연결되지 않는다. 하지만 단순히 번식 자체를 서식지 외 보전으로 착각한다. 까놓고 말하면 동물들은 동물원이 유지될 정도로만, 번식해야하지만 이는 불가능하다. 그것이 동물원의 민낯이다. 


동물원 동물들의 죽음은 탄생만큼 주목 받지 못하고 대부분 숨겨진다. 때로는 태어난지 얼마되지 않아 죽기 때문에 탄생마저 숨겨진다. 만약 모든 동물원 동물들에게 이름이 있고 구별이 가능하며 주목 받는다면 사람들은 그들의 결말에 놀라 동물원의 근본적인 시스템에 이의를 제기할 것이다. 위 두 사례에서 일부가 목소리를 높였지만 근간을 흔들지는 못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그저 소비할 귀여움이 사라졌을 뿐이다. 동물원의 민낯을 보기 꺼려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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