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만난 건 밤 12시가 다 되어서였다. 늦은 밤에도 불 밝히고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포장마차는 우리들을 유혹하기에 충분했다. 서면의 칵테일바를 찾아갔다가 어린아이들로 가득 찬 거리에 기가 죽어 남포동으로 밀려(?) 온 터였다. 남포동 칵테일바에서 칵테일을 한 잔씩 했지만 그 역시 만족스럽지 않은 터였다. 다른 바를 찾아가자고 나선 걸음이 자연스럽게 눈앞에 펼쳐진 포장마차로 향하였다.
술과 안주를 주문하자 과일과 땅콩, 달걀프라이가 서비스로 나온다. 시작부터 푸짐하다. 이제 막 여름을 벗어나고 있는 선선한 바람이 마차에 불어온다. 떠들썩한 소리가 광장에 퍼진다. 그 소리가 피곤하지 않다. 마음이 푸근해진다. 다른 곳에서 헤매지 말고 진작 이곳으로 왔어야 했나?
주문한 지 얼마 안 되어 갑오징어 숙회와 햄구이를 내놓는다. 빠르다. 잠시 후에는 다른 테이블에 닭날개구이와 순대볶음을 내놓는다. 생선 굽는 냄새도 퍼진다. 그리 넓지 않은 주방에서 온갖 것을 뚝딱뚝딱 잘도 만들어낸다. 맛도 좋다. 이 좁은 공간 어디에 저 많은 것을 쟁여 놓았을까? 다양한 종류에, 맛에, 속도에 저절로 감탄하게 된다.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그녀가 틈틈이 끼어 들어온다. 신기하다. 그녀는 들고나는 손님 모두에게 적당히 관심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눈다. 소위 '낄끼빠빠'를 잘한다. 게다가 유머러스하기까지 하다.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짪게, 재치 있게 말한다. 칭찬이라도 하면 금방 흥겨운 몸짓으로 춤을 춘다. 웃음이 절로 난다. 고객 중 누군가가 개그우먼 오나미 닮았다는 말을 했다는데 개그우먼이라고 할 만큼 표정이 풍부하고 재미있다. 그러니 그녀의 매력에 빠질 수밖에...... 한잔하고 돌아가던 손님들이 마실거리를 사서 건네주곤 하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진다.
깊어가는 밤에 그녀의 이야기는 쉽게 흘러나온다. 부산시장에서 20 년은 양말과 옷을 만드는 재봉틀과 함께 했고, 남편이 죽은 후 20년은 포장마차와 함께 살아왔단다. 61살인 지금부터 앞으로 20 년은 더 일을 할 거라고. 일하는 틈틈이 풀어놓는 고단한 삶의 내력조차 가볍게 표현하는 그녀 덕분에 우리도 마음이 한껏 풀어졌다.
그 때문이었을까, 우리도 조금은 아프고 조금은 부족한 각자의 이야기를 쉽게 풀어놓을 수 있었다. 편치 않은 의자에서 세 시간이 넘는 시간을 불편함을 모르며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었고 포장마차의 손님들이 옆자리의 사람들과 쉽게 말을 트고 어울릴 수 있었다.
새벽 세 시에도 많은 손님을 상대하고 있는 그녀를 두고 돌아오는 길, 그녀의 모습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이들도 같은 느낌인 듯했다. 그녀의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끌어들일까? 그녀가 자리한 공간이 갖는 힘? 그것도 맞다. 일단 한밤중 광장의 포장마차는 유리한 고지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그녀가 아닐까? 20 년간 한 평 남짓한 거친 그 공간에서 자기의 재주를 한껏 발휘하며 사람들의 밤을 함께 하는 그녀. 그곳에서 그녀는 누구보다 당당하게 빛난다. 자신 있게 일하고 즐겁게 대화한다. 밝은 에너지가 넘친다. 앉아 있는 사람은 그래서 편안하다. 이런 공간과 시간을 만들 수 있는 그녀는 그 누구보다 능력자란 생각이 든다. 일순 부럽다는 생각이 일었다. 그럼에도 질투 대신 응원을 보내게 되는 것은 왜일까?
그 마음으로, 그 긴 여운을 잊지 못해 우리는 남포동 49번 포차를 우리 부산 여행의 필수코스로 점찍어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