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견과 살기 좋은 집

by 익호

어렸을 때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고 조르면 엄마는 이런 말을 했다.


“더 큰 집으로 이사 가면!”


하지만 내 인생에 큰 집, 넓은 집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용케 보더콜리 무강이와 함께 살고 있는 중이다.


사실 강아지를 키워보자는 남편의 제안에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도 ‘이렇게 집이 좁은데 무슨 개?!’ 라는 거였다. 우리는 부부 둘이 산다. 방 두 개에 작은 부엌과 거실이 딸린 전세살이다. 번듯한 우리 집이 아니라는 생각도 개를 키우는 데 상당한 걸림돌이 되었다. 지금도 개를 키운다고 하면 전, 월세를 구하는 데 엄청 힘이 드는 게 현실이니까.


걱정부자인 나와 달리 조용한 추진력을 지닌 남편이 우주를 데려왔고 무강이를 데려왔다. 우주는 집에 자신의 흔적을 많이 남겼다. 가구만 씹으면 될 것을 붙박이 신발장도 씹고 몰딩에도 이빨 자국을 남겼다. 다행인 건 무강이의 이갈이가 집에서 요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17-1.jpg "하우스" 한 마디면 들어가는 켄넬이지만 집처럼 여기지는 않는다.


전세 계약을 갱신하면서 무강이의 존재를 알렸다. 계약서엔 반려동물 금지라는 조항이 없어서 잘 넘어갈 줄 알았는데, 집주인은 바로 특약을 넣으며 걱정을 숨기지 않았다. 생각보다 경직됐던 계약 갱신 분위기에 당황했지만 당장 나가라는 말이 아니라 특약 추가로 마무리가 되어 다행이었다. 아마 다음번 계약은 갱신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지금은 위기를 무사히 넘긴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사실 이 집이 대형견과 함께 살기에 좋은 환경은 아니다. 무강이의 훈련사 선생님은 집에 오자마자 한숨부터 내쉬었을 정도니까. 이런 집은 보더콜리가 아니라 시츄가 딱이에요. 그게 첫 마디였다. 하지만 이런 환경 때문에 오히려 무강이의 산책을 더 열성적으로 챙길 수 있었다는 장점도 있다.


대형견 전문 켄넬을 살펴보면 마당 있는 집에는 오히려 분양을 보내지 않는다는 입장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마당에 풀어두고 산책을 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대형견을 기르면서 마당 있는 집에 대한 욕구가 커지던 참에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아이러니 했다. 우리는 무강이를 위해 마당 있는 집을 꿈꾸고 있는데, 대형견 전문 켄넬은 마당 있는 집을 기피한다니.


이런 의아함은 문제견을 다루는 TV프로그램을 보면서 해결할 수 있었다. 누가 봐도 멋지고 넓은 마당을 가진 집에서 사는 대형견이 문제견이 되어 TV에 나온 것이다. 훈련사는 마당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않는다고 했다. 아무리 넓고 좋은 집이라도 혼자 묶여만 있으면 그게 과연 개와 함께 사는 것일까? 마당은 마당이고 산책은 산책이다. 단순히 밥만 주는 것과 함께 사는 것은 다른 문제다.


마당 있는 집이나 좁은 다세대 주택이나 개를 키우기 힘든 환경인 건 마찬가지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보호자뿐이다. 우리는 개에게 더 많은 사랑을 주고 책임감으로 보호하며 함께 살아가야 한다. 개는 다른 사람이 보기에 좋아 보이는 멋들어진 장식품이 아니라 함께 살을 맞대고 사는 가족이니까. 우리는 가족을 마당에 묶어두고 살지 않는다.


아무리 그래도 좀 더 넓은 집이 있다면, 하고 이사를 꿈꾸는 게 사실이다. 무주택자인 우리는 부지런히 내 집 마련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는 중이다.

집의 넓이나 내부 설계도 중요하지만 내가 주의 깊게 보는 것은 공원이나 산의 위치다. 무강이와의 산책이 용이해야 그 집을 유심히 볼 마음이 생긴다. 로드뷰로 길이 잘 닦여 있는지 살피기도 하고, 직접 가서도 공원과의 거리부터 먼저 짐작해본다.


대형견이 살기 좋은 집은 어떤 걸까? 마당만으로 충족이 안 된다면 매일매일 평야라도 찾아 달려줘야 하는 걸까? 그렇게 체력을 소진시켜 주면 개의 행복은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을까?


행복한 개란 무엇인지 기준을 정해보자. 반려동물로 살고 있는 개의 행복은 어떤 게 있을까. 개의 감정을 살피는 건 쉽다. 개만큼 좋고 싫음을 분명히 나타내는 동물도 없다. 행복한 개의 꼬리는 하늘로 치솟고 엉덩이는 뽑힐 듯이 흔들린다. 그리고 무강이가 이런 움직임을 보일 때는 외출한 우리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다. 5분 정도만 나갔다 와도 집안을 날아다니며 기쁨을 표출하는 녀석에게 행복을 묻는다면 뭐라고 답할까?


17-2.jpg 배변패드를 침대처럼 사용하는 무강이(환장)


얼마 전 가족여행을 가느라 무강이를 호텔에 맡긴 적이 있다. 그 곳은 같이 뛰어 놀 친구들도 있고, 넓은 운동장도 있고, 전문 선생님들도 상주하고 개별 방도 제공해주는 쾌적한 환경을 갖추고 있다. 무강이 역시 그 곳을 좋아한다. 매번 꼬리가 하늘로 치솟은 사진을 받아본다. 하지만 무강이는 집에 오자마자 장염 증세를 나타냈다.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아마 스트레스가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이다. 위생적인 환경에 정해진 사료만 먹는 무강이가 갑자기 장염에 걸릴 리도 없을 테였다.


결국 무강이는 집의 크기나 넓은 운동장과는 상관없이 보호자인 우리와 함께 있는 순간이 가장 편안하고 행복하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래도 우리는 조금이라도 더 넓은 집, 한 평의 마당이라도 있는 집을 가기 위해 움직이겠지만.


모든 동물은 환경에 적응하여 살아간다. 극단적인 온도나 변화가 아니고서는 자신의 성향을 환경에 맞추어 최선의 방식을 찾아낸다. 대형견이 살기에 좋은 집도 그런 것 같다. 무엇이 우리 개를 더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고민한다면 더 좋은 환경도 갖춰줄 수 있을 것이다. 무강이가 가장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집은 우리와 함께 몸을 맞대고 잘 수 있는 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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