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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애 Apr 30. 2024

관찰자시점 vs 주인공시점

“지금 46번 번호표 받고 대기하고 있어. 소문난 고깃집이라 꼭 먹어야 한다고. 아이들과 여행하려니 이런 것을 감수해야 하네.”

제주도에서 가족여행을 하고 있는 친구가 전해온 소식이다. 부부끼리 갔다면 다른 곳을 찾겠지만 아이들과 함께 하면 으레 겪어야 하는 일이기에 참고 기다리고 있단다. 그러한 상황은 우리 집도 마찬가지기에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지난 부산 여행에서 우리 가족의 모습이기도 했으니까.

부산에 도착하자마자 선택한 돼지국밥집이 시작이었다. 유명한 맛집으로 소문났을 뿐 아니라 지난 여행 때 먹어본 적이 있기에 이미 검증은 되었다. 문제는 오늘이 토요일이라는 것이었다. 식당 문 앞에서부터 길게 이어진 줄 뒤에 서야 할까 망설이는데 다른 가족들은 다 찬성이다. 평소에 이런 거 싫어하는 남편도 먹어보잔다. 그런데 대기줄이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기다리자던 아이들도 걱정이 되는지 다른 곳을 검색해 보더니 평점이 괜찮은 곳이 근처에 있다며 옮기자고 하였다. 다행히 그곳은 대기하는 사람이 적어 바로 먹을 수 있었다. 맛도 좋아 우리의 선택에 만족해하며 광안리로 향했다.

광안리는 바다 바로 앞에 가게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어 바다와 도시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해변을 따라 걸어가며 고개를 돌리면 광안리 바다가 펼쳐지고, 다시 고개를 돌리면 저마다의 특징을 지닌 카페와 음식점들이 즐비하다. 코로나로 인한 이런저런 제한이 풀린 지 얼마 안 되어 그런지 가게마다 거리마다 사람들이 빼곡했다. 그리고 가게 문 앞에는 으레 대기줄이 늘어서 있다.

“우리가 저 안에 앉아 있어야 하는데.... 점심때부터 우리는 주인공이 아닌 관찰자적 여행을 하고 있는 거야.”

“점심도 맛있었고 광안리 바다도 유명한 곳인데 꼭 유명 맛집에 들어가야 여행의 주인공이 되는 것은 아니잖아.”

“그래도 여행을 왔으면 핫한 곳에 들어가 있어야 제대로 된 여행이지.”

여행에서 무엇을 추구하는 가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는 것은 인정하면서도 아이의 말에 완전히 공감할 수는 없었다.

그 이후로 우리는 관찰자가 아닌 주인공이 되기 위해 끼니때마다 대기를 했다. 대기시간이 길어 차를 먼저 마시고 밥을 먹기도 했고, 인터넷 예약조차 마감되어 다음날에 다시 시도하여 겨우 예약하기도 했다. 이틀에 걸쳐 시도한 예약에 성공한 식당에 들어갔을 때 아이들의 의기양양한 표정은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온다. 물론 기다림 끝에 들어간 음식점이나 카페는 전망이나 맛에서 보답을 하기는 했다. 아이들은 사진인증을 하면서 더욱 좋아했고.

아이들을 따라다니다가 문득 궁금한 마음이 들어 유명한 맛집에서 대기하는 사람들의 심리에 대해 검색해 보았다. ‘밴드왜건 효과’란다. 이는 어떤 재화나 상품에 대해 사람들의 수요가 많아지기 시작하면, 이런 경향을 따라가는 새로운 소비자들이 나타나 수요의 증가를 가져오는 현상을 이르는 말로, 유행을 따르거나,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배제되지 않기를 원하는 사람들의 심리에서 유발되는 현상이라고 한다. 즉 다수에 속함으로써 안정감을 느끼고자 하는 안전 욕구가 이러한 편승 효과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결국 현대인의 외로움에서 비롯된 현상으로 생각하며 맛집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을 안쓰러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럴 수 있겠다 싶으면서도 긍정적인 시각으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다름'과 '변화'가 떠올랐다. 우리들이 자연을 여행지로 삼듯이 아이들은 예쁘고 특별하고 맛있는 맛집이나 카페를 여행지로 삼고 그곳에서 즐거움을 찾는 것이라고. 여행의 대상이 바뀌었고, 여행의 방식이 바뀐 것이라고.

아이들은 문화유산이나 자연 대신 가게의 인테리어, 거기에서 제공되는 먹거리의 플레이팅이나 맛에 감탄한다. 자연을 보더라도 그 가게의 프레임을 통해 연출된 풍경을 좋아한다. 멋진 배경과 전문가의 시선이 합쳐져 만든 풍경은 사진에 담기에도 그만이란다.

아이들을 따라 맛집 탐방을 하다 보면 인정되는 부분이 많아서 지금은 나도 맛집이나 예쁜 카페 탐방에 시간을 할애하곤 한다. 팬텀시티의 2층 카페에서 바라본 바다는 어느 곳보다 광활했고, 에스프레소가 너무도 맛있었던 광안리 카페는 내가 홍보하는 여행지가 되었다.

이제 나도 주인공(?) 시점의 여행을 위해 간혹은 줄을 서고 있다. 좀 더 다채로운 여행을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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