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윤철 Sep 24. 2021

무에 그리 급해서!

타향살이

명절 연휴가 끝나자 아내가 재난 지원금 받으러 함께 가잔다.  신분증, 안경 등 잔소리 들어가며 준비.  이번엔 아내가 시간을 끈다.  추석, 가을 등 어제 찍은  사진들을 정리하고 있다. 서두르랬더니 시계를 가리킨다.  공공기관 업무 시작 전이다.  빈둥대다 주민센터 도착하니 꽤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대부분이 연세 지긋하신 분들이다.  노인들은 모든 게 좀은 느리다.  나 역시 마찬가지.  눈도 귀도 나잇값을 한다. 한참을 기다리니 안내하시는 분이 오후엔 기다리지 않아도 된단다.  지루함 끝에 볼일 끝.  딱히 지금 필요한 일도 아니다.  그냥 집으로!  무에 그리 급해서!


퇴임 후 지하철 다니는 도시로 이사.  아내와 첫나들이.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에 나란히 동승.  갑자기 누군가 등을 떠민다. 돌아보니 나를 제치고  앞으로.  그때 깨달았다. 에스컬레이트는 편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고 더 빨리 가기 위한 수단이다. 다음부터 에스컬레이트 탈 때는 아내와 나란히가 아니고 아내 뒤에!  노 빨리빨리!


나는 병원 신세 후 조금만 달려도 숨이 가쁘다. 그런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달리고 있다.  집 앞의 8차선 도로.

30초 정도의 파란불. 학생들이 달린다. 이유는 등교. 나는?  길 건너면 학생들은 학교로 나는 강변의 산책로로.  1시간가량의 걷기 운동과 약간의 근력운동.  샤워하고 나면 그냥 빈둥거린다. 왜 달렸을까? 

신호등 앞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싫어서?  글쎄다!


산책 가는 길.  골목을 들어서니 학생으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모여 담배를 피우고 있다.  돌아서 다시 큰길로.  한 소리 하기도 쉽지 않다.  멀고 먼 인생길 무에 급해서!  반 세기 전,  훈련병 시절.  그때는 담배 일 발 장전이란 시간도 있었다. 라떼의 전설.  50분의 고된 훈련. 미군들이 쓰던 M1 소총은 내 체격에는 무리. 꿀 맛 같은 휴식 시간.  모두가 일 발 장전.  혼자 별 사탕.  모양 빠진다는 생각. 그래서 시작한 담배.  50년 뒤 의사 왈. "담배를 피워 허파꽈리가 망가졌다는 말씀."  10년째 금연 중.  아직도 담배 연기는 구수하다.  


은퇴하고 나니 자유가 너무 많다. 거의 모든 게 자유다.  자유의 다른 말.  그냥 빈둥거린다는 얘기. 그러다 알게 된  노인 종합 복지센터. 참 많이 이용했다.  대한민국 참 살기 좋은 곳이다.  가성비 만점. 사진, 기타, 유튜브 제작. 참 많은 것을 배우고 지금도 잘 활용하고 있다. 손주들 모습을 유튜브로 만들어주면 정말 좋아한단다.  온라인 수업은 지금도 계속 중이다. 그중 매일 하는 일. 체력단련.  눈 뜨면 복지관으로.  8시 개장.  도착해 보면 많은 어르신들이 줄을 서 계신다.  무에 그리 급하신지.  나는 근력운동을 좀 열심히 한다.  그리고 끝나면 바로 집으로.  어르신 한 분의 말씀!

"집에 가면 뭐 합니까?"  "딱히 하는 게 없습니다."  "그럼 식사나 하고 가세요."

나는 밥은 집에서 먹는다.  나보다 연세 있으신 분들은 여기가 그냥 놀이터다.  새벽잠이 없으시니 그냥 일찍 나오시는 거다.  그리고 주로 걷기 운동.  러닝 머신이 아닌 워킹 머신.  천천히 걸으시며 친구들과 잡담. 샤워 후 식당으로.  그리고 바둑 한 판.  지금은 그리운 분들이다. 위드 코로나라도 되어 함께 달렸으면 좋겠다.


 눈 뜨면 폰부터.  SNS로 가족, 친지들 소식 점검.  안부 인사 보내기.  기타 크로매틱 손 풀기.  식사. 커피 한 잔과 함께  컴퓨터 앞으로.  게임 혹은 생각 정리.  게임은 몇십 년 전 하던 카드 게임.  생각 모이면 잡문 끄적이기.  점심.  육 천보 걷기와 근력 운동.   샤워 후 휴식.  기타 연습과 TV 시청.  저녁.  나의 하루 일과. 빈둥 거리는 것 같은데 꽉 찬 시간이다.  알찬 시간은 전혀 아니지만  그래도 바쁘다.  백수가 과로사한다는 말 이해!


사진 작업이라도 할라치면 자식들 호출하기 바쁘다.  아무도 없으면 혼자 힘으로.  일장일단이 있다.  자식들 호출하면 일은 빨리 끝난다.  대신 같은 일도 시간 지나면 못 한다.  원리는 모르고 순서만 외우니 다음번에는 알쏭달쏭.  다시 자식들 호출.  나보다 열 배는 바쁜 자식들에게 미안.  나 혼자 하면 속도는 늦지만 잊지는 않는다.  나는 은퇴 백수! 지금부터는 혼자 힘으로 한다.  무에 급해서!














매거진의 이전글 브이로그 연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