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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그 지독한 통일성

만인의 만인에 대한 폭력

by 김윤철 Feb 05. 2025

채식주의자! 그것은 중편 소설이다. 그 작품 한 편 읽는데 일주일이 걸렸다.

정말 지독히 읽기 힘든 소설이다. 독서량이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지만 이렇게 힘든

읽기는 처음이다. 그래도 미련이 남아 한 번 더 읽으려 한다. 아니 몇 번 더 읽어야겠다.


아니 정확히는 처음은 아니다. 이 십몇 년 전 읽다 포기한 소설이 한 편 있었다.

채 다섯 장을 넘기지 못하고 덮어버린 작품. 바로 당시 연세대 교수셨던 고 마광수 교수의

"즐거운 사라." 워낙 말들이 많은 작품이라 손에 들었다 중도 포기한 소설.


두 작품의 공통점을 지금 생각하면  글의 통일성이 아닌가 생각한다.

즐거운 사라의 주제는 성담이다. 주인공의 성에 대한 집착. 이건 기억에 없다.

채식주의자의 주제는 폭력이다. 폭력과 그에 따른 아픔.


한강은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이다. 많은 표현들이 있지만 나는 수상의 가장 큰 이유가

주제에 대한 잔인하리만치 집요한 통일성이라 생각한다.


산문의 시적 표현! 맞는 말이다. 그런데 그 상징과 비유가 폭력을 벗어나는 것이 없다.

그 지독한 통일성에 노벨이란 권위가 더해지지 않았다면 몇 장 읽다 포기했으리란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즐거운 사라가 그랬듯이!


토마스 홉스의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생각나는 소설이다.

아니 그것보다 더 하다. 

사람에 더해 "모든 사물의 모든 사물에 대한 폭력!"


그의 단어들 속에서 폭력과 아픔을 벗어나는 단어를 찾기 어렵다.

화자인 남편과 주인공의 생각에 나타나는 생각들.

발단은 남편의 채근과 호통! "세치 혀!"

부부 모임 사모님의 젖꼭지에 대한 "시선!"

직접적인 폭력을 부르는 시골 노인인 아버지의 사랑의 매!

한약이라 속여 고기를 먹이려는 모성애까지!

세상에 폭력이 아닌 것이 없다.


가장 큰 폭력의 피해자인 주인공이 폭력의 가해자로 나타나기도 한다.

나를 물었다는 이유로 가장 잔인하게 죽임을 당하는 개.

소설 마지막의 동박새까지.


심지어 비폭력을 상징하는 사라져 가는 주인공의 둥근 젖꼭지까지도 다른 이에겐 폭력이 

될 수도 있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보편적인 것이다. 

주인공이 생각하는 폭력들이 내 경험과도 연관이 있다.

주인공의 경우처럼 그렇게  뚜렷한 것은 아니지만 소설을 읽다 쓴웃음 짓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고는 책을 덮고 내 기억 속으로 침잠.


무심코 던진 아내의 말에 씁쓰레해하던 일들.

술 좋아하는 내게 쏟아지던 시선들.

결코 사랑이라 생각되지 않던 아버지의 매들.

어머니의 사랑이 짐이 되던 기억까지.


이 폭력들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아니 지금은 21세기! 더 많은 폭력들 앞에 모두가 노출되어 있다.

과거에는 없던 익명성 속의 폭력들.

과학의 발달과 함께 새로 생겨날 더 교묘해질 폭력들!


이것들과 함께 덮었다 읽었다를 반복해 제대로 연결되지 않는 작품 

속의 작가의 하고 싶은 말들.


몇 번 더 읽어야 할 것 같은 소설이 채식주의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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