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목 여행

알 친구들

by 김윤철

병원에서 주는 폐활량 운동 기구 대신 12층 아파트 계단을 이용할 때쯤 반가운 전화가 왔다.

"오래 못 봤다. 함 만나자."

"...."

"수술 5년 넘었자나!"

"그래 함 모이자."

"니 때문에 당일치기 못 하니 이번엔 2박 3일로 바다나 가자. "


모임 총무가 내 첫 수술 날짜를 기억하고 있었다. 고맙다. 이 친구들은 내가 다시 수술한 것을 모른다. 알기만 하면 또 뛰어올 녀석들이라 일부러 연락하지 않았다. 자랑할 일도 아니지만.


다른 모임과는 약간 다른 성격의 친구들이다. 아재 말로 알 친구들. 대학이나 사회에서 만난 친구들과는 체면이나 승부욕 등 해서 약간의 낯가림이 있다. 이 친구들은 어릴 적부터 친한 동네 친구들이다. 부모님들 성격까지 모든 것을 속속들이 다 아는 친구들. 지금까지도 술 한 잔 걸치면 욕을 해도 받아주는 친구들. 몇 명 되지도 않는 귀한 동무들이다.


저녁 식사 중 아내의 첫마디.

"미쳤나?"

"이제 개안타. 몇 번이나 더 보겠니?"

아내 말에 토 달지 않는 나지만 혼신을 다해 일정 설명.

부산까지는 교대로 운전. 부산 사는 친구 차로 항만까지. 배 타고 섬에서 2박. 부산 친구와 잠시 부산 구경.

다시 우리 차로 통영으로. 케이블 카도 타고 구경하다. 운전 교대 하며 집으로. 세상 좋다. 산촌 살아 바다 좋아하는 우리. 인터넷으로 인근 바다 서핑해서 얻은 정보 대 방출. 어렵사리 허락을 받았다.




1차 모임 장소. 부산 친구 집. 가장 늦게 도착한 친구의 눈에 선글라스가 딱. 하늘에는 구름이 약간.

"멋있다!"

어느 모임에서나 약간 깐죽거리는 친구는 있다.

"얌마! 백내장 수술 했다. 돈 나똣따 뭐 하노? 비싼 거 하나 질렀다."

"xx아빠는 더 젊어졌다."

재치 있는 친구 아내분의 화제 돌리기. 오랜만의 친구 모임이니 서글픈 생각은 끼어들 틈이 없다.


부산 친구 제외하면 모두 바다가 오랜만이니 배를 타도 즐겁고 저녁 후 해변가에서 부딪치는 소주잔도 흥이 넘친다. 술들도 많이 줄었다. 모두 나이가 연세다. 수술 이야기는 입도 뻥끗 않았다. 흥도 깨기 싫고 자랑도 아니다. 거리 가까운 친구들끼리는 몇 번 만난 모양이나 나는 정말 오랜만의 스트레스 해소.

자기 전 화장실에 들르니 파란 통이 하나. 틀니를 약물에 담아 두는 용도다. 어찌 아냐고?

나 역시 옆에 그 통을 두었다, 감출 것도 부끄러울 것도 없는 사이. 너무 속속들이 알면 다툼도 일어나지 않는다.


남자들은 머리 걱정하는 시기가 있다. 머리카락 한 올에도 신경이 날카로월질 때. 기억도 아리송하지만 내가 틀니 전에 임플란트 했던 시기다. 역시 이친구들과의 여행. 샤워 후의 풍경.

"니도 말릴 머리 있나?" 몇 올 없는 머리카락을 정성들여 빗고 있는 친구에게 짖궂은 친구의 농담. 정신이 번쩍 든다. 약점을 찌른 거다.

"니는 희소 가치도 모르나? 업스이 열심히 빗는다. 니도 멀쟎았다." 이 친구 그냥 웃어 넘긴다. 동병상련. 그 친구 역시 도토리 키재기였기 때문이다.

화살이 내게로 왔다.

"절마는 빠지는 대신 신다. 니 솔직히 염색했재?"

"나는 머리 대신 이 빠졌다. 댔나!"

"지랄! 우리 나이에 임플란트 하나도 안 한 친구 있는 줄 아나."

남이 하면 싸움날 말도 우리 끼리는 웃어 넘길 수 있는 친구들.


다음 날 눈을 떠니 온몸이 뻐근. 가장 멀리서 온 나만 그런 게 아니다. 모든 친구들이 늦장을 부리고 있다. 어제 마신 소주 탓만은 아니리라. 그래도 부지런 떠는 친구 아내 덕에 흡족한 아침 식사.

우리는 친구들이지만 아내들끼리는 나이차가 좀 난다. 도적놈 소리 듣는 친구 부인 덕에 모임이 잘 돌아간다.

역시 대한민국은 동방 예의 지국이다.


섬 한 바퀴 산책. 요즘 말로는 둘레길 걷기. 좀 험한 곳에서 한 친구가 다리를 불편해한다.

"아프나?"

"과체중이라 관절 조심하란다."

우스개 소리를 할 마음이 전혀 네버 생기지 않는다."


하루 더 즐기고 부산 친구집에서 아쉬운 마음 달래기.

"조심해 가고 다음에 보세!"

말투가 바뀌었다. 이제 임마 점마 소리는 못 할 거 같다.

통영에서 하루 더 묵고 케이블카도 타보고. 집으로.

즐거웠던 기억 정리 중 짧은 생각 하나 정리.


일흔 즈음에


내 손 밖의 큰 것을 탐하지 말고

내 손으로 이룬 작은 것들을 사랑하자


30년 혼자 세월 거쳐

40년 동안


밑바닥에서 부터 한 층 한 층

가족이란 이름으로

함께 쌓은 탑


이룬 것 작고

가질 수 있는 것도 작고

그 작은 것조차 바라기 늦은 즈음


이루지 못한 회한 대신

이룬 것들을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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