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개는 똑같다
가장 경계하고 신경 쓰이는 단어 ‘입마개’ 그리고 그 뒤에 항상 따라다니는 말 “저렇게 큰데”
무강이가 사회성이 썩 좋은 개는 아니지만 모두에게 공격적인 개도 아니다. 마주치는 개와 사람을 지나칠 줄 알고 나에게 집중할 줄도 안다. 죄송하단 말도 많이 하지만 그만큼 멋진 개라는 말도 많이 듣는다.
그 다음으로 듣는 말이 바로 입마개다.
입마개의 이유는 대부분 크기였다. 크니까 입마개를 하라는 논리다. 아무런 공격성도, 짖음도 보이지 않았는데 크다는 이유로 입을 막으라는 논리는 나를 화나게 만든다.
이런 논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통용되는 데엔 스몰독 신드롬의 영향이 크다는 생각이 든다. 말은 이렇게 거창하지만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생각이다.
스몰독 신드롬.
대형견이었으면 크게 문제 삼았을 입질이나 공격 등을 소형견이라는 이유로 교정하지 않고 내버려두었다가 통제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게 되는 것.
우리나라 반려견의 대부분이 소형견인 상황에 딱 들어맞는 말이기도 하다. 스몰독 신드롬의 현상은 몇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한입거리야
소형견이 공격적인 태세로 무강이에게 달려들면 보호자는 줄만 가볍게 당기면서 이런 말을 한다. 야, 너는 쨉도 안돼. 너 한 입거리야.
이런 말을 들을 때면 정말 한 입에 물게 해버릴까 하는 생각도 든다.
2. 엉아야, 엉아
산책은 걷고 뛰고 노는 것만 하는 게 아니다. 쉬는 것 역시 산책에 포함한다. 벤치에 앉아 쉬고 있을 때였다. 전동휠체어를 탄 어르신이 발치에 작은 포메라니안을 앉히고 내 옆에 섰다. 자연스럽게 포메라니안을 내려놓았다. 줄도 없는 그 강아지는 곧바로 무강이에게 달려왔다. 무강이는 놀라서 짖고 나는 얼른 무강이를 내 몸에 붙이며 자리를 멀리 떨어뜨렸다. 그러자 어르신은 강아지를 부르지도 않고 엉아야, 엉아 만 말씀하셨다.
3. 딴짓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유형이다. 대표적인 현상은 핸드폰을 보며 걷기가 있다. 핸드폰을 보며 걷는 일은 혼자 걸을 때도 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여기에 자동줄까지 더해지면 전형적인 스몰독 신드롬을 볼 수 있다. 최대 8m까지 늘어나는 자동줄은 소형견의 한계를 없애준다. 작기 때문에 시야에 들어오기도 어렵다. 때문에 일반 보행자들도 발치에 불쑥 나타난 작은 강아지의 등장에 깜짝 놀란다. 이 소형견이 무강이에게 돌진할 때에도 보호자는 무강이를 보지 않고 핸드폰만 보고 있었다. 내가 아무리 피해도 강아지를 통제하지 않는 보호자는 이리저리 끌려왔다. 보다 못해 말을 거니 깜짝 놀라며 그제서야 무강이와 멀어질 수 있었다.
4. 물어요?
반려견이 없는 일반 보행자에게도 많이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인사해도 되냐, 만져도 되냐가 아닌 물어요? 가 가장 먼저 튀어나온다. 안 물면 함부로 만져도 되는 것일까?
#말티즈는참지않긔
한때 이 해시태그가 유행했던 적이 있었다. 작고 하얀 말티즈가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대는 모습이 귀엽다고 말이다.
이 모습을 대형견으로 바꿔보자. 바로 문제견 등극에 입마개는 물론이고 심하면 안락사까지 거론한다.
이 해시태그의 유행은 단순히 화내는 말티즈의 모습이 귀엽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말티즈가 정말 참지 않고 공격적인 모습을 많이 보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공감대를 산 것이다.
실제로 작은 개일수록 공격성이 심하다는 것은 입증된 연구결과가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 사실이 스몰독 신드롬을 정당화 할 수는 없다.
작고 인형 같은 “애완”동물의 면모만 선호하고, 그렇기 때문에 내가 언제든지 통제할 수 있다는 안일함이 깔린 결과가 오늘에 이른 것이다.
언제부터 작은 개는 귀여운 강아지고, 큰 개는 무서운 짐승이 되었을까?
이런 의문은 특히나 어르신을 만날 때 더욱 강해진다. 작은 개를 벤치에 올린 어르신이 무강이를 보며 집에서 어떻게 기르냐고 물어볼 때, 그렇게 큰 개는 밖에 내놓고 길러야 한다는 무의식을 볼 수 있었다.
언제부터 사람들은 큰 개를 내놓고 길러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큰 개는 왜 밖에서 짬밥을 먹고 비바람을 맞으며 사는 삶이 옳은 걸로 되었을까. 이 출발선은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우리나라 토종견의 체형은 중형견에 속한다. 아무리 작아도 10kg를 살짝 밑도는 수준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1~3kg의 초소형견이 한국에 유입된 시점은 1980년대였다. 돈을 주고 사오지 않으면 인형보다 가벼운 강아지는 보지 못했을 것이다.
큰 개는 잡종견이 대부분이었다. 잡종견은 길에 널렸다. 발로 차도 꼬리를 흔드는 멍청하고 흔한 놈들이다. 조금이라도 눈에 거슬리면 언제든지 죽여 잡아 먹을 수 있는 짐승이었다. 그게 개의 운명이었다.
작은 개는 품종견이 대부분이고, 품종견은 비싸다. 비싸기 때문에 귀하다. 품 안에 놓고 애지중지 기른다.
비싼 개는 어디에서 왔는가? 잡종견과 다르지 않은, 어쩌면 훨씬 더 가혹한 환경의 번식장에서 출발한다. 기생충과 오물 속에서 젖도 떼지 못하고 상자에 담겼다. 그래서 비싼 개는 아픈 개가 많다. 더 작고 귀여운 강아지를 만들기 위해 아무렇게 교배한 탓에 유전병을 달고 태어난다. 전혀 건강하지 못한 탄생이었다. 이제는 큰 개 마저도 사오는 경우가 훨씬 더 많은 지금, 어느 개는 귀엽고 어느 개는 무서운지 따지는 건 어리석은 일이 되었다.
작은 개든 큰 개든, 개는 개다. 작아서 괜찮은 것도 아니고 커서 무서운 것도 아니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말과도 같은 진리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그렇다. 그러니 스몰독 신드롬 같은 보잘 것 없는 개념을 당장 갖다 버리길 바란다.
※ 커버이미지는 왕큰 공쥬님 무강이
※ 모든 소형견과 그 보호자를 일컫는 이야기가 아님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