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나들이

by 김윤철

혼자서 전철 타고 서울 나들이 정도는 할 때쯤 대학 동기 모임에서 연락이 왔다. 건강과 교통 문제로 몇 번 불참한 모임. 친구들도 보고 싶고 해서 참가 통보. 병원 생활 중 첫 면회를 와주신 분도 이 모임 친구의 부인이었다. 수술 후 마음먹고 하는 첫나들이! 잠을 설칠 만큼 설레는 것은 당연지사.


자가운전이 약간 두려웠지만 가장 든든한 보호자인 마나님과 함께인데 뭘. 세 시간을 달려 영주에 있는 숙소 도착. 친구들과의 만남. 과거엔 정기적으로 보던 얼굴들이지만 수술 후라서 그런지 몹시 새로운 느낌이다.

모두들 덕담 한 마디씩!

“건강해 보인다. 얼굴이 더 좋아졌다. 고생 많았다. 더 젊어졌다.”

모두 국어 전공이라 약간은 유교적인, 다른 말로 꼰대스러운 친구들이지만 나름의 멋을 가진 친구들이다.


매일 보는 거울이지만 얼굴이 보기 좋아진 것은 사실이다. 해골 소리 듣던 몸의 체중이 10킬로 정도 불었다. 얼굴에 살이 붙으니 주름살도 줄어든 느낌.


푸짐한 저녁 후, 방을 갈라 부인들은 수다로, 친구들은 맥주 한 잔으로 깊어 가는 밤! 나도 시원하게 한 잔! 모두의 걱정거리 되기 싫어 딱 한 잔만! 친구가, 산다는 것이 이렇게나 행복한 일이라니!


오랜만에 만나니 이야기 소재도 다양하다. 그중 나이 드니 생기는 에피소드. 학창 시절 자주 드나들던 막걸릿집. 흔히 학사주점이라 불리던 낭만의 장소. 이름하여 "둥굴관!" 친구들도 익히 아는 이름이다. 아니 참 많이도 몰려다니던 곳이다. 이름이 입 속에서만 맴돌 뿐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허당끼도 전염되는가 친구들도 고개만 갸웃거린다, 몇 번의 TV 오락 시간 같은 해프닝을 거쳐 정답. "둥굴관!"

그때서야 쏟아지는 술과 관계된 그 시절의 무용담들. 역시 오랜 친구들!


"나 알코올 치매 오는 것 아닌가 모르겠다." 아내도 한 마디 거든다.

"며칠 전에는 소주도 모르더라."

"네가 소주 기억 안 나면 되냐?"

나 술과 친구 무지 좋아하는 성격이다. 덕분에 아내 속도 많이 썩이고 늘그막에 병원 신세도.


며칠 전 컴 앞에 앉아 글 버벅거리던 중 갑자기 소주에서 꽉!

"여보 나 이것 때문에 당신한테 욕도 많이 먹었잖아."

"소주?"

"에이 시." 나만 그런 게 아니다. 모두 동년배에 반세기 친구들. 마주 보면 거울이다.


친구들의 말.

“웃기려고 하는 말이 아니고 진짜 안경 쓰고 안경 찾다 아내에게 혼났다.”

“저 사람도 그랬다.”

나? 원래 좀 허당. 똑똑한 친구들도 나이가 연세다. 얼마나 더 모일 수 있으려나?

모임 빠지겠다는 생각이 달아난다.


꽤나 스마트한 친구의 결정적인 한 마디!

“아버님 빨리 나오세요.”

“폰을 찾아야 되는데, 전화 좀 하게”

“아버님 지금 누구 폰입니까?”

폰을 귀에 대고 폰을 찾았다는 웃을 수만은 없는 삽화!


다음 날. 소백산 국망봉 입구의 죽계구곡 탐사. 병원 신세 후 오르막은 힘들다. 빨리 움직이면 숨도 차다. 약해진 마음에 미세 먼지 걱정하며 사람 없는 산에서도 마스크 착용.

"이 공기 좋은 곳에서 무슨 마스크! 산에는 피톤치드 천지라 마스크 필요 없다."

당장 마스크는 벗어 던졌다. 영주는 내 첫 직장 생활 장소. 취미 등산이 아니라 암벽, 빙벽 하며 소백산을 홈 그라운드라 여기던 시절도 있었다. 소백산은 우리나라에서 몇 안되는 솜다리가 자생하는 산이다. 예정된 산행이 없으면 혼자서도 참 많이 헤매고 다니던 산이다. 지금은? 죽계 계곡 완주조차 힘들다. 기분 영!

점심과 커피 숍에서의 수다 후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다음을 기약하며. 다시는 이 모임 탈퇴한다는 생각은 없다란 다짐과 함께 작별 인사!!


하루 여섯 시간 운전은 마나님이 도와주어도 무리다. 집에 가기 전 큰 맘먹고 인근의 청량산을 들리기로 아내와 의논. 근처 모텔에서 1박.


퇴계의 숨결이 느껴지는 봉화 청량산! 이 산도 영주시에 속한다. 따라서 젊은 시절 참 자주 다녔는데... 도로가 놓이고 차가 높이 오르니 그 옛날의 정취는 못 느끼지만 그래도 수술 후 처음 시도해 보는 본격 등산이다.


청량사를 거쳐 본격 등반. 느낌만이 아니라 정말 숨이 차다. 과거 부부 등반 시에는 내가 아내를 끌다시피 다녔는데. 폐활량 운동도 열심히 했건만 보이는 건 아내의 뒷모습뿐이다. 아니 아내가 나를 기다린다. 과거 같았으면 자존심 상할 노릇이지만 지금은 인정. 평지와 내리막길은 어려움이 전혀 없는데 오르막이 문제다. 앞으로도 어쩔 수 없는 내 모습. 의사분의 말씀! “폐는 불가역성입니다. 조심하며 사는 수밖에 없습니다.”


수술 전 의사님의 말씀.

"초기에 발견해서 다행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격려의 말로 느껴진다. 여덟 시간의 전신 마취. 절개 자국 10cm. 페를 많이 잘라 냈다는 느낌.

그래도 보살봉을 제외한 나머지 봉우리는 다 올랐다. 친구들에게 건재를 과시하기 위해 인증 샷도!

다시 세 시간을 달려 집 도착. 아내에게 운전대를 한 번도 안 맡겼다. 다 나았다는 기분!


세 시간 운전과 네 시간 정도의 청량산 등반! 과거엔 늘 하던 정도의 일이 이렇게 기쁘고 행복할 줄이야. 요즘 젊은이들의 말! 소확행!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실감! 앞으로는 매사가 행복할 것 같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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