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와 하나도 다를 것 없는 감정표현
무강이는 질투쟁이다. 다른 개가 내 옆에 오는 걸 보지 못한다. 멀리서 놀다가도 내 근처에 다른 개가 오면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온다. 얼마나 내 옆을 잘 지키는지 반경 1m안엔 개미 한 마리 오지 못한다. 제발 가서 놀라고 떠밀어도 엉덩이에 힘을 꽉 주고 버틴다.
무강이의 질투는 마냥 귀여운 건 아니다. 무강이의 문제행동 대부분이 이 질투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무강이가 다른 강아지를 향해 공격성을 보인 첫 번째 순간도 질투심 때문이었다. 처음 만난 강아지가 우리에게 몸을 비빌 때 무강이는 이빨을 드러내며 달려들었다.
이런 질투 탓에 무강이와 놀 수 있는 강아지는 다섯 손가락보다 적다. 우리는 무강이와 놀아주는 그 친구들에게 너무 감사해서 마음껏 예뻐해 주고 싶지만 질투 쟁이 때문에 1미터 이상 다가가지도 못한다.
강아지의 질투는 무강이와 살면서 처음 겪었다. 개는 질투가 없는 줄 알았다. 산책하다 만나는 강아지와 빙글빙글 돌며 엉덩이 냄새를 맡는 그 모습이 인사를 하는 줄로만 알았지, 서로의 정보를 탐색하는 것이라곤 상상도 못했다. 무강이는 다른 개의 코가 자신의 배로 들어오면 바로 공격한다. 그래서 우리는 무강이와 낯선 개를 인사 시키지 않는다.
인간이 의사표현을 할 때 말을 하듯이, 개 역시 그들의 언어인 카밍시그널을 쓴다. 짖음도 의사표현의 수단이지만 그 전에 몸으로 말하는 카밍시그널이 먼저다. 온 몸으로 신호를 보냈음에도 자신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으면 짖는다.
인간과 동물의 차이점은 감정표현이라고들 한다.
아니다. 동물의 감정표현 역시 인간만큼 풍부하다. 어쩌면 동일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정교해보이기까지 한다. 얼마 전 읽은 기사에서는 개의 꼬리가 대부분 감정표현을 위해 쓰인다고 한다. 몸의 균형을 잡는 것보다 감정표현을 위해 더 많이 흔들린다는 것이다.
개의 몸 이곳저곳은 감정을 드러내는 데 쓰인다. 땅의 냄새를 맡는 코는 호르몬의 냄새를 맡기도 한다. 그래서 자신을 사랑스럽게 쳐다보는 인간의 시선을 놓치지 않는다. 개의 표정도 사람만큼 다양하다. 입 꼬리가 올라가고 혀를 내민 채 헥헥 거린다면 웃는 표정이다. 반면 입을 꾹 다물고 눈은 동그랗게 뜬 채 어딘가를 줄곧 응시하고 있다면 공격성을 보일 가능성이 크니, 서둘러 시선을 거두어주어야 한다.
이쯤 되니 인간과 동물의 차이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 말곤 딱히 짚어내지 못하겠다.
동물도 인간처럼 좋아하는 것이 있고 싫어하는 것이 있다. 자신을 사랑해주길 바라고 영원히 곁에 있어주길 바란다. 그들의 세상은 오로지 인간의 것이기에 무모할 정도로 우리를 그리워한다.
내가 생각하는 인간과 동물의 차이는 바로 행동의 자유가 아닐까 한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는 감투를 쓰고 자연을 마음대로 헤집고 살았다. 그 덕분에 발전한 도시의 문명을 누릴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 값을 치러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인간이 기르는 모든 동물은 물론이고 야생에 사는 동‧식물 모두 인간의 행동 때문에 삶에 제약을 받는다. 집 앞 공원도 원래는 갈대가 무성한 습지였다. 숨을 곳이 많았던 갈대숲이 어느 날 갑자기 뻥 뚫린 공원이 되었다. 갑자기 생긴 연못에 갑자기 살게 된 물고기들은 어느 날 내린 폭우에 떠밀려온 흙에 밀려 연못의 절반을 잃었다. 그 흙은 공원을 만드느라 땅을 파헤쳐 지반이 약해진 탓이었다. 고양이 밥그릇은 언제부턴가 치워야 할 쓰레기가 되었다. 공원이 생기기 전부터 살고 있었던 동물들은 어느 날 갑자기 쫓겨날 신세가 되었다.
단순히 인간과 동물이 다르다는 이유로 이들의 삶을 마음대로 주무를 권리가 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해서 지금 피해를 보는 건 오히려 인간 쪽이 아닌가? 다르다는 건 우월과 열등을 가리는 말이 아니다.
내가 무강이의 감정을 잘 알아챌 수 있는 이유는, 무강이를 우리 가족이라 생각하고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우리와 동등한 존재로 받아들이고 더 나은 삶을 위해 자세히 관찰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은 변화가 더 잘 보였을 뿐이다.
요즘 들어 무강이의 질투가 더욱 심해지고 있다. 우리 부부 사이에 꼭 끼어 앉아야 직성이 풀린다. 나란히 앉아 있으면 그 좁은 틈에 엉덩이를 비집어야 한다. 그러면 따뜻하고 묵직한 존재감이 우리 사이를 채운다. 그게 좀 성가셔 귀찮다가도 자리를 비우면 그렇게 허전할 수가 없다.
이 묵직한 귀찮음이 오랫동안 곁에 있기를 바란다. 모든 동물들의 삶 역시 그렇다. 우리에겐 귀찮음 이지만 그들에겐 살아갈 힘이 될 수 있다. 작은 애정 하나 내밀어주는 거, 귀찮지만 어려운 일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