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전은 다르다는 거
여름이 되면 가장 힘들어지는 게 산책이다. 오전 8시만 되어도 해는 뜨겁게 타오른다. 아직 출근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지면은 30도를 훌쩍 뛰어넘는다. 이런 날씨의 공원은 낮보다 밤이 더욱 활기차다. 산책로는 열대야를 견디기 위해 나온 사람들로 가득하다. 겨울보다 두 배 정도 더 많은 사람들과 동물들이 공원을 거닐고 있다.
덕분에 여름밤의 산책은 미션임파서블을 방불케 한다. 이리저리 튀어나오는 동물들과 사람들을 피하고 나면 어느 새 레이저 그물망을 뚫는 톰 크루즈가 된 기분이다.
그 날 역시 우리는 톰 크루즈에 빙의해서 밤 산책 미션을 수행하는 중이었다. 웬일인지 무강이의 집중력도 좋아서 다른 개를 봐도 짖지 않던 밤이었다. 나 역시 무강이에게 최대한 집중하며 눈 맞추며 길을 걷던 중이었다. 그러던 중 우리 앞을 막아선 아저씨가 보였다.
그는 뒷짐을 지고 우리를 보며 가만히 서 있었다. 뒷짐 진 손에 자동줄이 들려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먹만 한 강아지가 맹렬히 짖으면 주로 죄송한 쪽은 우리가 되었다. 한 번에 몇 미터씩 늘어나는 자동줄은 작은 강아지에게 무제한의 범위를 선물한다. 강아지는 있으나마나한 줄을 몸에 매달고 전속력으로 달려오곤 했다. 기껏해야 180cm 이하의 줄을 가진 무강이는 피할 곳도 없이 그저 맞붙을 뿐이었다. 타견반응이 좋지 않은 무강이는 그런 강아지를 보고 가만히 있지 않는다. 그 쪽에서 먼저 시비를 건 모양새이지만 사람들의 눈총은 큰 개의 사나운 짖음에만 머문다. 나는 그런 눈총에게 죄송하기 싫었으므로 몸을 돌렸다.
“어이! 뒤에 애 있는데!”
아저씨는 손짓을 하며 뒤돌아가려는 나를 붙잡았다. 그의 말대로 내 뒤엔 초등학생 쯤 되어 보이는 여자 아이가 있었다. 나는 얼른 방향을 틀어 길을 비켜주었다. 아저씨는 아이의 어깨를 감싸고 조금 큰 목소리로 말했다.
“저렇게 큰데 입마개도 안하고...”
순간 내 입에서도 얼른 말이 튀어나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짧은 한숨이 나온 찰나에 부녀는 이미 사라지고 없어진 상황이었다.
입마개 시비는 이제 더 이상 특별할 일도 아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제대로 맞받아치지 못하는 나 자신이 너무 속상했다. 하필이면 오늘 무강이는 너무 얌전해서 속상함이 더욱 컸다.
주변의 대형견 보호자들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면 찰진 답변이 돌아온다. 나한테 걸렸으면 죽었을 거라는 등, 그러는 아저씨는 왜 입을 함부로 놀리냐는 등. 지나고나면 내 입에서도 한가득 받아칠 말들이 떠오른다. 그때 그렇게 말할걸. 이렇게 말했어야 했는데. 왜 그 자리에선 얼어붙어버렸을까.
“연습이 필요해. 입으로 뱉는 연습을 해야 해.”
진도를 키우는 친구는 하도 당해서 이골이 났다고 하며 이런 말을 했다. 바로바로 맞붙는 말을 내뱉을 수 있을 때까지 얼마나 많은 좌절과 속상함을 견뎌냈을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친구 역시 처음엔 아무 말도 못했다가, 조금씩 연습을 했다고 한다. 생각에서 그치지 않고 입으로 내뱉어 자신의 몸에 체화되도록. 그래서 그런 일이 또 생겼을 때 두 번 다시 당하지 않으리란 결심을 다지면서.
말을 한다는 것은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나의 말 한 마디에 주변의 분위기와 대화의 흐름이 바뀌고, 그 사람과의 관계가 끝날 수도 있다. 그렇기에 말은 굉장히 조심스럽게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누군가를 상처 주는 말은 항상 조심성이 없다. 몸에 박히는 화살처럼 상처 받는 말을 들어놓고 반격하는 한 마디가 시원하게 나오지 못한다. 속상한 나의 마음과 편견으로 굳어진 그들의 마음은 누구도 바꾸지 못했다. 오직 그 상처를 받은 나의 말이 무기가 될 수 있다.
이제 그 아저씨는 큰 개는 무조건 입마개를 해야 한다는 잘못된 생각으로 세상을 살아갈 것이다. 내가 맞받아치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잘못된 생각이 그대로 굳어져 간다.
내가 잘하면 알아주겠지. 내가 더 열심히 훈련시키고 더 잘 통제한다면 좋게 봐줄 거란 생각은 착각이었다. 무강이가 아무리 집중을 잘하고 사람들에게 꼬리를 흔들 어도 입마개를 해야 한다고 수군대는 입들은 멈추지 않았다. 그때서야 나는 말을 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무강이를 위해서, 앞으로 다닐 수많은 산책을 위해서라도 말을 내뱉는 연습을 계속할 생각이다. 이 연습이 실전이 될 날이 머지않게 닥칠 것 같지만, 이번엔 얼지 않고 제대로 말해보겠다. ,한 마디의 말이 일상을 바꾸리라는 희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