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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철 Jan 18. 2022

세월아 반보로

세월의 빠르기

찬 바람을 맞으면 에너지 소모가 많은 모양이다.  자리에 누우니 눈을 뜨기 힘들 정도로 피로가 몰려온다.  이불을 덮어쓰고 있으니 왼 무릎과 발목이 시큰거린다.  특히 발목은 아픈 것 같기도 하고 욱신거리는 것 같기도 하다.  하여튼 묘한 통증.  아내의 도움을 청한다.  

"무리하지 마라."

발목에 찜질기를 감아주며 핀잔 아닌 핀잔.

"매일 하던 운동인데  좀 춥더라."

"추울 때는 적당히 해라."

"엘리베이터 공사한 지 보름 다 되어가지?"

"내일이 한 달이다. 모레부터 정상 운행한다."

"한 달?"

세월 참 빠르다. 


엘리베이터 교체 공사로 운행 중지.  12층 아파트를 걸어 오르내린 지 벌써 한 달이란다.  느낌은 보름 정도 지난 것 같은 같은데....

하루에 한두 번은 오르내리고,  걷기 운동을 천 보 정도 줄인 것이 벌써 한 달!

시간을 체크할 일이 없는 백수의 시간관념.  느낌보다 시간이 배로 빨리 간다.

그래서 발목과 무릎이 아픈가?  내일부터 걷는 양을 반으로?


세월이 구보 하기를 기원하던 군 시절 이후로 시간의 빠르기를 실감한 기억이 별로 없다.  아마 지금이 처음인 것 같다.  집에서만 생활해야 하는 코로나의 영향?  아니 나이대에 따라 세월의 빠르기가 다르게 느껴진다는 말을 어느 책에서 읽은 것 같다.  나? 칠십 노인! 시간의 흐름이 느낌보다 두 배의 빠르기!


운동 후의 낮잠 때문에 잠이 늦게 들어 기상 시간이 늦었다.  톡 소리. 반갑다!

"하이!"

"할아버지!"

이불속에서 오랜만에 듣는 손녀의 목소리.  등교 후에는 전화가 부쩍 줄었다.  할 말도 별로 없지만 그래도 손주들의 목소리는 반갑다.  

"학교 갔다 왔어?"

"오늘은 학교 안 간다."

"선데이?"

"예스."

"동생은?"

폰을 손자 방향으로.  땅바닥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동생에게 말을 거니 폰 앞으로.  누나와 주고받는 말이 영어다.  

"할아버지!"

몇 마디 말도 않고 게임기 앞으로.  딸의 말.  손자는 우리말을 싫어한단다.  남매간의 대화는 영어로만.

며칠 전 손녀의 톡 건너편 소리.

"할아버지 한국말은 재미없다."  백 프로 이해.  한국말은 부모나 조부모들과.  영어는 또래들과.

한국말이 재미있으면 그것이 이상하다.  그래도 기분은 약간 섭섭.  사람은 기분을 중시하는 동물인 것 같다.


심심한지 계속 우리말로 재잘거린다. 

"다음 주 눈썰매 타러 가기로 했다."

"좋겠다."

"다음 주 빨리 왔으면 좋겠다."

손주들과의 대화는 좋지만 할 말이 별로 없다. 다행히 아내와 전화 교대.  이 녀석들과 한 시간 여를 놀아주는 아내가 신기하다.  


미국은 철저히 가족 단위의 생활이다. 코로나 때문에 더욱 심해진 가족 중심. 학교 가기 전에는 심심하니 우리와 대화. 그냥 맞장구만 쳐 주면 된단다.  남자들은 그마저도 힘들다. 한 시간씩 통화하는 아내가 신기했던 기억.


이 녀석들 떠나온 지도 벌써 이 년.  작년 설은 기억도 나지 않는데 벌써 두 번째 설이 코 앞이다.

눈 썰매장 가기를 기다리는 손주들의 시간 빠르기는 가늠하지 못하겠다.

확실한 것은 손주들 떠나온 것은 이 년이다.  그러나 느낌은 일 년!

70대의 시간은 느낌보다 두 배의 빠르기로 흐른다.



세월아 반 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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