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순내

지울 수 없는 사랑의 냄새

by 익호

꼬순내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다면 당신은 분명 개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이 말이 언제부터 통용되었는지는 모르겠다. 고소한 냄새를 뜻하는 전라도 사투리인 꼬순내는 어느 순간 강아지의 몸에서 나는 구수한 냄새를 지칭하는 말이 되어버렸다.


꼬순내는 강아지의 발바닥에서 사는 세균 때문에 난다. 프론테우스(pronteus)라는 세균과 슈도모나스(pseudomonas)라는 세균이 발바닥에서 번식하는 것이다. 강아지의 몸 중에 유일하게 땀샘이 있는 발바닥은 세균이 번식하기 좋은 조건이다. 매일 산책을 하면서 야외에 있는 각종 박테리아와 이물질이 묻으면서 발바닥에 나는 땀과 함께 뒤섞이니 세균에겐 더없이 좋은 환경이다.


꼬순내의 정체는 잘 알아차리기 힘들다. 처음 개를 키우는 집에 방문했을 때, 나를 충격에 빠뜨린 건 손님을 반기는 귀여운 강아지의 꼬리가 아니라 코를 찌르는 개비린내였다. 분명히 깔끔하게 청소를 해둔 집이었는데 곳곳에 밴 개냄새는 감출 수 없었다.


그로부터 수년이 지난 지금, 충격의 개비린내는 이제 꼬순내가 되어 내 옆에 살고 있다. 그 때는 코를 찌르던 개비린내가 귀여운 꼬순내가 되어 하루에도 몇 번씩 코를 대고 들이마시고 있다.


그렇다. 꼬순내는 애정의 냄새다. 개에 대한 애정이 없던 시절엔 비린내로 여겨지던 것이 이젠 중독성 강한 꼬순내가 되었다. 내가 개에게 애정을 쏟는 만큼 꼬순내는 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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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꼬순내가 가장 귀여운 순간이 있다. 샴푸 목욕을 하고 나서 일주일이 지나면, 샴푸향과 체취가 뒤섞인다. 꽃향기와 고소한 냄새가 섞여 꼬순내의 시작을 알린다. 열심히 산책한 무강이의 뿌듯함과 벅벅 씻겼던 나의 수고가 합쳐 애정이 듬뿍 생긴다.


사랑받은 강아지라면 누구나 자신만의 꼬순내가 있다. 사람의 체취가 모두 다르듯이 개의 꼬순내도 지문처럼 다르다. 남의 개에선 비린내가 나지만 내 개에선 꼬순내가 나는 이유다.

그러나 냄새가 다르다고 하여 배척할 이유가 되진 않는다. 각자 사랑의 냄새가 다른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개에게 우리만의 사랑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각자의 사랑은 철저히 다를 수 밖에 없다.


가끔 개의 몸에서 나는 냄새가 싫다고 목욕을 자주 시키는 보호자를 볼 수 있다. 나는 그럴 때마다 인터넷에서 ‘개 목욕 시키면 안되는 이유’를 한가득 찾아와 보여준다. 개의 피부는 사람보다 얇다. 얇은 피부를 털이 보호하는 방식이다. 목욕을 자주 시키면 피부는 그만큼 자극을 많이 받는다. 약해진 피부는 면역력에도 영향을 준다. 작은 생채기 하나가 큰 합병증을 불러올 수도 있다. 도저히 냄새를 참을 수 없다면 차라리 빗질을 많이 하길 바란다. 향이 나는 강아지 전용 미스트가 잘 나와있다. 엉킨 털도 쉽게 풀어주어 빗질이 더욱 쉬워진다. 무강이도 미스트와 빗질을 자주하고 목욕은 1년에 한 두 번 정도만 한다.

목욕은 인간의 행위다. 개에게는 목욕이 필요 없다. 털은 개의 보호막이다. 냄새가 나고 잘 빠진다는 이유로 마구 헤집어 놓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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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가피하게 씻겨야 할 때가 있다. 가끔 끈적한 송진이나 껌 같은 이물질이 묻을 때가 있다. 평소엔 물티슈로 살짝 닦아내고 말았을 산책 마무리가 그런 날은 한숨을 쉬며 화장살로 데려가며 시작한다. 발을 씻으려고 샤워기를 가져다대면 무강이는 매몰차게 발을 털어댄다. 짜증이 가득 묻은 채로 발을 털어대는 모습을 보면 마음에 상처가 생길 지경이다.


그러나 질 수 없다. 그런 이유로 저 더러운 발을 가지고 침대에 올라가는 걸 볼 수 없다. 무강이는 자신의 몸을 단정히 할 때 꼭 침대에 올라간다. 어디선가 침대와 소파는 개에게 금지된 영역이라고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무강이에겐 뭘 해도 좁은 집이다. 안 그래도 작은 공간인데 한계까지 두고 싶진 않았다.

화장실에서 이리저리 쫓아다니며 발을 겨우 씻었으면 이제부터 본게임 시작이다. 장모 보더콜리는 다리에 긴 장식털이 있다. 발바닥 사이에도 털이 꼼꼼하게 나 있다. 발을 씻겼다면 다리의 장식 털도 젖었고, 다리가 젖었다면 배까지 젖는다. 길다란 털을 뽀송하게 말려야 하는 마지막 사투가 시작된다.


간식으로 회유하고 몸으로 붙잡아서 겨우 뽀송한 발바닥을 만들고 나면 진이 빠진다. 개는 뽀송하고 나는 젖은 옷을 벗어 던진다. 그래도 분홍색 곰돌이 발바닥을 보면 고생은 다 사라진다. 갓 씻어서 촉촉하고 보들보들한 분홍색 곰돌이. 강아지 발바닥은 무적이다.


강아지의 발바닥은 아주 예민한 부분이다. 유일하게 땀샘이 있고 온도차를 감지할 수 있으며, 발가락을 자유자재로 움직여 다양한 지면에서 발을 디딜 수 있게 해준다. 그래서 한 여름엔 뜨겁게 달궈진 아스팔트를 조심하고 겨울엔 빙판길에 뿌려진 염화칼슘을 피해야 한다. 조금 고생스럽지만 그 예민하고 사랑스러운 발바닥에 상처가 생기는 건 용납할 수 없다.


예민한 만큼 다치기도 쉽다. 조금만 격하게 놀아도 껍질이 벗겨진다. 피만 안 나면 괜찮은데. 도톰한 살이 완전히 들려 철심으로 꿰맨 적도 있다. 원래도 발 맡기는 걸 싫어하던 무강이는 발을 꿰맨 이후로 동물병원을 싫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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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순내를 지키기 위해 밟아야 할 단계가 이렇게 산더미다. 그래도 꼬순내를 포기할 순 없다. 이 냄새는 사랑의 증거다. 냄새는 가장 감추기 어려운 부분이다. 아무리 정체를 꽁꽁 숨겨도 냄새는 스멀스멀 올라온다. 꼬순내 역시 마찬가지다. 아무리 숨겨도 숨길 수 없는 명확한 애정의 냄새. 오직 개와 함께 하는 사람들만이 즐길 수 있는 합법적인 중독성 물질. 꼬순내는 더욱 진하게 우리 집을 채울 것이다. 더 진하게 꼬순내를 풍기며, 달려라 무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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