옐로스톤 국립공원
프랑스의 해양 탐험가 로익 페이요는 "행복은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미지의 장소를 향해 나아가는 여정에 있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나는 지금 옐로스톤이란 미지의 장소를 향해 가고 있다.
지금 차 안에서 느끼는 기분. "행복을 향해 가는 여정."
잭슨 마을에서 옐로스톤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은 남문으로 가는 길이다.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우리는 매디슨 강과 올드페이스풀이란 목적지가 있으니 그보다 30분 정도 더 걸리는 서문으로.
차도 사람도 보이지 않는 단조로운 시골길을 달린다. 숙소를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검은 소들이 풀 뜯는 목장들이 나타난다. 크다. 시속 100마일, 160k로 달려도 한참 동안이나 계속되는 크기다.
한 개의 목장인지 목장주가 여러 명인지는 알 길이 없다. 클래식 영화인 자이언트에서 록 허드슨의 목장이 차로 돌아봐도 며칠이 걸린다는 대사를 실감. 잭슨 마을은 서부 개척 시대의 카우보이 문화를 잘 보존하고 있는 도시다. 그 시대의 상징인 로데오 경기도 해마다 열리고 그 규모도 어마어마하다고 한다.
참고로 잭슨마을은 인구 만 명 정도의 작은 도시지만 미국 부호들의 별장도 많고 굉장히 부유한 도시라고 한다. 잭슨 공항이 도심 15분 거리에 있어 미국 서부 부자들이 즐겨 찾는 휴양지다. 단 우리나라는 직항이 없어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소가 검은색이다?"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소다."
반려소? "한우와 맛이 제일 비슷하다."는 딸의 말에 기분이 묘해진다.
목장이 끝날 때쯤 농장이 나타난다. 이것 역시 크다. 우리는 땅을 이야기할 때 평이나 마지기를 사용한다.
우리 지역의 한 마지기는 200평. 나는 젊은 시절 600평 정도의 논에 농사를 지어본 경험이 있다.
세 마지기의 논이 그렇게 클 수가 없었다. 기계를 사용해도 자투리 땅이나 수확물 이동에는 사람 손이 필요하다. 저 많은 소와 저 큰 농장들. 농부들의 노고에 고개가 숙여진다.
농사 경험이 있는 사람들만 실감할 수 있는 일이다. 한가하게 풀 뜯는 소떼들. 물을 뿜는 스프링클러.
멀리서 보면 아름답고 한가한 풍경이다. 가까이서 보면? 찰리 채플린의 말이 실감 난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미국! 멀리서 보면 최고의 나라다. 실제 생활해 보면?
세계 최고의 부자 동네라는 베버리힐스와 조금만 벗어나면 보이는 노숙자들.
부츠를 신고 긴 옷을 입은 여성들과 웃통 까고 조깅하는 아저씨들. 열심히 노력하는 농부들과 마약에 취해 휘청거리는 사람들이 함께 하는 미국. 250여 종족이 함께 산다는 미국은 단일 민족을 자랑하는 우리에게는 조금은 이해하기 힘든 요소들이 많다.
그런데 이곳의 땅은 마지기를 사용해서는 측정할 수 없는 크기다. 몇 만 마지기?
이 큰 땅에 바퀴까지 달린 물뿌리개들이 물을 뿌리고 있다.
큰 땅과 과학의 결합. 만약 미국이 식량을 무기화한다면? 한우 맛이 난다는 딸의 말에 느껴지던 섬찟함!
우리나라의 밀과 보리는 사라진 지 오래다. 우리 농업은 꼭 지켜야 한다는 생각.
현실은 세계화가 퇴색되어 가는 것 같아 걱정이다.
미국 첫 여행에서는 LA 중심가만 벗어나면 보이던 석유채굴기가 가장 부러웠다.
지금은 큰 땅덩이가 몇 배 더 부럽다.
서문이 가까워지니 자전거와 승마를 즐기는 무리들이 보인다.
잭슨 마을에서 온 관광객들이 아닌가 생각.
이곳이 최고의 휴양지란 말 실감.
웨스트 옐로스톤 마을을 지나면 서문 (Yellowstone West Entrance)이 나타난다. 여기서 일주일 분의 차 티켓을 35달러에 구입. 우리는 사흘만 사용하니 약간은 손해 보는 느낌.
약간의 병목 현상을 지나 매디슨 강으로.
신나게 달리던 차가 갑자기 멈춘다. 이건 서행 정도가 아니고 아예 주차장이다.
무슨 일? 차 뚜껑을 열고 앞을 보던 딸의 말.
