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걸음만 더

by 영복

새벽 네 시를 조금 넘긴 시간, 아기가 칭얼거리는 숨을 내기 시작한다. 애써 재우려하지만 쉽게 다시 잠들지 못하는 아기를 보며 배가 고프구나 생각한다. 눈 앞의 피곤을 훠이 저어가며 조심스레 아이를 안고 무릎 위에 눕힌다. 그러고선 따뜻한 분유를 입에 갖다 대면 아기는 눈도 못 뜬채 그 작은 입술로 젖병을 쪽쪽 빨기

시작한다. 젖병 한 통을 뚝딱 다 해치우는 동안에도 아빠는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다. 분유를 다 먹이고 트림을 시키려 등을 툭툭 두드리지만, 눈꺼풀은 이미 서로에게 기대어 있다. 트림을 완벽히 시키지 못한 채로 졸음에 두 손을 들어 다시 아이를 침대에 눕힌다. 그러면 얼마간의 평화가 다시 주어지지만 트림을 못해서 가슴이

답답했던 아기는 얕은 잠에 금세 몸을 비튼다. 불편함이 채 가시지 않은 탓이다.


초등학교 고학년, 특히 여자아이들은 상담할 일이 왕왕 있다. 15년차의 경력으로 나름의 노하우가 발휘돼서 운이 좋게 문제가 쉽게 해결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여자 아이들의 상담은 늘 소모적이고 마음이 불편하다. 어느 날 상담을 하던 아이는 하던 말을 잠시 멈추고 바닥을 바라봤다. 무언가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그 시간들이 막막하고 답답하여 시계를 한 번 힐끗 보았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얼른 하고 마무리하면 좋겠지만, 아이는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나ㄴ 다음 시간 수업 준비로 핑계를 대며 상담을 마무리했다. 지금까지 학생의 말을 경청하여 이제 겨우 학생이 마음을 여는 그 순간, 그 몇 초의 침묵을 기다려주지 못한 순간이 결국 아이의 마음을 닫아버린다.


나의 삶은 가끔 이렇게 한 걸음이 모자란 채 살아진다. 새벽의 눈꺼풀의 무게를 참지 못하고 아이를 바로 눕히는 일. 꾹 닫힌 아이의 입술이 하고 싶은 말들로 밀려 이제 막 열리는 순간, 그걸 참지 못하고 다시 닫아버리는 일까지. 마지막 한 걸음이 부족해서 그 동안 걸어온 길들이 가치가 없어진 것처럼 느껴질 때면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편치 않다.


다시 아이를 안아 올린다. 이번에는 졸음을 조금 미뤄두고 등을 천천히 두드린다. 작지만 규칙적인 리듬이 손끝에 따뜻한 숨결로 느껴진다. 곧이어, 트림 소리가 조용히 들려온다. 그제야 아이의 몸이 축 늘어지고, 얼굴이 편안해진다. 동시에 유부남만이 느낄 수 있는 작은 성취감이 밀려온다. 집에서건 교실에서건 단순하지만 무심히 내딛는 마지막 한 발자국이 결코 한 걸음이 아닌 이유가 느껴지는 아기의 트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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