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 가는 길에 은행 열매를 밟았다. 기분이 요상. 열매는 구리다는데 잎은 쓸었으나 열매는 청소 뒤에 떨어진 모양이다.
길가 학교의 담쟁이들도 잎을 떨구고 있다. 완전 가을 느낌. 백수라 별 느낌이 없었지만 시월도 종착역을 향해 달리고 있다. 할배의 감상. 쓸쓸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
가을이 가고 있다. 세월이 흐르고 있다.
멀리 있는 친구에게서 SNS로 연락이 왔다. 소식 없던 친구와 어찌 연락이 닿았는데 병원에 있다는 말만 들었단다.
시국이 지금인지라 문안을 갈 수도 없고 그 친구도 전화상으로 신신당부를 하더란다. 부담만 주니 제발 모르는 척 해달라고.
"너는 멀리 있으니 부담이 덜 될 것같아 연락하니 모르는 척 하라고."
이 친구도 1년에 네 번씩 정기 검진이 필요한 친구다. 나 역시 마찬가지. 병원에 있는 친구의 마음 다른 이들 보다 몇 배 더 이해. 라떼의 말 "동병상련."
이 친구도 나이가 연세인지 세월에 대해 이렇게 멋 있는 말을 할 줄 몰랐다.
"땡감과 홍시!"
학창 시절부터 내 별명은 영감이었다. 물론 대감 밑의 영감은 아니고 그냥 동작도 느리고 약간의 노안 영향까지. 절친들은 땡감이라 부르기도. 군 시절 선임의 말. "참 별명대로 논다." 굼뜬 동작의 영감. 먹을 수 없는 땡감. 그래도 왠지 정감이 가는 별명. 그 때도 싫은 별명은 아니었다 "어이 영감!" "와!"
직장 생활 할 때도 내 얼굴은 노안이었다. 고교 시절부터 처음 보는 동급생에게 선배 대접 받은 기억이 있다.
그 때는 별다른 기분이 없었는데 나이 들 수록 노안이 싫어지기 시작 했다. 그러다 은퇴. 지금은 내 나이를 찾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얼굴에 살집이 없었다. 주름이 많으니 노안이 될 수 밖에. 백수 생활을 하니 마음도 편하고 병원 신세 후 매일 적당한 운동을 해주니 체중이 거의 10kg정도 불었다. 얼굴이 통통.
자신감이 생기니 옷도 캐주얼하게.
아내와 TV시청을 하다 내 연배의 배우를 보며 물었다.
"와 저래 늙어 보이노!"
"거울이다. 지 나이 어데 가나!"
요즘 말로 "근자감."
젊어 보이는 게 아니고 제 나이 찾은 것이다.
일흔 넘긴 나이. 친구가 보내온 한탄.
"앞만 보고 땡감인 줄 알았는데 돌아 보니 홍시다."
여기의 땡감은 절대 네버 나쁜 말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