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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호 Sep 27. 2023

템빨은 어디에나 있다

사람은 물론 개에게도. 

강아지를 키우기로 마음먹고 제일 먼저 한 일은 강아지를 위한 환경을 만드는 일이었다. 그러려면 온 집안을 강아지 용품으로 채워야 했다. 그러나 설레는 마음으로 들어간 가게에서 우리의 머리는 새하얗게 마비되어 버렸다. 매대를 꽉 채운 수많은 용품들 가운데 뭘 골라야 할지 길을 잃어버린 기분이 되었기 때문이다.      


정신없이 추천 받은 용품들을 가득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배변 패드와 사료 정도만 준비하면 될 줄 알았는데 패드의 종류도 여러 가지였고 사료의 종류도 여러 가지였다. 종별로 사료가 구분되어 있는 것도 처음 알았다. 아무거나 싼 걸로만 사면 안 될 것 같아서 다 똑같은 배변 패드를 두고 가만히 고민하기도 했다. 콤빗은 뭐고 슬리커는 뭐지? 귀청소를 해줘야 하는 거였나? 알 수 없는 거대한 반려동물의 세계에 겨우 발 하나 담근 우리였다.      


집에는 이미 커다란 켄넬을 사둔 상태였다. 밥그릇도 대형견 사이즈에 맞춰서 커다란 도자기 식기로 주문했다. 용품점에서 사온 물건들을 내려놓으니 좁은 집은 발 디딜 틈이 없어졌다.  과연 우리 강아지가 이것들을 다 필요로 할까? 더 필요한 게 있을까? 우리가 또 빼먹은 게 있진 않을까? 걱정하고 고민하는 동안 우리 집은 이미 개를 위한 집이 되어 있었다.      


완벽한 도기 하우스가 되었다고 자신만만하며 우주를 집안으로 들였다. 우주는 우리의 예상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생각보다 빨리 집에 적응한 건 고마웠지만 가지고 놀라고 사준 장난감보다 가구의 다리를 씹는 걸 더 재미있어 했다. 다행히 원목가구의 다리를 씹어서 우주가 갉아도 몸에 해롭진 않았다. 

우주는 우리의 냄새가 배어있는 물건을 더 좋아했다. 새로 사준 인형보다 슬리퍼나 베개를 물고 뜯었다. 가끔은 신발에 코를 박고 잠들기도 했다.      


강아지 용품에 보다 열성적으로 알아보게 된 것은 산책을 시작하면서 부터다. 그 전엔 개를 키우는데 이렇게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다는 걸 알지 못했다. 용품점에서 파는 1~2만 원짜리 줄은 보더콜리를 감당하지 못했다. 우주는 대형견 전문 업체에서 만든 튼튼한 목줄과 하네스를 써야 했고, 그나마도 몇 달 못가 끊어져 다시 사야 했다. 


우주의 줄 당김은 어마어마했다. 나가자마자 팽팽하게 줄을 당겼다. 한동안 근육통에 시달렸다. 그렇게 온 몸으로 줄을 당기면서 중간 중간 지나가는 오토바이에도 달려들었다. 안 그래도 정신없는데 통제까지 하려니 더 힘들었다. 그때 듣게 된 아이템이 이지워크 하네스. 노풀 하네스, 일명 앞고리 하네스였다.      


앞고리 하네스는 말 그대로 앞에 고리가 달린 하네스다. 일반적인 하네스 고리는 등에 달려 있어 개가 당기는 그대로 끌려가곤 한다. 그러나 앞섬에 달린 하네스 고리는 개가 당기면 뒤에서 보호자가 반대로 자신의 몸 쪽으로 수월하게 당겨올 수 있다. 그러면 개의 몸은 자동적으로 보호자를 향해 돌아서게 된다. 이런 행동을 계속 반복하면 줄을 당기면 앞으로 나가지 못한다는 걸 학습하게 되는 원리였다. 우리는 기대감을 가지고 앞고리 하네스를 사용했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오히려 이 하네스가 디스크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아예 사용을 중단해버렸다.      


