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칠순 기념으로 가족 여행을 다녀온 지도 두 해를 넘기고 있다. 그동안 가장 큰 사건은 역시 코로나 방역! 밖으로 나돌 수도 없고 남아나는 시간에 여행기나 정리하고 공원에서 운동이나 하며 홈트니 공트니 젊은이들의 줄임말 배우기로 소일. 세상사, 일상, 코로나 방역 모든 것이 답답한 지금. 무언가 뒤돌아 보는 시간을 가져 볼까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시 비슷한 거나 한 편? 나는 시를 좋아하지 쓸 능력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내 손 밖의 큰 것을 탐하지 말고
내 손으로 이룬 작은 것들을 사랑하자
30년 혼자 세월 거쳐
40년 동안
바닥에 한 층 한 층
가족이란 이름으로
함께 쌓은 탑
이룬 것 작고
가질 수 있는 것도 작고
그 작은 것조차 바라기 늦은 즈음
이루지 못한 회한 대신
이룬 것들을 사랑하자
시로 형상화 하려니 1연부터 꽉 막힌다. 내 손밖의 큰 것? 내 능력을 모르니 어느 정도가 내 손 안인지 시어로 표현할 방법이 없다. 내가 탐할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 사람의 욕심은 한이 없다는데. 어디까지가 능력이고 어디서부터가 과욕? 뉴스를 장식하는 그 천문학적인 숫자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욕심 낼 수 있는 것들이 아닌 것 같다.
미국 시인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의 마지막 연을 보면 한숨지으며 말한다는 구절이 나온다. 영어의 sigh와 우리말의 한숨의 어감 차이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아쉬움이란 의미에서는 대동소이한 것 같다. 프로스트 정도의 대가도 자신의 삶에 아쉬움이 남는다는 말이다. 하물며 나 같은 범인이야!
분수를 모르면 욕심이 커지고 결국은 이룬 것들에 대한 사랑도 없어질 것 같다.
나는 이십 세기를 더 오래 산 사람이다. 당시의 관점에서 본 다면 나는 참으로 많은 것들을 이룬 것이 아닌가 !
사변동이인 우리 세대는 상대빈곤이 아닌 절대빈곤의 시대였다. 초등학교, 당시에는 국민학교라 불렀다. 저학년 때는 지금은 폐지된 전매청의 담배 창고에서 수업을 했다. 나? 대구 사람. 수창초등학교 졸업생. 4학년이 되어서야 학교 건물에서 공부. 운동장에서는 군인들이 훈련을 하고 있었다. 학교가 군대에 징발되었다는 말. 군인들 철수 후 운동장을 파면 탄피 등 군용 물품들이 나오기도 했다. 부잣집 자식이나 입던 사지란 이름의 옷도 미군들의 군복이었다.
미국은 거지도 양주만 마시고 양담배만 피운다는 우스개 소리가 들리던 시절.
대학 시절, 모든 것이 힘들던 시절. 형편에 맞지 않는 취미. 등산. 당시에는 참으로 고급진 취미였다.
벼르고 별러 친구들과 간 지리산 등반. 대부분의 장비들이 군에서 사용하는 물품들이었다. 길 옆에 놓여 있던 수통. 그때는 산에 있는 쇠붙이는 만지는 것이 아니었다. 심심챦게 발견되던 6, 25 사변의 잔해물들.
"저거 뭐지?"
"만지지 마라! 터진다!"
"포탄 아니다."
복학생 형의 위용! 이리저리 만져 뚜껑을 여니 처음 보는 등산용 수통이었다.
"새로 나온 수통인 모양이다. 잃어버린 놈, 참 아깝겠다."
당시는 수통 하나도 군용이 아니면 고급 장비 취급 받든 시절.
산업화 시대를 거치며 경제는 나아졌지만 빈부 격차가 심해지며 상대 빈곤이란 의미도 알게 되고 약간의 박탈감도 느끼는 시대를 거쳐 지금은 4차 산업의 시대. 5차 산업이란 말까지 등장하고 있다. 우리는 도시화, 산업화 세대. 탐하기보다는 사랑을 말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세대이다.
선배의 정년 퇴임식에서 주고받은 말.
"축하한다는 말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정년까지 무탈했으니 당연히 축하한다는 말이 맞네."
역시 연륜인가? 지금부터는 자기의 삶을 사랑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처럼 느껴졌다.
전화가 왔다. 그것도 화상통화.
"하이!"
"할아버지!"
옛날 첫사랑이란 드라마에서 가수 지망생이 부르던 노래가 생각난다.
"보고 있어도 보고싶은..."
지금은 둘의 대화는 영어로 한다는 손주들이다. 이녀석들 때문에 미국 몇 번 다녀왔다. 글로벌 시대 실감.
영어가 실력의 척도처럼 인식되던 시대를 산 내게는 어린 손주들의 영어 대화가 대견하고 신기하기까지 하다.
미국 체류시 손녀와의 일화 한 토막.
"루아 주전자 어딨노?" 루아는 손녀의 이름이다.
"주전자?"
"티 스팟!"
딸의 통역에 주전자가 있는 찬장 손짓.
동전의 양면성. 한편으로는 서운하기도. 초등학교 입학한 손녀. 나는 그만큼 늙어간다는 말이겠지. 세월 한탄이 아니다. 손주들이 자라면서 전화 횟수가 줄어 들었다는 말이다. 벌써 바쁘다는 말.
더 자라고 더 바빠지면 나는 잊혀진다는 생각. 당연한 말이지만 약간은 서운!
오늘은 손주들 사진을 모아 유튜브라도 만들어야겠다. 다른 생각 말고 현재만 사랑하자!
내가 시를 써 보겠다는 것 역시 욕심! 짓지 못할 시는 포기하고 내가 가진 것들을 사랑하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