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온 길

낙동강 세평 하늘길(양원 - 승부 구간)

by 청아연

골짜기 사이로 난 자동차 전용 도로를 타고 봉화에서 울진으로 향했다. 중간에 내려와서 보이는 작은 마을, 여기서 차로 더 먼 길을 돌아 들어가면 양원역이 있다.


양원역에 거의 다 도착했을 때 차를 주차했다. 차에서 내리니 바람이 유독 차가웠다.

다리를 건너며 바라본 강가 옆으로는 높은 산이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왼편으로 멀리 보이는 하얀색 건물.


양원역이다.


기차가 오기까지 10분이 남아있었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에 발걸음을 재촉했다. 역사는 작고 아담했고 등산복을 입고 누워계신 선객이 네 분 계셨다.


"젊은 친구들이 어디서 왔어요? "

"서울에서 왔습니다"


간단한 문답이 이어졌다. 기차가 들어올 시간이 되니 하나 둘 일어나서 플랫폼으로 걸어갔다.

바닥을 울리는 진동소리가 점차 커지고 멀리 기차가 보였다. 두량짜리 기차에 올라탔다. 머리가 드문드문 보였다. 아무 데나 앉아도 된다는 승무원의 말에 강물이 보이는 쪽으로 앉았다.


열차가 출발했다. 얼마 되지 않아 터널에 들어섰고 열차 안은 밝아졌다 어두워졌다를 반복했다. 터널이 끝나자마자 창밖으론 자연이 펼쳐졌다. 멀리 산에는 아직 물들지 않은 단풍과 그 아래에 흐르는 강물, 그리고 파란 하늘에는 간간히 구름이 보였다. 돌아오면서 봐야 할 것들을 예고편으로 본 것 같았다.


<이번 역은 승부, 승부역입니다.>


5분이 갓 지났을까? 열차는 다음 정차역인 승부역에 도착했다.

반대편 플랫폼에는 백호처럼 생긴 기차가 있었다. 역의 바깥쪽으로 나오니 물건을 팔고 계신 할머니들이 보였다. 역사의 아래쪽으로 내려오니 가야 할 길이 있었다. 여기서부터 다시 돌아 걸어가야 할 시간이다.


차가 다닐 수 있는 도로가 잠시동안 이어졌다. 그리고 시작되는 건 평탄한 숲길이었다. 5분 동안 오면서 빠르게 지나쳤던 것들이 천천히 보이기 시작했다. 강물에 반짝이는 햇빛은 걷는 내내 눈을 간지럽혔다.


철로의 아래쪽에 나있는 보행로를 지날 때쯤, 건너편 방향에서 열차가 오기 시작했다. 창 밖을 내다보는 사람들이 손을 열심히 흔들어주고 있었다. 나도 열심히 손을 흔들어 화답했다. 잠시나마 손끝이 스친 것 같이 따뜻해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워지기 시작했다. 햇빛을 피하고자 철로 아래 강가에 앉았다. 큰 바위들이 많아 자연이 자연스레 의자가 되어주었다. 몸이 오히려 찌뿌둥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작은 자갈을 들어 강물에 물수제비를 시도했다. 세찬 물살에 부딪히고는 금세 가라앉아 버렸다.


목적지를 향해 다시 걷기 시작했다. 기암절벽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와 함께 데크길이 늘어났다. 멀리 계단이 보이기 시작하자 발걸음이 더 무거워졌다.


계단까지 가는 길, 벽에 적힌 글들이 보였다. 힘을 주는 말들이었지만 당장 눈앞의 계단이 벅찼다. 땀이 나고 슬슬 몸도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한번 더 쉬어야 할까를 고민할 때, 목적지까지의 거리를 보여주는 이정표가 보였다. 가야 할 길이 왔던 길보다 짧았다. 다시 걷기 시작했다. 모래길을 넘어 숲길로 들어서서 반대쪽에서 걸어오는 분들과 인사를 나눴다.


숲길의 끝에서 목적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다리에는 다시 힘이 붙었고 어깨도 가벼워졌다.


마지막 계단을 올랐다.

파란 하늘 아래 세평도 안 되는 하얀 건물, 양원역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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