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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애 Apr 02. 2024

나의 세컨하우스

친구에게 세컨하우스가 생겼다. 시부모님이 생활하시던 공간이었는데 두 분이 다 돌아가신 후 유산으로 물려받은 것이다. 요즘에는 부모님이 쓰시던 집을 그대로 유지하여 별장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친구도 같은 상황이었다.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여름 내내 집을 정리하여 이제는 제법 편히 쉴 수 있는 별장이 되었다면서 삼척으로 우리들을 초대하였다.

친구의 세컨하우스는 숲 속의 집처럼 조용하고 한적한 곳에 있었다. 시내에서 샛길로 5분도 채 들어오지 않았는데 이러한 분위기가 만들어진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다. 15년 전에 지었다는 집은 제법 크고 좋아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고, 집 뒤편으로는 숲이, 앞에는 밭이 있다 보니 이웃집과도 떨어져 있어서 조용히 쉬기에 제격이었다. 이런 집을 물려받은 친구가 무척 부러웠다.

친구의 시아버지는 아내와 사별한 후 이 집에서 12년을 혼자 사셨단다. 작년부터는 몸이 편치 않으셔서 거의 집 안에서 생활하셨다고 했다. 집에 들어서서 마당을 내다보니 그분 참 외로우셨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식들이 모두 서울에 있으니 자주 온다 하여도 쉽지는 않았을 테고, 말년에는 생활공간이 마당 안쪽이었을 텐데 저 밭을, 저 숲을, 그리고 밖으로 향하는 샛길을 보며 외로움이 깊어졌을 것 같다. 그분이 쓰시던 안방으로 들어가니 웃고 계신 사진이 놓여 있다. 한 번도 뵙지 못했음에도 마음이 찡하다. 이제는 자식들과 그 친구들의 웃음으로 시끌벅적하니 외로움이 덜 하시려나?

거실에 걸려 있는 가족사진이 환하다. 그분이 외로울 때마다 수없이 보았을 그 사진 속의 가족들은 다들 밝게 웃고 있다. 그때가 가장 좋았을 때란다. 살아가면서 부모 자식 간에도 형제간에도 많은 일들이 생기고, 간혹은 불편함으로 서로를 더 외롭게 했던 시간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저런 앙금 없이 아버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분이 남겨 준 휴식공간에서 쉬며 위로를 받고 있기에 편안하게 그분을 기억하고 있다.

친구의 시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각자의 돌아가신 부모님 이야기로 이어진다. 다들 부모님과의 이별을 겪은 경험이 있다. 나이 들어서 겪는 일이라도 자식들에게 부모님과의 사별은 극복되지 않는 아픔이다. 돌아가신 부모님은 어느 날 문득 아픈 그리움으로 불쑥불쑥 나타난다. 우리 엄마도 그랬다.

우리 엄마는 자식들 다 키우고 이제 덕을 좀 봐도 되겠다 싶을 58세에 돌아가셨다. 결혼하여 자식을 둔 나이임에도 엄마를 잃은 상실감이 너무도 커서 그리고 고생만 하신 엄마의 삶이 한스러워 꽤 오랫동안 슬픔에 빠졌었다. 그럼에도 시간이 약이라고 또 그럭저럭 살아가게 되면서 산 사람은 이렇게 사는구나 했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처음 맞은 내 생일날이었다. 생일상에 올라온 미역국을 보는 순간 눈에서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뭐지? 영문을 모르는 눈물에 당황하고 있는데 눈물은 가슴까지 번져 울음으로 터져 나왔다. 가족들이 왜 그러냐고 묻는데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가슴속에서 엄마의 모습이 스멀스멀 밀려 나왔다. 미역국을 보면서 내 몸이 엄마를 기억했나 보다. 엄마를 잊고 산다 생각했는데 내 가슴 깊이 엄마가 살아 있었나 보다. 그러한 엄마를 온몸으로 아프게 기억한 날이었다.

생각해 보니 엄마가 돌아가신 후에도 나는 엄마에게 많이 의지하며 살고 있었다.

‘엄마, 오늘은 힘드네, 엄마, 어떻게 하지? 엄마...... ’

힘들 때마다 엄마를 불렀었다. 그러면 조금은 힘이 나고 위로가 되기도 했었다.

‘아. 엄마도 내 마음속에 세컨하우스를 남겨 주었구나. 그렇게 나에게 위로를 주고 있었구나......’

부모에게 자식은 가슴에 심어 놓은 심장과 같은 존재이기에 자식은 부모의 마음을 따라올 수 없다 하지만 자식에게도 부모는 평생 가슴에 박힌 그리움이다. 아픈 그리움이다. 그런데 내 안의 세컨하우스를 발견한 오늘은 그리움도 포근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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