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만의 첫 휴식이었다. 매해 조금씩의 차이는 있었지만 학교는 늘 바빴다. 지금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미덕처럼 여겨지는 그 바쁨이 우리에게 주는 건 그럴듯한 삶의 보장이 아니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불편한 관성들일지도 모른다. 그만 두거나 멈춰야 할 때, 이러한 바쁨은 그 나약한 나태를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 나 또한 그동안 그런 관성에 익숙해져 있었다. 며칠전까지만하더라도…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 해야 할 업무가, 퇴근하고 자려고 몸을 누이면 내일의 일정이 머릿속을 채웠고, 그 머리 안에는 '해야 하는 일'과 '이미 한 일'이라는 두 부분만이 존재했다. 다른 의미있는 것들이 들어갈 틈이 없었다. 하지만 문득 찾아온 병가 기간은, 그 쉼 없이 달리던 습관성 열차를 탈선하게 만들었다. 바라건대, 바람직한 탈선이었다. 하릴없는 멈춤이었지만, 나는 비로소 빗겨선 자리에서 나의 자리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 자리에는,너무 당연해서 오랫동안 잊고 있었거나 애써 무시했던 진정한 삶의 가치들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뛰는 것이 정말 좋다. 정리되지 않은 계획들, 불확실한 미래로 복잡한 머릿속이 땀과 함께 뱉어지게 나면, 몸은 단단해지고 정신은 맑아진다. 매일 야근으로 피폐해진 몸과 마음이 줄 수 없는 황홀의 영역이다. 매번 포기하고 싶은 순간들을 이겨내며 마지막까지 질주하여 얻어낸 나에 대한 자신감과 긍지는 그동안 일터의 관성이 결코 주지 못했던 다른 뿌듯한 보람이었다. 온전히 나의 몸과 마음에 신경쓰고 더 보살피는 일이 이토록 중요하고 행복할 일일줄은 미처 몰랐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소중한 것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행복한 시간이었다. 갓 태어난 아기에게 눈을 마주치며 사랑을 듬뿍 말할 수 있고, 옆에 있어 너무 익숙해진 아내에게 고마움과 존경을 마음껏 표현할 여유가 생겼다. 이러한 평범한 하루하루 속에 그저 함께 먹고 마시며 대화하는 순간들이 얼마나 나를 행복하게 해 주는 시간들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가족의 눈빛에서, 그리고 웃음소리에서 느껴지는 따뜻함이야말로, 그 어떤 직업적 성취나 물질적 보상과도 바꿀 수 없는 진정한 행복이었다.
진정한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은 수없이 들어왔지만, 이 말을 피부로 느끼는 경험은 지금이 유일하다. 런닝으로 나를 사랑할 땀을 내고, 소중한 이들과의 관계를 더욱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을 다지는 순간들은 결국 탈선한 기차 옆에서에서야 비로소 발견할 수 있었다. 언젠가 나도 다시 선로 위에 서겠지만, 그 속에서 이 소중한 가치들을 놓치지 않으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