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세 시대
오늘은 일요일. 미국은 토요일. 손주들이 사위와 공원 가는 날이다. 손녀는 자전거, 손자는 킥보드. 세상 참! 한국 땅에서 태평양 건너 미국 손주들 일정을 꿰고 있다. 화요일이면 동영상과 함께 자랑질이 넘쳐 나겠지. 여기의 자랑질은 비속어가 아니다. 오늘 전화는 오지 않을 것이다. 다음 수요일 손녀 시험이 있으니 아무리 저학년이라지만 조금의 대비는 하겠지. 약간은 서운하다. 전화 오면 반갑지만 조금은 귀챦기도 하다. 부모 맘? 오면 귀챦고이 안 오면 섭섭하다.
전화 소리. 소리라기 보단 신호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시그널. 일단은 반갑다.
“하이! 자전거 타러 안 갔어?”
“ 자전거 많이 탔다.”
“안 피곤 해.”
“할아버지 보면 안 피곤해.” 맙소사! 큰일이다. 우리말을 이렇게 잘하다니. 걱정 한 가득.
다음부터는 혼자 놀이, 들어만 주면 된다. 눈치 봐가며 한 마디.
“수요일 날 학교 간다며. 걱정 안 돼?”
“아니! 선생님 만나면 좋지.” 겨우 딸과 통화.
“시험 친다 안 그랬나?”
“그냥 테스트. 집에서 영어 안 쓰는 애들만 따로 불러 일대일로 테스트해보는 거다. 코로나 걱정 안 해도 된다.” 딸네는 이민 1세대. 집에서는 우리말을 사용한다.
“영어는 잘 한 대?”
“걱정 안 해도 된다. 거의 아나운서 수준이다.”
시험이 아니라 온라인 수업에 참조하기 위한 간단한 테스트라는 말. 작년 귀국 전만 해도 우리나라 애니메이션인 “콩순이”를 보던 손주들이 지금은 자막이나 더빙 없는 “라푼젤”을 즐긴다. 온라인 수업도 신이 나서 따라 한다. 수업이라기보다 거의 놀이처럼 즐긴다. 영어는 리듬이 있다. 컴 앞에서 노래 부르는 모습이다. 동영상으로 보내온 수업이 “R” 발음을 할 때다. 손가락으로 대문자 “R” 그리며 재잘댄다. 두 살 터울인 손자 녀석은 덤으로 영어 공부! 그리고 내게 가르쳐 준 발음. “라이트” 라가 아니고 롸처럼 들린다.
딸이 올리는 가족 SNS 동영상에는 미국 방송 앵커 흉내, 유튜브 흉내까지. 토익 점수 꽤나 높은 이모가 거의 유튜브란다. “헤이 보이스 앤 걸스!”로 시작되는 유튜브는 “좋아요와 구독 부탁해요,”란 말까지 있단다. 나는 못 알아듣는다. 어른들은 “레이디 앤 젠틀맨”이라 하는데 손녀는 보이를 앞에 두는지도 모르겠다. 확실한 건 적어도 나보다 손주들이 몇 배는 똑똑하다는 거다. 천재라는 내 말에 딸 왈 “요즘 애들 다 그렇단다.”
딸은 우리나라에서 교사 생활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학생들에게 자기 과목 하나라도 더 주입시키기 위해 노력하지만 여기는 즐겁게 배우는 방법을 위해 노력한단다. 아직 어려서 그렇다니까, 그게 아니란다. 하긴 우리나라에서는 영어 발음을 위해 어릴 때 혀 수술을 한다는 말이 들린 적도 있었다. 미국도 하버드 대학이나 아이비리그 등 대학의 서열이 있지만 우리나라처럼 공부에 목을 매지는 않는다는 말. 딸 왈. “미국은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 보다 무엇을 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우리나라에는 좁은 국토 자원 하나 없는 나라가 이만큼 잘 살 수 있는 것은 교육의 힘이다. 란 말이 있었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란 말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21세기! 교육의 개념을 다시 정립해 볼 때도 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
의자
조병화
지금 어드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이 의자를 비워드리지요.
지금 어드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이 의자를 비워드리겠어요
먼 옛날 어느 분이
내게 물려주듯이
지금 어드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이 의자를 비워드리겠습니다.
조병화 시인의 작품 중 "의자"입니다.
의자 비워 드린다는 구절이 가슴에 와 닿는 나이. 나? 분명 연식 높은 노인이다.
새벽 운동 가는 길. 아파트 문을 나서니 선득한 기운. 강변의 철봉 앞에서 근 운동 전 가벼운 스트레칭을 한다. 긴 팔 옷을 입은 분들이 꽤 된다. 아니 연세가 있으신 분들은 거의 긴소매다. 여름이 가고 있다. 세월이 흐르고 있다.
한 시간의 운동 후 집으로. 조식 후 휴식 겸 SNS. 가족 밴드. 외손녀의 입학식 소식. 벌써? 미국도 비대면 수업, 등산 좋아하는 친구가 사진과 함께 글을 올렸다.
"노인에게는 내일이 없다. 오늘을 즐기자. 아직 노인은 아니지만."
이 친구나 나나 일흔이 넘었다. 분명 노인이다. 산의 사진이 천 미터급 산이다. 젊은이 못지않다. 그래도 아무리 에베레스트를 올라도 일흔이면 노인이다.
이 십 년 전의 추억 하나. 말썽 부리기 시작하는 차를 바꾸어 볼까 생각. 중고차 전문가와 상담. 시골 생활이라 출퇴근 거리가 짧다.
"많이 타지는 않았습니다."
"일 안 한다고 사람이 안 늙습니까? 연식이 중요합니다."
그 후로 7년 동안 그 차를 애용했다. 세월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인터넷 서핑 중 사이먼과 가펑클의 "험한 세상 다리 되어" 악보가 눈에 딱. 옛 생각. 입으로 흥얼거리며 코드를 보니 어려운 것이 적다. 기타를 잡아보니 될 것도 같다. 우선 느린 속도의 고고 리듬. 가장 많이 연습한 슬로 고고. 본격적인 연습. 한 마디 안에 코드 3개짜리. 많이 연습한 관용적 리듬이다. 그래도 안 된다. 나이 들면 조금씩이라도 매일 연습을 해야 한다. 해서 매일 손은 푼다. 그런데 분명 된 것도 다시 하면 안 된다. 연식! 며칠 연습하면 되겠지. 다른 곡 하다 보면 또 안 되고. 그래도 손과 입을 맞추어 본다.
"네가 지치고, 자존감이 떨어져 네 눈에 눈물 고이면 내가 너의 편이 되어 그 눈물 닦아 주리라. 아"
코로나 시작된 지도 1년 반이 되어 간다. 기타 동아리도 변화가 있었다. 대면 강의는 10명 한정.
30명씩 모일 때는 나이 지긋한 분들도 있었다. 그런데 선착순 10명. 내가 가장 연장자. 그마저 줌 강의로 바뀌었지만 내가 가장 연장자였다. 눈치가 없으면 코치라도 있어야 하는데.
문득 조병화 시인의 " 의자" 생각!
안 되는 손을 원망하며 입을 흥얼거린다.
"험한 세상의 다리 되어 그대 지키리. 험한 세상의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