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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애 Apr 23. 2024

처음 생각대로(?)

나는 왜 이리 줏대가 없나 몰라, 누가 뭘 부탁하면 거절을 못해”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퇴직한 직장에서 두 달간 일을 해 달라는 부탁이 와서 거절하지 못하고 승낙을 했는데 막상 일을 시작하려니 막막해서 허락해 버린 자신을 자책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못 가겠다고 말할까 고민 중이라고 친구는 말했지만 나는 그 친구가 그렇게 하지 못할 것을 안다. 퇴직한 후 여유롭게 살고 싶다던 친구는 전에도 부탁한 사람의 어려운 상황을 외면하지 못하고 여러 차례 일을 한 적이 있다. 그래서 고생하고 속상한 적이 있었음에도 이런 부탁이 오면 승낙하곤 했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다.

나는 친구에게 고민하지 말고 그냥 가라고, 막상 일을 시작하면 괜찮을 거라고 격려하였다. 결국 일을 하게 될 그 친구에게 필요한 것은 나의 이러한 지지임을 여러 차례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줏대가 없다’고 자책하는 친구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줏대가 없다니. 다른 사람이 어려울 때 그것을 그냥 보아 넘기지 않는 것, 남을 배려하는 것, 그게 일관되게 지켜온 너의 삶의 모습인데. “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서 나도 간혹 이런 고민에 빠질 때가 많다.


며칠 전 일이었다. 난방 배관에서 누수가 발견되어 공사를 해야 했다.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걸어 의논하니 공사비는 대충 50만 원 정도인데 싱크대의 상태에 따라 가격이 달라질 수 있단다. 내가 외출한 사이 남편이 관리사무소에서 소개한 시공업체에 의뢰하여 견적을 받았는데 65만 원이 나왔다. 잘은 모르지만 처음 들은 가격과 차이가 많이 나니 무언가 손해를 보는 느낌이 들었다. 다시 가격을 흥정해 보려고 전화를 했다. 사장님은 이런저런 어려움을 호소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여지가 있어 보였다. 공사하는 날 다시 이야기해 보면 5만 원이라도 깎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공사하는 날 아침, 내 생각보다 많은 인원과 장비가 들어왔다. 싱크대를 해체하고, 시멘트를 뜯어내고, 관을 교체하고, 시간을 두고 드나들며 중간중간 물이 새는가 살피고, 다시 미장을 하여 덮고, 싱크대를 조립하기까지 거의 하루가 걸렸다. 생각보다 큰 공사를 지켜보면서 마음이 흔들렸다. 그냥 지불해야 하나, 그래도 깎아야 하나....

공사를 마치고 사장님과 공사비를 정산하는 시간, 속으로는 여전히 갈등하면서도 우선은 얼마냐고 물었다. 사장님은 65만 원이라고 이야기하면서 나의 요구를 거절하기 어려웠던지 전에 내가 깎아달라고 했던 이야기를 꺼냈다. 상황을 보니 내가 60만 원을 건네면 그대로 받아들일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순간 아침부터 힘들게 공사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래서 선뜻 돈을 건네지 못하고 슬쩍 말을 건넸다.

“무리가 아니면 깎아주시면 저는 좋죠.”

“그럼 그냥 65만 원 주세요. 각각의 영역이 있어서 여러 사람을 써야 하는 상황이니 가격 내리기가 쉽지 않아요. 다들 그 가격에 하고 있어요.”

사장님도 나의 마음에 여지가 있는 걸 읽었을까? 딱 잘라서 말하는 사장님의 말이 오히려 후련했다. 사실 힘들게 공사하는 사람들을 지켜보면서 돈을 깎아야겠다는 생각이 점점 옅어졌다. 다만 처음 생각을 바꾸는 것이 왠지 가벼워 보이는 것 같아서 고민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돈을 아껴 보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하루종일 고생한 그들의 노고에 맞는 보답을 하기로 했다. 주저하지 않고 65만 원을 건넸다. 마음이 편안해졌다.

확고한 주관,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끝까지 굽히지 않는 것이 소신 있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우러져 살아가는 세상에서 때로는 자신의 생각을 바꾸는 것이 미덕임을 깨달았다. 나의 바뀐 생각은 누군가에 대한 배려가 되고 도움이 될 수 있으니까......,

오늘은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이 말을 해 주고 싶다.

‘생각을 바꾸어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너의 모습이 참 아름답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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