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05. 섬에는 우수가 있다 (르 클레지오)ㅡ올레 2코스

터진목 4.3 유적지, 오조리, 혼인지

by 깡통로봇

2022년 4월 4일 올레 2코스, 3-A코스 (성산부터 온평, 신풍까지)



성산항으로 쪽으로 들어가서 일출봉 쪽으로 포장이 끊긴 길을 가다 보니 해돋이와 일출봉의 조화로운 풍경이 평화롭게 펼쳐진 언덕이 마음을 다 흐뭇하게 한다. 생각해 보지 못한 곳에서 만나는 절묘한 풍경이다.


아침이라 아직 입장하는 사람들이 없는 성산 일출봉을 거쳐 터진목 4.3 유적지를 지나게 된다.

광치기 해변의 아름다움은 올레길이 열리고 처음 접하게 되어, 제주를 올 때 동쪽으로 오게 되면 꼭 걷게 되는 매력을 보여준다. 그래서 관광버스나 렌터카를 타고 성산 일출봉만 들르던 사람들이 한눈에 들어오는 일출봉과 아름답고 강렬한 진초록의 해초들로 덮인 검은 바위를 사진에 담기 위해 많이 오게 된 곳이다.



코로나 시국 이전에 수학여행을 와서 성산 일출봉을 가면 광치기 해변을 꼭 걸어서 지나가게 일정을 여유 있게 잡곤 했는데, 아이들이 꽤 걸어가게 되는 길임에도 무척이나 즐거워하곤 했다.(어디든 바다기만 하면~) 이 코스를 포함시키는 이유에는 이 길의 마지막 부분에서 4.3에 대한 이야기를 한 꼭지 하려고 의도가 있는 것인데, 아이들의 영혼은 이미 바다의 신에게 잠식된 후라 나의 설명은 벌써 먼 나라 이야기가 된 듯한 느낌이긴 하지만, 제주가 관광지로만 기억되지 않고, 이곳에서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의 삶과 아픔을 한 조각이라도 가지고 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다.

섬에는 우수가 있다. 이게 어디서 나오는지 알 수가 없다. 그것이 마음 갑갑하게 만드는 이유다. 오늘날 제주에는 달콤함과 떫음, 슬픔과 기쁨이 뒤섞여 있다. 초록과 검정, 섬의 우수, 우리는 동쪽 끝 성산 일출봉 즉 ‘새벽 바위’라 불리는 이곳에서 느낄 수 있다. 바위는 떠오르는 태양과 마주한 검은 절벽이다. 한국 전역에서 순례자들이 첫 해돋이의 마술적인 광경의 축제에 참석하러 오는 곳이 바로 여기이다.
1948년 9월 25일(음력) 아침에 군인들이 성산포 사람들을 총살하기 위하여 트럭에서 해변으로 내리게 했을 때 그들의 눈앞에 보였던 게 이 바위이다. 나는 그들이 이 순간에 느꼈을, 새벽의 노르스름한 빛이 하늘을 비추는 동안에 해안선에 우뚝 서 있는 바위의 친숙한 모습으로 향한 그들의 눈길을 상상할 수 있다. 냉전의 가장 삭막한 한 대목이 펼쳐진 곳이 여기 일출봉 앞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은 1948년 4월 3일에 제주에서 군대와 경찰이 양민학살(인구의 10분의 1)을 자행한 진부한 사건으로 시작되었다.
오늘날 이 잔인한 전쟁의 기억은 지워지고 있다. 아이들은 바다에서 헤엄치고, 자신들 부모의 피를 마신 모래에서 논다. 매일 아침 휴가를 맞은 여행객들은 가족들과 함께 바위 너머로 솟는 일출을 보기 위해 이 바위에 오른다. 숙청 때 아버지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들을 잃은 시인 강중훈 씨 조차 시간의 흐름에 굴복했다. 그가 아무것도 잊어버리지 않았다면- 그의 시 한 편이 9월 25일의 끔찍한 흔적을 지니고 있다.- 그걸 뛰어넘을 필요성도 알고 있다.
<르 클레지오 의 “제주 기행문” 중에서 >


터진목에서는 대규모 양민 학살이 일어나 인근 마을에서도 끌려와 희생당한 사람들이 450여 명이나 된다고 하니 참혹한 비극의 역사 현장이다.


