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견과 놀아주는 법

너와 나 사이의 규칙

by 익호

강아지를 키우면서 마음 속에 자라난 로망 같은 게 있다. 한강공원 잔디밭에서 멋진 콤비가 되어 공을 던지고, 너는 물어오고 나는 웃으면서 너를 안아준다. 그리고 우리의 모습을 부러운 듯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즐긴다.


“로망은 로망일 뿐입니다.”


무강이의 방문훈련 선생님은 우리의 핑크빛 로망을 첫 만남의 자리에서 깨주셨다. 하긴, 자신의 옆에만 지나가도 입마개를 하라고 호들갑을 떠는 사람들 사이에서 무슨 공놀이인가. 게다가 무강이의 타고난 예민함은 더더욱 공원에서의 공놀이를 포기하게 만들었다. 사람이 없는 새벽에, 줄을 길게 연장해서 잠깐 해주긴 하지만 아마 성에 차진 않을 것이다.


집에서 놀아준다? 그 어떤 판타지보다 비현실적인 대안이다. 우주가 집에 온지 한 달째 되는 날, 아랫집에서 올라왔던 기억이 있다. 사실 조금 예상하고 있었다. 아직 예방접종이 끝나지 않았던 우주는 집에만 있어야 했다. 한달 동안 집에서만 있던 우주는 밤마다 속칭 우다다를 했다. 고양이만 하는 줄 알았던 우다다 놀이를 개가 하는 것도 처음 알았다. 집안을 날아다니듯이 뛰어다니는 우주를 보며 무슨 문제가 있는 줄 알았다. 걱정스레 올린 고민글에는 귀엽게 봐주면 된다는 댓글만 잔뜩이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우주의 우다다가 끝나자마자 아랫집에서 벨을 눌렀다. 그 이후 우주의 우다다는 금지되었다.


우주의 몸무게는 그 당시 7kg이었다. 조금만 세게 걸어도 발망치 소리가 나는 층간소음인데 7kg의 무게는 충분히 소음을 일으키고도 남을만한 무게였다. 게다가 우주는 짖기 까지 했다. 결국 민원을 받은 우리는 소음방지용 폴더매트를 구입했다. 장당 15만원씩 두 장. 30만원의 지출 끝에 민원은 막을 내렸다. 접종이 끝나지 않았지만 산책도 시작했다. 첫 산책을 마친 우주는 통잠을 잤다. 역시 산책이 만병통치약이라는 걸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12-1.jpg 인형 물어뜯기도 수준급


강아지와 집에서 놀아주기. 가능하다. 하지만 그 강아지가 대형견이라면 어떨까? 크기가 10kg를 넘어가는 중형견 이상이라면 집은 그저 쉬는 곳이라고 가르치는 게 적합하다.

폭풍우나 태풍이 몰아쳐 외출이 불가능할 때가 있다. 그럴 땐 나도 집에서 장난감을 꺼낸다. 이 때 규칙이 있다. 절대 몸으로 놀아주지 말 것.


강아지와 몸으로 놀아준다. 상당히 재미있어 보이는 말이다. 진정한 교감을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아이들도 몸으로 놀아주는 걸 좋아하니까. 강아지도 그럴 것 같다. 그러나 이 행동 뒤엔 큰 대가가 따른다. 개는 입이 손이다. 입으로 장난감을 물고 손을 물고 팔을 문다. 우리는 강아지에게 재미를 주고 피를 얻을 것이다.


문제는 이 행동이 보호자에게만 국한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집에 손님이 찾아왔을 때, 반갑다고 손님의 팔을 덥석 물 수 있다. 이런 강아지를 보이고 싶은 게 아니라면 놀이의 규칙을 정해야 한다. 우리가 어릴 적 했던 소꿉놀이 하나에도 세세한 규칙이 있듯이. 제일 재미있는 꽃잎다지기는 엄마만 할 수 있고, 손이 은근 많이 가는 흙경단 뭉치기는 다 같이 할 수 있다는 그런 규칙 말이다. 놀이는 세상을 깨치는 수단이기도 하다.

강아지 역시 마찬가지다. 게다가 인간과 강아지는 말이 통하지 않는 이종의 존재다. 그러지 규칙은 더욱 명확해야 한다.

무강이에게 가장 먼저 가르쳤던 규칙은 놔 였다. 굳이 가르치지 않아도 무는 건 너무 잘했다. 놓지 않아서 문제였다. 무강이는 물고 당기는 터그놀이를 좋아한다. 한 번 물면 온 힘을 다해 당긴다. 힘을 더 많이 주기 위해 주둥이가 조금씩 내 손을 향해 다가온다. 여기서 조금만 주의를 잃으면 손등에 굵은 이빨 구멍이 생길 수 있다. 일부러 손을 물려고 보이는 공격성이 아니라 흥분해서 생기는 사고 같은 것이다. 이러니 놀이 중엔 야단을 치기도 어렵다.


