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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애 May 28. 2024

엄마와 딸

“그래서 내가 엄마의 그 한스러운 삶 풀어주려고 이 여행을 준비한 거라고요. 그런데 누리지도 못하고 불평만 하고 엄만 도대체....”

조카딸이 폭발했다. 아슬아슬하다 생각했는데 결국 터지고 말았다. 암스테르담 거리에서였다.

시댁 형님의 딸인 조카가 파견 나간 남편을 따라 프랑크프루트에서 생활한 지 3년이 되었다. 조카는 많은 곳을 여행하면서 유럽의 남다른 풍경을 자신의 부모에게도 보여주고 싶어 했지만 형님 내외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20여 년 전 교통사고를 당한 후 아직도 집에서 누워 있는 아들을 두 부부가 집에서 돌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러 번의 딸아이의 부름에도 형님은 상황이 되지 않는다고 매번 거절하였다. 긴 시간 남편에게만 아들을 맡겨 두고 혼자 가기에는 마음이 편치 않다는 이유였다. 누워있는 동생에 대한 안쓰러운 마음과는 별도로 평생을 이렇게 아들에게 매여 있는 부모를 지켜보는 것이 딸들에게는 큰 아픔이었다. 그래서 조카딸은 자기가 외국에 있는 동안 엄마에게라도 특별한 여행을 선물하고 싶어 눈물로 호소하였고 다른 가족들도 강요하다시피 하여 형님은 마지못해 여행을 결심하였다. 그리고 혼자 비행기를 타지 못하는 형님의 가이드로 내가 여행에 함께 하였다.

도착해 보니 조카는 엄마를 위해 많은 것을 준비해 놓았다. 그동안의 여행을 토대로 유럽의 ‘엑기스 트립’을 계획하여 놓았고, 매일매일의 식단까지도 짜 놓았다. 그 계획서를 보고 있으려니 조카가 얼마나 기다리고 준비했는지 느껴져 가슴이 뭉클했다.

첫 번째 여행지는 네덜란드였다. 프랑크프루트에서 자동차로 6시간 정도를 달려서 암스테르담에 도착하였다. 운하를 따라 걸으며 도시를 둘러보는데 형님은 처음 도착한 순간을 빼고는 큰 감흥이 없는 듯 보였다. 형님이 반응을 보이는 것은 외국 사람들, 특히 뚱뚱한 사람들이었다. 아유, 저 사람 어쩌냐? 건강에 문제없나? 암스테르담의 독특한 건물과 아름다운 운하를 준비해 놓고 엄마의 반응을 기다리는 조카가 걱정되어 간혹 살펴보니 표정이 좋지는 않다. 네덜란드 사람들이 키가 크고 인물이 훤한 사람이 많으니 그런 사람도 좀 바라보라는 내 얘기에도 아직은 외국 사람이 낯설어서인지 좋은 반응이 나오지 않는다. 배를 타고 가면서는 서양사람들은 냄새가 난다며 투덜거리기까지 하였다.

결정적인 것은 쌀국숫집에서였다. 엄마를 생각해서 따뜻한 국물이 있는 쌀국숫집을 찾아갔는데 테이블이 적다 보니 대기를 하여야 했다. 다행히 운하 가까이에 있어 노을 녘의 운하에 심취하여 ‘좋다’를 연발하고 있는 나에게 ‘그게 뭐가 그리 좋으냐’고 형님이 툭 던진다.

“아름답잖아요. 운하도, 건물도, 저 노을도, 이건 여기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풍경이잖아요”

“엄마에게 이거 보여주고 싶었는데, 엄마는 별로야?

조카도 한 마디 거드는데 속상한 마음이 가득해 보인다.

기다렸다 들어간 쌀국수는 따뜻하고 맛있어 형님도 맛있게 먹었다. 다행이다 생각하며 계산하고 있는 사이 갑자기 큰 소리가 났다.

”엄마는 모르면 가만있어. 아니라니까 왜 자꾸 그러는데? “

무슨 일인가 살펴보니 형님이 쌀국숫집의 양념통도 돈을 냈으니 가져가자고 했단다. 조카애의 딸이 음료수 남은 병을 가져갈 수 있다는 것을 잘못 들은 것. 몇 번을 말해도 같은 소리를 반복하니 답답해하던 조카애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조카도 형님도 둘 다 얼굴이 붉어졌다.

음식점에서 나와 차로 돌아가는 길에 형님은 나에게 속상한 푸념을 늘어놓았다.

본래 오고 싶지 않았다고. 그런데 불러 놓고 사위 앞에서 그런 소리를 해서 망신을 주었다고. 평생을 한스럽게 살아온 팔자인데 내가 여기서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왔는지 모르겠다고, 딸이라고 다 내 마음 같지는 않다고....

속상해하는 형님을 달래면서도 뒤에 따라오고 있는 조카에게 들릴까 걱정하고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결국은 조카애가 폭발했다. 조카사위가 놀라서 달려와 조카를 달래어 데려가고 나도 형님을 달래며 상황은 일단락되었지만 호텔에서 조카도 형님도 힘든 밤을 지내야 했다.

저녁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형님 나름의 사정이 있었다. 물을 갈아먹어서인지 뱃속이 편치 않았다고. 그런데 이곳 화장실은 돈을 내야 하니 그 또한 편치 않아 쉽게 가지 못했다고. 그래서 오늘 여행이 조금은 힘들었단다. 그럼 이야기를 하지 그랬냐는 나의 말에 어떻게 내 생각을 다 이야기하고 사느냐고, 애들이 애쓰는 거 보이는데 내가 편치 않다면 더 신경 쓸 거 아니냐고 한다.

반면 조카는 조카대로 속상한 마음이 있었다. 엄마가 많이 다녀 보지 않아 여행을 즐기지 못하는 듯해서, 한국에도 많은 쌀국숫집도 안 가봐서 가져갈 건지 아닌지 구분도 못하는가 싶어 더 많이 속상했다고, 20년 넘게 동생만을 바라보며 집안에 갇혀 살았던 엄마의 모습이 가장 안타까웠단다.

엄마와 딸, 그 사이에 ‘서로에 대한 사랑’이 자리하고 있음에도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것이 참으로 안타까웠지만 어차피 벌어질 일이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오랫동안 고달프게 생활해 온 형님이 낯선 세상에 바로 마음을 열기에는 쉽지 않았을 테고, 딸의 기대대로 그 고달픔을 털어버리고 여행을 맘껏 즐기기는 쉽지 않았을 테니까.... 그런 엄마의 모습은 당연히 조카에게는 아픔일 수밖에 없으니까....

나중에 이런 이야기를 하니 사람들이 중간에서 많이 힘들지 않았냐고 묻는데 나는 생각보다 그리 힘들지는 않았다. 형님과 조카는 엄마와 딸 사이니 그 관계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 뱃속에서 나온 딸이니까, 탯줄에서부터 비롯된, 끊어지지 않는, 주고받는 사랑의 끈으로 연결되어 있으니까, 미우나 고우나 떨쳐버리지 못하고 한평생을 가슴에 담고 살아왔고 또한 살아갈 것이니 이런 상황은 그 평생의 한 찰나로 쉽게 지나갈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의 믿음은 옳았다. 다음날부터 형님의 여행도 조금씩 달라졌다. 조카의 좀 더 친절한 가이드를 받으며 '다른 풍경, 다른 생활' 속으로 조금씩 발을 옮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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