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토네 해봐."
“토매.”
“토네.”
“토매”
“이도우.”
“이토우.”
“토네이도우!”
“토매이토우!”
“토네이도우!”
“토매이토우”
“할아버지 먹는 것 아니야.”
“바람? 윈드?”
“아빠! 토네이도우 맞다.”
“아가 토네이도를 우예 아노?”
“어제 유튜브에서 봤다.”
어제 미국 사는 손자와 화상 통화로 나눈 대화의 일부이다. 손자는 내년에 유아원에 등록하는 네 번째 생일을 두 달 앞 두고 있다. 영어 토네이 도우는 알지만 태풍이란 우리말을 모르니 발음으로 설명한 것이다.
영어 정말 어렵다. 특히 어린이들과의 대화는 무슨 벽보고 하는 것 같다. 어른들과의 대화는 바디 랭귀지를 섞으면 어느 정도는 통하지만 초등학교 저학년 또래의 애들과는 대화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LA에는 멕시칸이라 불려지는 히스패닉 계열의 사람들이 많다. 이들의 스페인식 발음은 알아듣는 애들이 내 영어는 하나도 모르겠단다. 딸의 말. 나만 그런 게 아니라 한국 이민자들 대부분의 문제란다. 중학교 입학 때부터 고둥학교 졸업 때까지 가장 많이 하는 공부가 영어, 수학인데 초등학생들과도 대화가 안 되다니 그 참!
딸이 멀리 있으니 쓸데없는 걱정도 생긴다. 기우란 걸 너무나 잘 알지만 시간이 부유하니 한 번씩. 유치원에 다니는 손녀는 온라인 수업을 하니 우리와 통화를 자주 한다. 친구들과 만나면 외조부야 곧 잊겠지만 코로나 물러 갈 때까지는 친구가 되어주어야겠다는 생각.
영어 못 하는 우리와 대화하다 영어가 안 늘면 어쩌나 이것도 걱정, 이 녀석들 우리나라 와서 “할아버지 뜨신 물 안 나온다.” 이런 소리 할까 이것도 걱정. 참 행복한 걱정! 그래서 영어 한 마디씩 섞어주려 노력 중! 덕분에 집안 곳곳에 포스트잇!
“하이! 오늘 재밌었어? 엄마는?”
“설거지하고 있다.”
“설거지! 워싱 디쉬.”
처음엔 못 알아듣더니 발음 교정을 해 준다.
“워 워 워싱!” 따라 해도 잘 안되니 몇 번이나 반복해준다. 할아비 가르치는 게 재미있는 모양이다. 입모양을 자세히 보니 워가 원순 모음의 형태다. 워싱이 아니라 우워싱에 가까운 입 형태. 누나의 영어 강좌를 기억한 손자가 토네이도 발음을 내게 전수한 것이다. 십 년 넘게 영어 공부한 할아비 체면 참!
문화의 차이인지, 우리말의 우수성 때문인지 우리나라는 발음 공부를 따로 하지 않는다. 그런데 미국은 글자에 앞서 발음부터 먼저 가르친다.
"에이 이즈 애플! 애애 애플" 사립 유아원에서 배워온 것들을 자랑하던 손녀에게 배운 에이 발음이다.
지금 손녀는 공립 유치원 생이다. 8월 부터는 1학년.
문제는 발음은 점수화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입시가 중요한 우리나라 교육. 대학 입시에서 영어가 빠진다는 말은 벌써부터 있었다. 반대야 있겠지만 그것도 방법 중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
운동 시간을 미루고 손주의 전화를 기다린다. “옆에는 30일이면 미국 유치원생처럼 말할 수 있다.” 란 긴 제목의 책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 손녀 눈높이에 맞춰 근처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이다. 대부분이 아는 단어들로 연결된 짧은 문장들이다. 유치원생들과 대화를 할 수 있다면 웬만한 의사소통은 된다는 이야기. 영어 공부 헛한 것은 아니구나, “I can do it!” 요즘 말로 근자감.
온라인 수업만 듣는 손녀가 모처럼 선생님 만나러 간다고 기뻐하던 모습. 학교 가는 것이 기다려지다니, 그것도 친구 아닌 선생님 보러 가는 게 즐거울 수 있을까? 내 기억 속에서는 불가능이다. 그것도 영어 테스트. 집에서 영어를 사용하지 않는 이민 1세대 가정 학생들의 수준을 보기 위해 간단한 시험을 한다는 말. 아무리 의미 없다지만 시험 말만 들어도 머리가 지끈지끈하던 기억. 부럽다는 생각만!
그때 신나서 보여주던 발음들이 메모장에 빼곡히 적혀 있다. 칠천 보 걷기 하며 몇 번씩이나 남의 눈치 살피며 메모장 들여다보고 되뇌던 발음들 “네일 페인트” “그랜 파더” L과 R, F와 P. 도저히 구분되지 않는 발음들. 답답해서 손녀에게 한 말. “할아버지 영어 되게 못 하지?” “할아버지는 한국 살잖아.” 미국은 속지주의! 그래서 손주들은 미국 시민이다. 대한민국 국민인 내가 영어 못 하는 것은 당연지사. 마음껏 읊어보자. 하긴 닥치면 한다. 1년 채 안 되는 미국 생활에서 손짓, 발짓 동원한 콩글리쉬로도 할 건 다 했다.
영어는 혀를 꼬부린다. 버터 바른 발음! 영어 발음에 대한 말들이다. 년 전에는 자식들 혀 수술한다는 말도 있었다. 그런데 손녀와 대화 중에 느낀 점. 영어 발음은 혀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차라리 입술 모양에 더 신경 써야 할 것 같다. “네일 페인트” 아트란 말을 손녀가 잘 모르니 매니큐어는 네일 페인트라고 내게 설명. 네일은 L 발음. 이것은 입술 모양이 평순이다. 입술이 옆으로 벌어진다. 반면 오른 쪽 “라이트”는 원순 모음이다. 우롸읻에 가까운 발음. “파더”는 F “ 원순에 파열음이다. 푸와더에 가까운 발음.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 던가. 책과 메모장을 몇 번씩 읽어도 기다리던 전화가 오지 않는다. 내가 생각해도 조금은 우습다. 일흔 넘긴 나이에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는 요즈음에 언제 미국 가보겠다고 영어 공부냐? 그런데 다른 생각. “그럼 밖에도 못 나가는 지금 뭐 할 거냐?” 라떼의 말에 “노니 이 잡는다.”란 말이 있었다.” 이 잡는 대신 영어나 배워보자.
빌려온 영어책 뒤져서 “L 과 R, F 와 P”가 들어 있는 말을 찾아 메모장에 적는다. 부지런히 운동 가면서 발음해봐야지. 작심삼일만 아니라면 손자 학교 입학 때면 손주들과 유창하지는 못 하더라도 대화는 가능하지 않을까? 코로나 끝나면 미국도 한 번 더!
“I have a dre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