이런 일을 막기 위해 터그놀이를 할 땐 놔 교육이 필수다. 놓으랄 때 놓고 물라고 해야 물 수 있다. 작은 규칙을 통해 우리 사이엔 신뢰가 쌓이고 교감이 가능해진다.

터그놀이 규칙이 있으면 공놀이 규칙도 있다. 모든 강아지가 던진 공을 물어오지 않는다. 나도 이 사실을 개를 키우게 되면서 알았다.


포물선을 그리면서 날아가는 공을 본능적으로 쫓아가긴 하지만 그 뿐이었다. 전력으로 달려간 개 아까울 정도로 그 자리에 서서 멀뚱히 나를 바라보기만 하는 무강이를 보는 우리가 더 어이 없었다.

던진 공을 물어오게 하려면 나를 다시 찾아오고 싶게끔 만들어야 했다. 공을 물고 가면 확실한 보상이 있다는 것을 알려줘야 하는 게 순서였다. 아무런 보상도 없는데 공을 물어오는 뺑뺑이를 좋아하는 강아지는 없다. 우리는 공을 던지고 간식을 주거나 또 다시 공을 던져주면서 무강이가 우리에게 돌아온다는 규칙을 가르쳐줬다.


12-2.jpg 기분 좋을 때의 표정


무강이는 공보다 원반을 더 좋아한다. 원반의 크기가 더 커서 터그놀이까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빨이 상할까봐 부드러운 재질의 원반만 사용한다.

신나게 원반을 물고 오면 몸 이곳 저곳을 툭툭 치며 작은 몸싸움을 한다. 뺏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안 뺏기는 원반을 물고 무강이의 목 깊숙한 곳에서 그르릉 소리가 난다. 얼른 내놓으라는 공격적인 으르렁이 아닌, 재미있어 죽겠다는 신나는 그르릉 소리였다.


이 싸움의 승자는 항상 무강이다. 처음엔 내가 이겨도 마지막엔 무강이가 이긴다. 내가 무강이의 힘에 못 이기겠다는 듯 은근슬쩍 원반을 놓으면, 만족한 모습으로 물고 가서 한참을 뜯는다. 바닥에 엎드려 헥헥 거리는 얼굴에서 웃음이 활짝 피어 있다. 그렇게 숨을 고르고 다시 원반을 물고 다가온다.


이렇게 놀아줘도 30분 이상을 넘기기 힘들다. 보통 10분 정도로 짧게 놀아준 다음 줄산책을 한다. 더 길게 놀아주고 싶지만 원반 놀이는 오프리쉬가 불가피하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무강이의 예민함은 나를 놀이에 완전히 몰입하지 못하게 만든다.


이 흥분대장 무강이를 차분하게 만들 수 있는 놀이도 있다. 바로 노즈워크다. 잔디나 수풀 사이에 간식을 숨겨놓고 찾아먹게 하는 놀이다. 여기서 강아지는 기다림을 배우고 자신의 주변을 신경쓰지 않는 법을 배운다. 원반 놀이 후 마무리로 노즈워크를 해주면 한결 차분한 걸음으로 줄산책을 마칠 수 있다.

단순히 공을 물어오는 데서 그치지 않고 좀 더 발전한 단계도 있다. 어질리티와 프리스비, 독댄스 등이 그것이다.


어질리티는 정해진 규격 안에서 놓여진 장애물들을 빠르게 통과하는 경기다. 폴대 사이를 요리조리 피하기도 하고 터널을 통과하기도 한다. 전부 강아지에겐 만만찮은 장애물이다. 체계적인 훈련과 교감이 필요하다. 특히 이 경기는 보더콜리들이 너무 잘해서 보더콜리로만 구성된 팀 출전은 금지하는 규정까지 있을 정도다.

프리스비는 말 그대로 원반인데, 던지는 방식이 무궁무진하다. 보호자의 몸을 발판 삼아 날아오르는 강아지의 모습을 보면 박수가 절로 나온다. 독댄스 역시 개와 함께 추는 춤을 말하는데, 수많은 동작을 실수 없이 해내는 걸 보면 얼마나 많은 연습을 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무한체력을 가진 보더콜리에게 도시산책은 어떻게 해도 부족하다. 우린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해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그래서 이 도시는 너에게 위험한 곳이 아니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이제 무강이는 줄산책만 해도 집에 돌아오면 낮잠을 잔다. 집이 쉬는 공간이라는 규칙을 인지했다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아직 아빠(남편)가 퇴근하면 너무 좋아서 집안을 날아다니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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