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는 안개에 젖고 나는 세월에 젖는다.
브라인드를 내리니 밖엔 안개가 자욱. 폰을 들고 밖으로. 처음 보는 풍경이다. LA의 겨울은 비와 안개로 시작된단다. 나는 겨울은 처음이다. 비라야 사막 기후니 몇 방울 떨어지다 말지만 요즈음이 그나마 색다른 사진 찍기 좋다며 작가들이 좋아 한단다. 딸내외가 모두 사진을 좋아하며 내 눈에는 사위가 사진에 일가견이 있는 것같다.
우리나라 같으면 겨울 날씨도 아닌 추위에 손녀가 감기에 걸렸다. 유치원 가는 날도 아니고, 사위는 재택 근무, 밖에도 못 나가니 이런 날은 골치 꽤나 아프다. 사위는 문제 없다지만 컴퓨텨만 바라보며 가만히 앉아 있는 일에 컴맹 가까운 우리는 작은 소음에도 신경이 쓰일 수 밖에 없다. 어린 애들이 노는 일에 그렇게 싫증을 잘 내는 줄은 미처 몰랐다. 재미를 붙였다가도 십분이면 걷어 치운다. 공룡책 읽어주기, 그림 그리기, 퍼즐 맞추기, 손녀는 소꼽놀이, 병원놀이 바꾸어 가며 시간을 때운다. 여자들 일이 이렇게 힘든 줄 처음 알았다. 돈 버는 일이 가장 쉽다는 아내의 푸념이 일흔 넘어가며 이해가 된다. 나? 페미니 메갈이니 하는 말은 들으나 봤지 뜻도 모르는 노친네다.
오후엔 카메라 들고 탈출. LA는 세 계절이 함께 존재한다. 열대 식물이 있고, 활엽수들은 낙엽이 지고 있으며, 민들레 홀씨도 날고 있다. 겨울만 제외. 하긴 이 정도의 추위가 겨울 추위라면 사계절. 사진으로만 보던 벌새가 꽃을 맴돈다. 몇 번이나 실패한 사진. 이번에도 역시다. 작은 만큼 겁이 많아 근처만 가도 날아간다. 언젠가는 사진에 담으리라. 사진을 급히 컴에 옮기고 와인 한 병 사러 근처의 마트로. 이 곳은 신흥 도시라 마트나 공공 건물에도 노숙자들이 아직은 없다. 전에 살던 곳은 사유지가 아닌 곳은 어디에나 노숙자들이 있었다. LA의 노숙자들은 밤에 만나면 무섭다. 미국은 최저 임금이 높아 일을 하면 먹고는 살 수 있다. 노숙자로 산다는 이야기는 시스템의 희생자란 이야기. 따라서 마약을 할 확률이 높다는 얘기. 캐리포니아주는 대마초는 허용된다는 이야기. 대마를 흡연하는 카페도 있단다. 그 참! 역시 남의 나라. 와인! 안주는 반 값으로 떨어진 할로윈 기획 상품으로.
집집마다 11월인데 벌써 싼타가 등장. 미국의 겨울은 축제 기간이다. 땡스 기빙데이가 지나면 바로 할로윈 장식, 그 다음은 크리스마스. 누가 보아 주는 지는 모르지만 사람도 다니지 않는 집 앞에 장식만 요란하다.
볼만한 장식에 가슴이 아련해 지는 것은 가는 세월이 아쉬운 연세 탓?
그래! LA는 안개에 젖고 일흔의 노친네는 세월에 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