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말들

by 영복

초등학교 6학년 국어 교과서에는 우리 주변에서 쓰이는 다양한 관용 표현들에 대해서 배우는 차시가 있다. 아는 사람이 많다는 뜻의 '발이 넓다'나, 무모할 정도로 용감하다는 '간이 크다' 등의 관용 표현을 배우고 이를 실생활에 적용해 보는 시간이다. 교직 생활의 대부분을 6학년을 맡았으므로 그동안의 노하우를 적용하여 항상 이 단원을 마무리 할 때는, 그동안 배웠던 관용 표현을 통해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시를 쓰는 활동을 한다. 교사의 입장에서는 이 활동을 통해 학생들이 그 동안 배웠던 다양한 표현들을 서로 다른 상황에서 의미 있게 썼으면 하는데, 학생들이 쓰는 관용 표현들은 대부분 비슷하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내 동생', '바라만 봐도 좋은 우리 엄마' 등. 흔하디 흔한 표현들이다. 물론 학생들이 배운 관용 표현의 가짓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표현력의 한계라고 치부는 해도, AI 시대에 학생들의 틀에 박힌 표현들을 보면 왠지 씁쓸하다.


예온이와 우리 집에서 보낸 첫날밤을 잊지 못할 것이다. 겨우 팔뚝 길이만 한 몸으로 세상을 향해 힘껏 울어대며 꼼지락꼼지락 움직이는 그 포슬한 다리 마디 속에서 내는 생의 아름다움에 우리 부부는 맘껏 감동했고 우리의 걸작을 눈에 양껏 담았다. 하지만 신생아의 아름다움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았다. 문제는 밤이었다. 신생아의 잠과 분유 주기에 익숙해지지 않은 우리는 예온이의 시도 때도 없는 경보 알림에 잠을 설쳤고, 분유를 먹인 후에도 우리는 예온이를 다시 재우기 위해 꽤나 애를 먹었다. 그렇게 잊지 못할 첫날밤을 보내고 우리 부부는 밤에는 서로 시간을 나누어 아이를 돌보는 게 나을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지금의 나는 새벽 4시부터 예온이의 손과 발이 되어준다.


며칠 전이었다. 새벽 4시에 분유를 먹이고 트림을 시킨 뒤, 예온이를 재우려고 하는 데, 해가 막 뜨기 전 그 고요한 새벽 예온이의 모습에 벌컥 사랑이 일었다. 이게 정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말일까? '바라만 봐도 좋다.'는 말은 이런 벌컥에서 나온 걸까? 하는 벅찬 감동이 몸 안쪽 깊은 곳에서 벌게졌다. 쌔근쌔근 들릴락 말락하는 숨소리에 아빠로서의 책임감도 묻어났겠지만, 그 책임감보다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은 아이를 너무 사랑할 진실된 마음이었다. 마음이 가라앉은 후, 문득 내가 교실에서 했던 생각이 떠올랐다.


6학년 학생들도 초등학교에서는 가장 최고학년이지만, 기껏해야 초등학생이다. 그 학생들의 세상에서 쓰는 사랑하는 사람을 향해 던지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말들은 결코 어른들의 눈처럼 진부한 표현이 아 닌 것이다. 그 말은 지금까지의 자신의 삶 속에서 경험했던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벅찬 말이었다. 말들이 주는 진정한 울림은 이렇듯 나에게 새로운 세상이 열린 후에야만 알 수 있는 것이었다. 앞으로의 우리 반 학생들에게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AI 시대라고는 하지만 이런 흔하디 흔한 표현들로 세상을 더 자주 울렸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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