우주를 거쳐 무강이까지 만나게 되면서 줄 당김을 해결하는 방법은 그저 버티는 것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줄을 당기면 따라가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킨다. 힘이 필요하고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그게 맞는 방법인 것 같았다. 앞고리 하네스를 버린 이후로 우주에게도 조금씩 우리의 규칙을 알려주고 손발이 어느 정도 맞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주는 갑작스레 우리 곁을 떠난다.      


우주가 떠나고 몇 개월 뒤, 펫페어라는 행사를 알게 되었다. 반려동물에 대한 모든 것이 한데 모이는 행사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당시에 우리는 강아지가 없었지만 그런 행사가 있다니 꼭 가보고 싶었다. 언젠가 데려올 또 다른 강아지를 위한다는 핑계로 집을 나섰다.      


펫페어는 봄과 가을에 가장 큰 규모로 열리니 이때 가보시길


행사장 근처에 가니 길을 헤맬 필요도 없이 전국의 강아지가 다 모여 있는 길이 나타났다. 그 길만 따라가면 행사장이 나왔다. 그렇게 많은 개와 사람들을 처음 만났다. 이 많은 사람들이 그동안 다 어디서 있었던 걸까. 약 천여 명의 사람과 개들이 줄을 서서 행사장이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린 그렇게 펫산업에 고객의 입장으로 발을 디디게 되었다. 개를 위한 모든 것이 상품으로 나와 있었다. 없어도 살 순 있겠지만 있으면 정말 편리한 제품들이었다. 오랫동안 갉아먹을 수 있는 이갈이 간식, 칼로리가 적고 기호성이 좋은 훈련용 간식, 접어 쓰는 차량용 켄넬, 엉킨 털을 쉽게 풀어주는 미스트와 빗 등등, 행사장 여기저기 눈을 사로잡는 아이디어가 발목을 잡았다.      


이제 펫페어는 봄과 가을마다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행사가 되었다. 무강이가 조금이라도 더 편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무강이가 편할수록 나도 편하다. 물론 그런 마음을 이용하는 일명 펫택스가 기승을 부리기도 한다. 그럴수록 꼼꼼하게 따져 더 좋은 물건을 고르기 위해 공부한다.      


요즘엔 무강이와 나만을 위한 소비를 벗어나 조금 더 다양한 가치에 힘을 쏟는 제품을 사보려고 한다. 개를 키우면 생각보다 쓰레기가 많이 나온다. 특히 무강이는 실내배변을 하는데, 그럴 때 쓰는 배변패드가 꽤 많이 소모되고 있다. 하루에 대여섯 장씩 폐기되는 패드는 모조리 쓰레기가 된다. 재활용도 안 되는 이 쓰레기들은 우리 집 종량제 봉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빨아 쓰는 배변패드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반신반의 하면서 사봤는데 생각보다 아주 만족하면서 쓰고 있는 중이다. 무엇보다 우리 집 쓰레기가 절반 이하로 줄었다. 매번 패드를 빨고 말려주는 게 조금 귀찮지만 어려운 일은 아니니 충분히 감내할 수 있었다.      


어차피 소비하고 살아야 할 세상이라면,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되는 쪽으로 소비하는 게 맞지 않을까 한다. 무조건 싸고 편리한 것보다는 조금 불편하고 귀찮아도 지구에 도움이 되는 소비를 한다면 이상적인 삶이 더 가까이 갈 수 있으니 말이다. 


동물을 사랑한다면, 그리고 그들과 우리의 삶을 생각한다면 환경은 꼭 지켜야 할 배수진 같은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아직은 한참 더 나아가야 하겠지만, 꿈꾸는 인생에 한 발짝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마음에 오늘도 지갑을 열고 고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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