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생강박증

by 영복

"언니 집 유튜브 알고리즘은 망했어."

우리 집에 놀러 온 처제가 우리 집 유튜브 추천 영상을 보더니 처음 한 말이다. 우리 부부는 가정 경제에 보탬이 되고자 공동의 유튜브 계정을 사용하는데 지금껏 살아온 인생만큼이나 다른 취미와 주제 덕에 우리의 유튜브 추천 영상이 중구난방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 부부가 같이 좋아하는 채널이 있는데, 띱이라는 채널이다. 와이프가 추천해 준 채널인데, MBTI별 연애 등의 주제에 처음에는 유치하다며 손사래를 쳤다가 지금은 와이프가 없어도 혼자 즐겨보는 채널이다. 이번에도 와이프가 조리원에서 몸을 회복하던 시기에 재미있는 콘텐츠가 올라와서 리모컨 버튼을 꾹 눌렀다.


'갓생'이라는 제목의 짧은 드라마였다. 세 명의 등장인물이 나와서 자신의 갓생 일지를 엿가락처럼 쭉 늘어뜨린다. 새벽 러닝부터 시작해서, 퇴근하고도 이어지는 어학 공부, 그리고 주말을 반납하면서 자신의 스펙을 쌓기 위해 자신들이 한 다양한 활동들을 서로를 향해 쏘아대는데, 셋 중 한 인물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물론 이 인물도 열심히 운동을 하고, 어학 공부도 한다. 새벽 러닝 대신 침대에서 일어나 물을 뜨러 가는 그 짧은 동선에서의 운동, 학원을 가는 대신 일본 애니로 보면서 하는 어학 공부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결코 갓생이라고 할 수 없는 이 인물의 독백으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그 할 일이란 아직 오늘의 하늘을 못 봤다는 에필로그.


뭉클했다. 손이 빠른 편이라, 학교에서의 업무도 밀리지 않고 그때 그때 처리하는 편이다. 으레 일을 빨리 처리하면 마음이 여유로워져야 하는데, 정반대이다. 일을 처리한 뒤에 생기는 여유는 편안함을 선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조급함을 준다. 그래서 그다음 일도 더 빨리 처리하게 된다. 그 이후는 더 할 일은 없는지? 다른 사람들은 바쁜데 왜 내가 여유롭지? 놓친 일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강박까지 생기기도 한다. 이런 불안함은 나의 스펙을 더 업그레이드시켜야 한다는 결론으로 귀결되어 뜻하지 않은 대학원 진학, 연구대회 보고서 작성, 매일 읽어야 하는 신문, 어학 공부라는 나에게는 낯선 출구를 안내했다. 나를 더 갓생으로 밀어내게 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나 자신이었다. 그래서 '갓생'을 보고 뭉클했고, 나 자신에게 찡한 마음이 들었다.


방학 전 학생들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이 있다. 긴 방학이니만큼 실컷 놀다 오라고, 휴식을 휴식답게 즐길 수 있는 사람이 결국엔 승자가 될 것이라고. 결국 이 말은 쉴 때도 두려워하는 나에게 한 말이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내가 놓친 것이 잊지 않을까, 다른 사람에게 뒤처지지 않을까 불안한 마음이 든다. 이 갓생강박이 언제 치유될지는 모르겠다. 다만 이제 한 아이의 아빠로서, 맑은 하늘 한 번 더 보는 것의 가치를 잊지 않고 갓생을 좇으면서 놓치는 사소한 것들을 더 사랑하려 한다. 이런 아빠의 모습에서 우리 예온이가 살아간다는 것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눈과 마음에 양껏 담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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