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Vol.5

by 영복

요즘 와이프와 하루에 한 두편씩 아껴보는 드라마가 있다. "폭싹 속았수다."라는 드라마인데, 원래 우울하고 진지한 분위기를 싫어하는 나지만 나이가 들면서 성격이 바뀐건지, 우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밝고, 행복이라하기엔 묘하게 찝찝한 이 감정이 나를 드라마로 빠져들게한다.

제주도 태생의 한 여인의 일대기를 그린 이 드라마는 주인공인 딸의 모습부터 시작하여, 어른이 된 후 자신을 똑 닮은 딸을 낳으며 진정한 어른으로 성장해가는 드라마이다. 물론 이 부분만으로도 충분히, 오히려 현실보다 더 현실적이라 충분히 공감이 되지만 이 드라마에서 내가 더 눈길이 가는 곳은 그 주인공 옆의 남자, 바로 관식이의 모습이다. 드라마에서는 둘도 없을 애처가로서 전후시대의 남존여비의 풍세 속에서도 한 여자만을 지극히 아끼고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그런 호기로움이야 젊은 날의 사랑이 주는 달콤함에 취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내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아빠가 됐을 때의 모습이다.

공부를 잘하는 첫째 딸 금명이를 시집보내기 위해서 상견례를 하던 중, 시가 쪽의 모진 말과 모진 행동에도 가족에 대한 책임감과 사랑으로 다져진 그 간의 호기로움은 온데간데 없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모습에 실망을 했다. 만약 미래의 내 딸이 그러한 취급을 받는다고 생각하니, 눈이 돌아버릴 것 같았지만, 드라마가 끝난 후 천천히 생각해보니, 부모로서 자식을 사랑하는 방법이 꼭 무엇을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때로는 관식이처럼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자식을 사랑하는 한 방법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뒤돌아서 눈물을 훔치더라도 자식이 내가 흘린 눈물에 상처받지 않게, 눈물과 슬픔을 보지 않게 해주는 모습이 진정한 아빠의 모습이고 또 부모의 모습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이렇게 감정을 숨겨가며 사는 어려운 일일거다.

나를 닮은 자식을 마주한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을까? 드라마가 주는 묘한 우울감에 더해 아빠가 된다는 것, 얕은 감정을 숨기고 할 말을 목 끝 아래로 도로 쳐넣는 일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누군가에겐 위로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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