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씩 천천히 꾸준히
<하면 된다>
청춘과 패기를 보여주는 데 이만한 말은 없는 것 같다. 아무리 봐도 불가능할 것 같은 일이 하면 된다는 말을 읊조리는 순간 희망의 불씨가 생긴다.
하지만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 중에 하나가 바로 하면 된다 이기도 하다. 누가 봐도 뻔히 실패가 보이는 상황에서 하면 된다는 말은 자기 최면을 걸고 불나방처럼 뛰어드는 것 같이 보였다. 결국 불나방은 불에 타 죽는 결말을 맞이하지 않는가.
실패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무언가를 해냈을 때 느꼈던 뿌듯한 성취감과 희열은 그 무엇보다 달콤하고 짜릿하다. 반면 실패했을 때는 파도처럼 좌절감이 밀려온다. 순식간에 깊은 물 속에 잠겨 숨도 쉬기 어려워진다.
개를 키우기 전, TV에 나오는 강아지 행동교정 프로그램은 우리의 교과서 였다. 사납게 날뛰는 개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보호자를 볼 때면 혀를 차기도 했다. 저기서 저러면 안되지. 저럴거면 개를 키우지 말았어야지.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들의 실패를 재단하고 넘겨짚었다.
개를 키우게 된 날, 나는 이제 잘할 거라는 오만한 망상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그 망상이 깨지는 데는 3일도 걸리지 않았다. 나는 인정해야 했다. 우리의 앞 날엔 실패만 가득할 거라는 걸.
무강이가 공격적인 타견 반응, 그리고 오토바이를 쫓는 반응을 보인 직후부터 바로 훈련을 시작했다. TV에 나온대로, 유투브에 나온대로 줄을 채보기도 하고 몸으로 찍어 누르기도 해봤다. 그러나 무강이는 더 날뛰었다. 교과서라고 믿었던 방식은 실패만 안겼다.
개인적인 도전에서의 실패는 중단하면 그만이었다. 간단히 포기하고 물러서면 그대로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무강이와 관련된 일은 절대 포기가 안 되는 구역이었다. 무강이와 함께 살기 위해 타협할 수 없었다. 어떻게든 방법을 찾고 성공해야 했다.
TV나 유투브 속 방법들이 무강이에게 맞지 않음을 알게 되자 방문훈련을 알아봤다. 무궁무진한 훈련사들 사이에서 무강이와 꼭 맞는 사람을 찾기는 불가능에 가까워보였다.
일단 훈련사가 방문해야 하므로 집 근처를 먼저 찾았다. 그리고 TV, 유투브에 나온 훈련과 동일한 방법을 쓰는 사람은 제외했다.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을 부르는 사람도 제외했다. 바이럴성 광고글을 쓰는 사람도 제외했다. 그러다 집 근처에 있는 분을 발견했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정보도 후기도 거의 없었지만, 블로그에 있는 글은 광고성 글이 아니었다. 전문가의 시선으로 차분하게 써 내려간 글을 보니 한번 배워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때마침 할인 이벤트가 진행 중이어서 얼른 신청했다.
처음 훈련을 마쳤을 때는 실망스러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 나아지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보다 훨씬 개를 잘 다루셨고, 그래서 그 순간 만큼은 나아지는 모습이 보였지만 그 때 뿐이었다. 한 번의 훈련만으로 바로 나아지는 모습이 나오지 않으리라는 건 잘 알고 있었다. TV속 개선된 강아지의 모습이 편집의 힘으로 나온 결과라는 것도 알았다. 수업을 마치고 나면 조금이라도 달라져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바뀌지 않은 무강이의 모습은 힘을 빠지게 만들었다.
이건 TV가 아니라 현실이라는 사실을 계속 되뇌었다. 지금 당장 나아지지 않아도 계속 해야한다고 자기 최면을 걸었다. 한달 동안 교육을 받았지만 무강이는 계속 오토바이에 달려들었다.
무강이의 계속되는 문제행동은 내가 실패의 좌절감에 빠질 틈을 주지 않았다. 나는 배운대로 오토바이가 지나갈 때마다 무강이의 몸을 잡고 시선을 나에게 돌렸다. 엔진소리가 들리면 무강이의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다. 눈은 흰자위를 보일만큼 한껏 돌아갔다. 그래도 나는 무강이의 몸을 더 꽉 잡았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 지금이 됐다.
이제는 오토바이가 오면 나는 무강이의 줄을 살짝만 당겨 신호를 준다. 그러면 바로 내 옆에 앉아 나를 바라본다. 오토바이가 지나가면 간식을 주며 나를 본 것을 칭찬한다. 인도에서 도로를 달리는 오토바이는 딱히 제지를 하지 않아도 아무렇지 않게 걸어갈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아직 코앞에서 스쳐 지나가는 오토바이는 그냥 보내지 못하지만, 이 정도만 되어도 꽤나 만족한다.
지나고 보니 우리는 이 훈련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매일 해 온 것이다. 하루에 두 번씩 산책을 나오는 매 순간이 훈련의 일종이었다. 실패를 재단하고 포기하지 않고 조금씩, 천천히, 꾸준히 훈련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 결과가 이제야 서서히 눈에 보이고 있는 중이었다.
거의 2년이 다 되어서야 훈련의 성과를 마주하고 나니, 하면 된다는 말이 가진 다른 의미를 알 수 있었다. 무턱대고 하면 된다는 뜻이 아니라, 될 때까지 하는 것이었다.
아직 무강이의 타견반응이 완벽하게 나아진 건 아니다. 하지만 그룹 수업에 가면 헬퍼독으로 불릴 정도로 성장했다. 처음 수업에 나온 사람들에게 무강이 이야기를 들려줄 때면 어깨가 올라가는 걸 숨길 수 없다. 여전히 산책은 긴장의 연속이고 내 시야는 5m 전방을 살펴야 하지만, 이만큼 온 것만 해도 어디냐는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결국은 이렇게 조금씩 나아지는 무강이의 모습이 내 인생 신조까지 바꿔주고 있었다. 앞으로도 무강이와 우리는 조금씩 천천히 꾸준히 나아갈 것이다. 될 때까지,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