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에 나가면 등 뒤로 무강이의 견종을 맞추는 말들이 들린다. 대부분 브로콜리와 보더콜리를 혼동하는 말이지만 이제는 보더콜리라는 견종이 사람들의 일상에서 익숙해졌다는 표시로 보인다.
나조차도 그렇고, 사람들의 머릿속에 보더콜리라는 견종을 입력하면 자연스레 똑똑한 개라는 수식어가 나온다. 엄청난 활동량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그 다음 단계에 따라나온다.
자기보다 커다란 양떼를 한 번에 통솔하는 카리스마, 어질리티 운동장을 나비처럼 날아다니는 민첩성, 그 와중에 보호자에게 집중하는 영민함과 매력적인 외모까지 더해지면 보더콜리만큼 완벽한 개는 없어 보인다.
똑똑한 개를 키운다고 하면 다들 부러워하는 시선을 보낸다. 얘는 똑똑하니까 말도 잘 듣겠죠? 똥오줌도 잘 가리겠죠?
이런 질문 속에는 개의 똑똑함을 어떻게 생각하는 지 속내를 엿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개의 똑똑함이란, 나의 생활에 불편함을 끼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내가 청소를 하지 않을 수 있도록 똥오줌을 잘 가리고 내가 부르면 한 번에 달려와야 하며 산책을 나갈 땐 나에게만 집중해서 편하게 걸어 다닐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개가 똑똑하다는 건 그만큼 하고 싶은 것이 많다는 뜻이었다. 무강이는 똑똑한 개다. 빵! 이나 굴러! 같은 개인기는 3일이면 다 깨친다. 우리의 눈치를 잘 보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으려 약삭빠르게 행동한다. 산책을 나가면 늘 가던 길이 아니라 샛길로 빠지는 걸 좋아한다. 저 멀리 등장한 낯선 강아지의 냄새를 맡고 벌써부터 흥분한다. 땅에 내려앉은 새를 보면 납작 기어 사냥자세를 취한다. (높은 곳에 있는 새는 못 잡는다는 것을 안다) 너른 잔디밭에 오면 장난감을 꺼내준다는 사실을 알고 두 발로 점프해 내 옷에 발자국을 남긴다. 초롱초롱한 눈으로 얼른 놀자고 말한다.
안타깝게도 도시의 산책은 무강이가 원하는 걸 모두 들어줄 수 없는 환경이다. 맘껏 뛰어놀수도 없고 원하는 만큼 장난감을 던져줄 수도 없다. 아무 때나 산책을 나갈 수도 없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공원을 뱅글뱅글 돌아야하는 산책 속에서, 우리는 무강이의 만족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개를 구분하는 말 중에 사역견이라는 말이 있다. 수렵 이외의 각종 작업 또는 노동에 쓰기 위하여 사육하는 개. 즉 태어날 때부터 인간의 목적과 필요에 의해 삶이 결정되는 개다. 보더콜리는 사역견의 가장 대표적인 견종이다. 양몰이를 위해 태어난 보더콜리는 따로 배우지 않아도 양을 몬다. 드넓은 초원에서 양떼를 몰아야 할 때는 천재처럼 보이는 똑똑함이 도시에선 오토바이를 모는 위험한 문제점으로 바뀐다.
인간의 필요에 의해 본능을 바꿔버렸으면서 이젠 필요가 없으니 타고난 걸 문제라고 손가락질 하는 셈이다.
가끔 왜 사는지 몰라 인생을 방황하는 경우가 있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겠고 올바르게 가고 있는 것인지도 몰라 그 자리에 우두커니 주저앉아 시간을 낭비하던 때가 있었다. 그 때 법륜스님의 영상을 봤다. 왜 사는지 이유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사는지가 중요하다고. 왜 태어났는지 따지다보면 답은 죽음뿐이라고. 우리는 여기에 그냥 태어난 것이다.
이 답은 모든 생명체에게 들어맞는다. 개 역시 그렇다. 그들은 자신이 태어나게 해달라고 요청한 적이 없다. 우리가 필요에 의해 개를 개량했고 생산했다. 그렇게 태어난 것일 뿐이다.
똑똑한 개의 욕구가 뭔지 모르겠다면, 개를 나라고 생각해보자. 나는 이 세상에 기왕 태어났으니 잘 살고 싶다.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고 재미있는 것도 하고 싶다. 개도 똑같다.
똑똑한 개를 키우는 것은 결코 편하지 않다. 똑똑한 만큼 욕구가 많아 그것을 채워주어야 한다. 이걸 문제라고 부를 순 없다. 우린 이 개의 본능을 인정하고 그래도 같이 살기 위해서 노력해야 할 뿐이다.
그래도 개의 가장 큰 욕구는 뭐니 뭐니 해도 보호자와 함께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무강이는 우리 부부의 외출을 기가 막히게 알아챈다. 출근하거나 잠시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는 외출은 문 앞까지 따라 나와도 얌전하게 집을 지킨다. 그러나 일상적인 외출이 아니라 영화를 보러 간다던지, 볼 일이 있어 오랜 시간 집을 비우기 위해 나가는 외출은 바로 알아채고 자기도 데려가야 한다고 울부짖는다.
똑똑한 개를 키우는 것은 이렇게 불편하다. 외출 하나도 마음 편하게 할 수 없다. 외출용으로 특급 간식을 미리 제조해놓아야 하는 삶이다. 그래도 우리는 무강이 없는 삶을 생각할 수 없다. 어쩌다보니 태어난 우리와 무강이의 잘 사는 삶을 위하여. 그래도 우리와 사는 삶이 썩 나쁘지 않았다고 회고하는 날이 오길 바라면서 오늘도 산책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