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부루스

-2호선 부루스-

by 김휴

지하철 부루스


출발과 도착의 의미가 없는

윤회와 같은,

호떡 한 개 값의 이 순환구간을 좋아한다

그 질주 안에서
나는 수십 번 사랑을 하고 수십 번 동거를 하고
그리고 수십 번 이별을 할 수 있으므로
받드시 눈을 감아야 하는 이 불편함을 좋아한다.

건너편 졸고 있는 여자와 몰래 만든 아이를

거리낌 없이 분실하고도
이 구간에서는 용서될 수밖에 없어서


어느 역에서 조용히 올라타서는

한참을 졸다가

쓸쓸히 내리는 헤겔을 만날 수 있어서 좋다


철학은,

철학적이지 않은 것에 생성된다는 것을.....

고회성사 한번 없이
나에게서 나에게로 온전하게 돌아올 수 있는,
도착을 잃어버릴 수 없는


앉아서 죽기 좋은

이 잡념의 구간을 좋아한다


글&사진. 김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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