"바이슨이 도로를 건너고 있다." 차에서 내려 쌍안경으로 보니 저 멀리 우리가 흔히 버펄로라 부르는 바이슨들이 보인다. 야생이어서 그런지 등치들이 가축소들과는 차이가 많다. 우람하다. 가까이서 보면 더 위압적이다. 어깨 쪽이 우리나라 소보다 훨씬 높고 두텁다. 털갈이 시즌인지 듬성듬성 털 빠진 모습들이 무섭기까지 하다. 버펄로는 물소의 한 종류로 북미에는 없다고 한다. 이곳 소의 정확한 이름은 아메리카 바이슨. 미국 들소.
이곳에만 4,000마리 정도가 살고 있다고 한다.
잠시 기다리니 사이렌 소리 요란하게 국립공원 지킴이들의 차가 양쪽으로 주차된 차들 사이를 달린다.
조금 후 교통정리 끝. 매디슨 강을 향하여.
조금 가니 바이슨들이 보인다. 아내가 차 안에서 사진을 찍었다. 차 속에서 바이슨을 보는 사람들과 자연 속에서 유유히 풀을 뜯는 들소들. 이 옐로스톤의 진정한 주인이 누구인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아니 사람과 동물이 공존하는 방법이 아닐까.
아직 자연의 위대함을 느끼기에는 어린 손주들이 지루해할까 딸이 현상금을 걸었다.
동물을 먼저 보는 사람에게 현금 지급. 곰과 늑대는 10불, 엘크는 5불, 새나 기타 작은 동물들은 2불.
아무도 돈을 받지 못했다. 운전하는 사위가 차를 정차하면 그곳에 동물들이 있었다. "아빠는 운전하느라 수고하니까." 손주들도 수긍. 이곳은 인간과 야생이 공존하는 곳이다.
매디슨 강이란 표지판이 보인다. 조그마한 표지판. 매디슨 역시 강이라기보다는 시내란 이름이 더 어울릴 크기다. 강이 클 수가 없다. 매디슨 강의 발원지가 바로 이곳이다. 강의 가장 상류란 말이다. 여기서 출발한 매디슨강의 물이 미주리강으로 다시 미시시피강을 거쳐 멕시코만으로 흘러든다고 한다.
차를 세우고 강 주변의 야산 트래킹. 여행은 현실이 아니다. 낭만이다.
얕은 강 안에서 태공들이 낚시를 하고 있다. 이름하여 플라이낚시. 정말 멋있다. 송어가 주로 낚인다.
로버트 레드포드가 감독한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 속의 브래드 피트가 되어 보고 싶지만 국립공원은 너무 크고 딸네의 휴가는 너무 짧다. 이 영화의 주요 소재 중 하나가 바로 이 플라이낚시였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란 영화도 생각나지만 그 영화는 이곳 매디슨 강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매디슨이란 이름만 같을 뿐 주가 다르다. 와이오밍주와 아이오와주.
나도 매디슨이란 이름과 클린트이스트우드란 이름에 잠시 혼란스러웠다.
카운티의 다리는 이스트우드 주연. 흐르는 강물처럼은 감독이 클린트이스트우드다.
도로명을 주소로 사용하는 미국. 같은 이름의 도로가 너무 많다. 여행객들은 헷갈리기 십상이다.
샌프란시스코 여행 시 브로드웨이란 도로명을 보고 딸에게 물었다.
"여기도 브로드웨이가 있다."
"아빠! 뉴욕 뮤지컬 거리 생각했지. 미국에 브로드웨이 거리 검색하면 최소 백 개는 나온다."
라스베이거스에는 텍사스란 도로명도 있었다.
아마 땅덩이는 크고 빠른 속도로 성장하다 보니 알고 있는 단어로 도로명을 짓지 않았나 추측.
인중샷 몇 장 남기고 다리를 건너 야산으로. 트래킹 장소 입구에 곰을 조심하란 경고판이 섬뜩하다.
곰 경고판 바로 앞에서 강태공들은 한가하게 낚시를 하고 있다. 공원 지킴이들을 신뢰하는 듯.
험한 길이 아니어서 손주들도 모두 완주. 사실은 초등학생인 손주들이 노인인 나보다 훨씬 더 잘 걷는다.
차에서 준비해 간 햄버거로 점심을 해결하고 두 번째 목적지인 올드페이스풀로.
올드페이스풀 가는 길에 눈이 내린다. 잣나무 삼림 속에 눈이 내린다.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록키 산맥에는 여려 종류의 침엽수들이 삼림을 이루고 있지만 이곳 옐로스톤은 거의 잣나무란다.
낭만을 즐기기엔 준비해 온 옷이 너무 얇다.
지금 우리는 잣나무 우거진 해발 2,000m가 넘는 그 록키산맥을 지나고 있는 것이다.
잣나무에 내리는 눈이 걱정을 덜어준다. 걱정은 걱정이고 멋은 멋이다.
복잡한 심정 속에 한참을 달리니 저 멀리 올드페이스풀의 안내판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