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토록 계산적이었던 나에게

by 영복

우리 집 서재에는 우리 부부끼리 '데쓰 노트'라고 부르는 비밀 엑셀 파일이 있다. 이름이 좀 섬뜩해서 그렇지, 누구를 저주하거나 욕하는 파일은 아니고, 단순히 우리 부부의 결혼식날 축의금을 정리한 파일이다. 그런데 왜 파일 이름이 저런가? 파일 이름이 처음부터 저랬던 건 아니다. 이 파일의 초기 버전은 '축의금 정리.xls'였지만 잦은 고초를 거쳐 지금의 이름이 완성된 것이다. 점점 늘어나는 애경사에 축의금이나 부조금을 얼마만큼 보답해야 하는지 확인하려 축의금 정리 파일을 열어보니 이 사람은 가족이 총출동했는데 이 정도만 했다고?, 또는 왜 이 사람은 명단에 없지? 등의 순간들이 쌓이고 쌓여 지금의 파일 이름을 완성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쁜 기억은 더 진하고 선명했다. 이렇듯 나는 계산적인 사람이었다. 받은 액수만큼'만'을 돌려줘야 하고, 나의 기쁨에 또는 나의 슬픔에 공감하고 위로해 주는 사람에게'만' 나도 똑같이 보답해야 할 책무를 느끼곤 했다.


지난주 우리의 우주 예온이가 태어나고 정말 많은 축하를 받았다. 태어나자마자 몰려오는 카톡과 문자, 그리고 축하전화까지. 일일이 다 답장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연락이 왔다. 걔 중에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람들에게서 온 연락들도 있었다. 그리고 과분할 정도로 많은 축하금, 축하 선물 등이 쌓여 조리원을 마치고 돌아간 집 앞은 흡사 생일을 맞이한 연예인 집 앞 풍경을 그리기도 했다. 문득 그토록 계산적이었던 내가 이렇게 큰 축하를 받을 자격이 있는지 생각이 스쳤다.


세상 사람들도 다 나처럼 계산적으로 산다고 생각해 왔다. 소위 한국인의 정이라는 것은 이미 사장된 표현이라고 단정했고, 인터넷만 살펴봐도 나오는 조금의 언짢음과 사소한 손해에 발악하는 추태를 보며 그 풍경이 막연히 내 주변에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너무나도 큰 착각이었다. 우리 딸에게 보내는 따뜻한 손길을 통해 내 주변에는 차가운 계산에 따르기보다 따뜻한 손해에 더 무게를 두고 사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는 것을 느꼈다. 고마우면서도 사소한 손해도 참지 못했던 그동안의 내 삶이 부끄러워졌다.


여전히 어른이 되는 것은 어렵고 막연하다. 하지만 한 집의 가장이 된 지금, 그리고 두 여자의 평생 보호자로서 살아내야 하는 나는 그 막연함을 잘 지고 가야 한다. 이번 일을 통해 막연함을 선명함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나 스스로의 잘못된 오해가 아니라, 주변의 따뜻한 손해라는 것을 몸소 느꼈다. 예온이의 탄생은 또 이렇게 나에게 어른이 되는 법을 넌지시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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