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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애 Apr 09. 2024

엄마맛

충주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언니가 기르고 있는 것을 잡았다며 준 닭을 어찌할까 하다가 미역국을 끓이기로 했다. 집에서 기른 토종닭은 일반닭보다 다소 질겨서 백숙을 해 놓아도 아이들이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압력밥솥에서 한 시간을 푹 삶아 살을 발라낸 후 닭 국물에 미역과 함께 넣어 다시 한번 푹 끓였다.

“닭고기로도 미역국을 끓이네? 신기하다.”

딸아이는 국물이 진하고 시원하다며 맛있게 먹으면서도 미역국에 닭고기 조합이 신기한 모양이다. 전복이나 홍합 등의 해산물이나 쇠고기와의 조합으로만 미역국을 먹었으니 그렇게 생각할 법도 하다.

나는 어렸을 때 미역국은 으레 닭고기로 끓이는 줄 알았다. 명절이나 생일과 같은 특별한 날이면 아버지는 집에서 기르던 닭을 잡으셨다. 우리 오 남매는 샘가에 옹기종기 앉아서 그 모습을 구경했다. 아버지는 뜨거운 물에 담가 닭털을 뽑은 후 내장 등을 잘 다듬어 엄마에게 건넸다. 지금 생각하면 잔인하다 할 수도 있겠지만 당시의 우리에게는 재밌는 구경거리였다. 닭똥집에서 모래를 분리해 내던 모습과 아버지가 조심스레 떼어내서 주신 닭의 부레를 물에 띄우며 놀던 것이 특히 재미있게 기억된다. 엄마는 가마솥에서 푹 고은 닭을 꺼내어 일일이 살을 발랐는데 빙 둘러앉아 엄마가 간혹 건네주는 살코기를 받아먹는 것도 큰 즐거움이었다. 그렇게 발라낸 살과 미역은 다시 가마솥에서 푹 끓고 난 후 우리의 특별한 밥상을 맛있게 채워주곤 했다.

닭고기 미역국으로 차린 밥상을 마주하고 보니 그 시절로 돌아간 듯하다. 밥상에 둘러앉아 함께 밥을 먹던 할머니와 할아버지, 엄마와 아버지, 그리고 어렸던 우리 오 남매가 손에 잡힐 듯하다.

돼지고기 김치찌개도 특별하게 기억되는 음식이다. 돼지고기와 김치, 그리고 집에서 직접 만든 두부를 넣고 보글보글 끓여주던 김치찌개는 제법 귀한 음식이었다. 동네에서 돼지를 잡아야 먹을 수 있었던 돼지고기를 많은 식구들에게 먹여야 하기에 엄마는 김치와 두부를 듬뿍 넣고 찌개를 끓이셨다. 김치와 고기가 어우러져 만들어낸 빨간 기름이 동동 뜨는 김치찌개는 지금 생각해도 침이 고인다. 지금도 나는 김치찌개는 고기를 넣어 끓인 것을 좋아한다. 찬바람이 불고 쓸쓸해질 때 돼지고기 듬뿍 넣어 끓인 김치찌개는 내 맘을 따뜻하게 감싸 준다.

간혹 그 맛이 그리워 만들어보곤 하는데 그때의 맛을 내기가 어렵다. 무엇이 문제일까? 생각해 보면 맛은 음식만으로는 부족한 듯하다. 만든 사람, 함께 먹은 사람, 그리고 음식을 마주한 나의 마음이 모두 어우러져 그 맛을 내기 때문이다. 이제 엄마는 다시 볼 수 없고 우리 오 남매가 그때의 엄마의 나이가 될 만큼 많은 것이 변했기에 어쩌면 그 맛은 영원히 느끼지 못할지 모른다. 그럼에도 다행스러운 것은 음식이 기억 속에 남아 있어서 그것을 먹으며 정겨웠던 기억을 꺼내 볼 수 있다는 것. 음식을 나누는 일은 마음을 나누는 거라더니 오늘 나는 닭고기 미역국에서 엄마의, 아버지의, 그리고 어릴 적 우리들의 즐거웠던 마음을 읽고 있다. 마음 따뜻하게....

문득 우리 아이들은 나의 밥상에서 무엇을 기억할까 궁금해진다. 밥을 먹으면서 맛이 어떠냐고 물어보면 아이들은 ‘엄마 맛’이라고 이야기한다. 엄마 김밥 맛이야, 엄마 불고기 맛이야. 엄마 특유의 맛...... 그것은 때로는 칭찬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별로라는 평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나는 이 말이 싫지 않다. 아이들 마음에 엄마 맛 음식은 오래도록 기억될 테니까. 때로는 나를 대신해서 따뜻하게 덥혀줄 수 있을 테니까...... 그러니 음식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다. 사라지지 않는 기억이다. 함께 가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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