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강경 수술

2차 수술

by 김윤철

1차 수술 후 5년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중 하나 1차 수술 당시 아내와 동의서를 같이 썼던 큰 딸의 결혼. 결혼과 동시에 미국으로 떠난 딸 덕분에 미국 여행도 두 번 다녀왔다. 원님 덕에 나팔 너무 잘 분다. 늦으막 나이에 호강.


호사다마라 했던가! 조영제를 먹고 사진을 찍고 물을 마셔 배출하고! 조금은 힘든 검사를 하고 맞은 9번째 검사 결과! 하늘이 노래진다는 말 실감! “왼쪽 폐에 조그만 종양이 있습니다. 조금 지켜봅시다. 커지지 않으면 악성이 아닙니다. 걱정 시작.

” 커지면 어쩌란 말이냐?"

저 번은 오른쪽 폐였다. 모든 병이 마찬 가지겠지만 폐는 조심할 방법도 없다. 숨 안 쉬고 사는 재주는 없으니까.


“두 번째는 다르다. 저 번에는 몰랐지만 지금은 의사 선생님이 지켜보고 있으니 커지기 전에 떼어내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아내의 위로가 가장 큰 힘이다. 자식들에게는 비밀.


그리고 열 한 번째 마지막 검사. 냇과 의사님의 말씀.

"찜찜하니 나 미국 연수 가기 전에 떼어 버립시다."

1년 간의 미국 연수가 예정되어 있다는 말씀. 나도 미국 생활 3달이 잡혀 있었다.

고민 또 고민. 1차 수술 때의 기억. 조직 검사와 기흉관 삽입. 고개가 저절로 흔들린다.

외손주들도 보고 싶은데 미국서 증상이라도 나타나면?

현실적으로도 이번이 마지막 검사. 다음부터는...

검사비도걱정이다. 결국 큰 용기를 내었다.




수술실 들어가기 전!

“이번은 복강경 수술이라 저 번처럼 힘든 거 아니다. 파이팅!”

손을 꼭 잡아주며 아내가 한 말이다. 투병 생활에 믿을 건 아내뿐이다. 떠밀리듯 수술실로. 입원 사흘 후 다시 떠밀려 퇴원. 입원도 검사도 없이 한 수술. 암세포가 있었는지, 혹시 모르니 예방 차원에서 한 수술인지는 아직도 의문. 의사 선생님의 말투로 보아서는 후자인 것도 같은 느낌! 희망사항?


입원과 수술 그리고 퇴원. 공을 띄우는 폐활량 운동까지 모두 같지만 고통이 작은 것도 사실이다. 1차 때는 10센티가량 절개를 했는데 이번에는 왼쪽 갈비 밑에 구명이 세 개. 쉽게 말해 저번에는 째고 이번은 구멍만 뚫은 거다. 퇴원 이틀 후부터 다시 걷기 운동 시작.


운동 다녀와서 휴식하며 든 생각! 늦둥이 군 복무할 때의 대화 한 토막!

“이건 군대도 아니다. 우리 때는....”

“아빠 군 생활 한 번 더 하겠나?”

바로 깨갱. 참 나도 어쩔 수 없는 틀딱. 라떼! 그 때나 지금이나 자유 없는 군 생활은 힘들다. 마찬가지다 째면 더 아프고 구멍 뚫으면 덜 아프냐! 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고통은 마찬가지다.


수술 후 투병생활도 꼭 같다. 아내는 바빠지고 나는 더 호강한다. 버섯, 겨우살이, 더덕, 도라지, 이름도 모르는 야채까지 다시 대령 시작. 아무리 말려도 약이 아니고 야채라는데야 막을 방법이 없다.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 물 많이 먹기와 근력 운동. 힘들지만 거의 매일 하루도 거른 적이 없는 것 같다. 노인복지회관 체력단련실 출근! 덕분에 다른 분들은 대단히 젊고 건강하다고 생각하신다. 육십 대 후반이지만 나이대접 못 받는 느낌도 있다! 땀 흘리고 있으면 어르신들 왈! “젊은 사람이라 다르다.” 부러운 눈길! 나이가 들면 운동량도 줄고 남성 호르몬도 적어져 근육이 늘어나지는 않는다고 한다. 그래도 리즈 시절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까지는 근육이 회복된다. 이건 내 직접 경험담.


2차 수술 후에도 역시 바쁘게 살았다. 몸 추스르기 무섭게 체력단련장으로. 근육이 열과 물을 저장해서 암에 좋고 운동 시 나오는 아드레날린이 종양을 잡는다는 친구들의 말에 정말 열심히 했다. 운동의 강도도 조금씩 높여가며. 주로 근력운동. 1달 정도 지나서 동네 뒷산 등산. 등산이 폐활량 늘이는데 적합.


350m 정도의 야산. 중간쯤, 약간 가파른 곳에서 발을 떼는 순간. 눈앞이 캄캄 해지며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다. 이 산은 1차 수술 후에도 많이 다녔으며 2차는 그렇게 힘든 수술도 아니니 아마 심리적인 것이 아닌가 추측. 육체적인 것은 아니란 자신감과 함께 완등.


산소 부족이라면 숨이 차면서 다리에 힘이 빠진다.

빨리 움직이니 눈앞이 캄캄해지며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숨을 고르고 천천히 완등. 3,600m 조금 넘는 높이였다. 여기는 동네 야산. 아무리 폐가 작아져도 산소 공급이 부족할 정도의 높이는 아니다. 숨은 차지 않고 다리만 풀린 것이다.


아니면 등산에 대한 겁에다 더하기 투병생활에 약해진 마음. 얕은 의학 지식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 트라우마 정도. 병원에 간 것도 아니고, 아내에게도 말하지 않은 나만의 생각. 몸이 적응해 가는 과정이라고 스스로 위로 하며 350m 완등. 그 후로도 몇 번 완등 했지만 별 이상이 없었다. 허파를 단력 시키기 위해 달리기 대신 생각날 때마다 등산을 한다.


오늘은 대장암 수술한 친구와 전화 통화. 친구는 역시 묵은 놈이 좋다. 범절 차리는 체육관 어르신과 달리 속마음 개방. 코로나 때문에 오래 모이지 못 한 아쉬움까지 남자 치고는 꽤 수다.

“숨 안 쉬고는 못 산다.”

“넌 안 싸고 사냐?” 위 수술한 친구는 먹어야 산다. 저마다 고생이다. 이 나이가 되면 멀쩡한 친구가 오히려 귀한 것 같다. 그래도 속이 시원하다. 동병상련이란 말이 이유 없이 생긴 게 아니다. 서로의 속 걱정까지 다 털어놓으니 스트레스가 쏵! 나이가 있어도 자존심, 민폐 끼치기 싫은 마음 등. 마음 한 쪽은 감추고 산다. 같은 암 수술 동지끼리 수다. 어떤 약 보다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 역시 묵은 친구가 좋은 것이여!


간단한 수술이라 말씀하셨지만 외과 선생님은 걱정이 되는 모양.

“내가 궁금하니 삼 개월 뒤에 검사받으세요.” 내과는 육 개월로 합의를 보았는데 외과에서 제동.


역시 같은 말씀! “수술 잘 되었습니다. 빠르게 회복되고 있습니다. 이제 육 개월 뒤에 오셔도 되겠습니다.” 내, 외과 모두 통과!


감사! 덕분에 딸네도 한 번 더 다녀오고, 지금은 건강하게 와인도 한 잔씩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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