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를 만나러 서울로 가는 길이었다. 출근 시간을 넘긴 지하철은 좌석이 많이 비어 꽤나 한가한 모습이었다. 보이는 자리에 무심코 앉았는데 바로 귀에 꽂히는 소리가 시끄러웠다. 옆에 앉은 아저씨의 핸드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였다. 아저씨는 눈을 감고 팔짱을 낀 채 노래를 듣고 있었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할까 하다가 앞쪽으로 자리를 이동하였다. 그러나 노래는 계속 시끄럽게 울렸다. 노래를 멈춰 달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말했다가 자칫 내가 곤란한 처지에 빠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차마 말은 못 하면서도 신경은 온통 그곳으로 쏠렸다. 그리고 그러한 것이 나만은 아닌 듯 거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아저씨에게로 향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제지하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때 경로석에 앉아 있던 한 어르신이 목을 빼고 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보더니 몸을 일으켰다. 그 모습이 내심 반가웠다. 그래, 저분이 이야기하면 괜찮겠다 생각하며 간절한 눈빛으로 어르신을 바라보았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도 기대를 가득 담은 채 그분을 향하였다. 그러나 그분은 우리의 기대와 달리 누군가 확인만 하고 그냥 다시 앉아 버렸다. 지켜보던 많은 사람들이 실망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쉽게 이 불편한 상황을 벗어나고자 했던 바람이 무너져 실망하긴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 기대에 부응하지 않는 어르신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노래가 계속되자 사람들은 좀 더 먼 자리로 옮기거나 다른 칸으로 건너가기도 했다. 여기서 또 옮기려니 왠지 자존심이 상하여 자리를 지키고 있었지만 마음은 영 편치 않았다. 사실 아저씨의 인상이 그렇게 험악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노래를 크게 틀어 놓고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이 고집스러워 보였다. 이렇게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이상한 성격의 소유자라고 생각해도 틀리지 않을 것 같았다. 요즘 방송에서 자주 접하는 사이코패스의 모습까지 연상되니 더 이상 어떤 행동을 할 수가 없었다.
문득 지난주 버스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여행을 함께 할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캐리어를 들고 마을버스를 탔다. 1인석에 앉았는데 캐리어가 들어가지 않아 불편하였다. 맞은편에 가로로 놓인 3인석이 편할 것 같아 옮겼는데 캐리어가 마구 움직여서 다시 본래 자리로 다시 옮겼다. 그 순간 기사 아저씨가 운행 중에 자꾸 돌아다니지 말라고 큰 소리를 내었다. 캐리어 때문에 그런다고 죄송하다고 바로 사과하고 자리에 앉아 있는데 갈수록 가슴이 뛰었다. 상황에 맞는 지적이었음에도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하고 있는 상황에서 누군가에게 공개적으로 야단맞은 것 같아 부끄러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속상했던 것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다면 기꺼이 받아들일 수도 있는 상황인데도 이렇게 흔들리는 나의 유리멘털이었다. 이렇게 허약한 자존감이라니......
이런저런 생각에 갈등을 느끼면서도 지금은 ‘말을 해야 해’하며 엉덩이가 간질간질해지는 순간 노래가 끊겼다. 아저씨의 움직임이 없었으니 핸드폰 배터리가 다 된 모양이다. 불편한 상황이 만들어지지 않고 저절로 문제가 해결된 지하철은 평화로워졌다. 아저씨 주변의 빈자리는 다시 채워졌고 조금 전의 상황은 사람들에게 곧 잊혔다.
지하철에서 내리며 아저씨를 바라보니 여전히 눈을 감고 꼿꼿하게 앉아 있었다. 그 평온한 모습을 보니 문득 그 아저씨는 자신으로 인해 다른 사람이 불편해하고 있다는 것을 심각하게 인식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가 노래를 멈추어 달라고 이야기했다면 기꺼이 응했을지도 모른다. 우리들이 지레짐작으로 쉽게 이상한 사람으로 판단하고 경계한 것은 아니었을까? 험한 상황에 처하게 될까 봐 두려워 다른 사람의 잘못을 이야기하지 않는 우리들이 지하철에서의 불편을 자초한 것은 아니었을까?
이런저런 생각에 착잡해하며 떠나가는 지하철을 바라보는데 씁쓸한 의문이 밀려왔다. 다음에는 말할 수 있을까? 질책하는 소리도 험한 소리도 듣지 않았는데 또다시 얼굴이 붉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