‘검은 절벽’이라는 표현을 처음 본 것은 아닐 텐데, 마음에 강한 여운을 준다. 일출봉은 내 마음에 크고 밝고 푸르른 이미지가 강했던 것 같다. 그런데 해 뜨는 일출봉을 광치기 해변에서 보면 검은 벽이 턱 하니 자리 잡고 있는 것이 보인다. 그날 트럭에 실려 이곳에서 공포에 떨며 새벽에 절망감으로 바라봤을 사람들의 마음에도 거대한 검은 벽이 하나씩 서 있었으려니.



광치기 해변이 끝나는 곳에서 2코스가 시작된다.

재미있는 것은 이 길은 시작점에서 너무 금방, 짧은 우회 코스가 나오는데, 이걸 보고 잠시라도 생각(고민까지는 아니고)을 한 번은 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금방 마음을 잡고 성산 갑문으로 인해 만들어진 내수면 뚝방길을 걸어가다 보면 어렵지 않게 걸어서 식산봉을 만나게 된다. 입구에 표지판에서 얼핏 40m(정확한 지 알 수 없음)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보고 가면서 ‘그럼 뭐 한 걸음에 뛰어도 가겠네 ‘라고 생각을 했는데, 마음을 이리 먹으면 오르는 길이 쉽지가 않다는 것을 다시 알 게 되었다. 왜적을 속이기 위해 낟가리를 쌓아 곡식을 쌓인 것처럼 위장하였다 하여 식산봉이라 했다는데, 오르면 근처를 다 둘러볼 수 있는 전망이 나온다.


식산봉을 내려와 오조리를 지나며 보말칼국수를 한 그릇 시켜 먹는데, 세 분 아주머니가 해녀일을 배분하는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오조리는 해녀 마을로 유명한 곳이어서 해녀의 일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니 친절하게 답을 해 주신다. 나는 해녀 일의 고단함을 전제로 질문을 하는데 아주머니들은 물질이 수입이 좋고 그래서 자식들 잘 키우고 경제적으로 도움이 많이 된다는 점에 초점을 두고 답을 해 주신다. 그리고 같이 일을 나가면 재미도 있다 이야기를 많이 하시니, 내가 너무 미리 짐작으로 편견을 가지고 생각하는구나 하는 반성도 하게 된다.



성산 시내를 지나면서는 길가에 벚꽃이 예쁘게 피어 있기도 하고 동백꽃도 자주 접하면서 걷는데, 포장된 길을 걸으면서부터는 발에서 살짝씩 아픈 신호를 보낸다.

보폭과 속도를 줄이면 다리에서 오늘 부담감은 확실하게 조금씩 줄어드는데, 발바닥이나 발가락 어디에서 생겨나는 아픔은 걷는 자세를 바꿔가면서 닫는 부위를 달리하는 조절을 하면서 걸어가는데, 한 곳이 아파서 신경을 쓰다 보면 느닷없이 다른 곳에서 알아달라는 신호가 온다. 발이 다양한 부분의 존재감을 알려 준다. 아픈 것보다도 물집이 잡혀서 걷는데 지장이 생길까 봐 걱정이 된다. 학교에서 담임을 맡아 아이들을 지도하다 보면 이와 유사한 일들이 생겨난다. 한 아이에 집중해서 어떤 일을 처리하고 나면 다음엔 다른 문제가 다른 곳에서 터지고, 아이들은 나도 여기에 있으니 봐 달라는 신호를 끊임없이 보낸다. 그렇게 정신없이 복닥거리고나서야 서로에게 정도 더 붙고 안정도 이루어진다.


길을 걷다 보면 문뜩 생각이 나는 사람이 있고, 어떤 상황이 떠올라 복기를 해 보기도 하고 그런다.

여행 출발 전에 딸아이와 왜 길을 걷고 싶은 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어, 시내 길을 무료하게 걸을 때는 딸아이에게 편지를 쓰는 형식으로 해서 여행을 정리하는 글을 써보면 어떨까 하고 이런저런 생각을 구술을 하면서 걷기도 했는데, 나중에 정리를 하자니, 정말 몇 줄 되지도 않을 내용을 되뇌고 있었다. 더구나 나중에 딸아이에게 이런 형식은 어떨까를 물어보니 참 구태의연한 재미없는 방식이라는 지청구만 원 없이 들었다. 마치 꿈속에서 아무것도 아닌 내용을 대단한 발견이라고 생각하면서 깨어나서는, 그 내용을 기억 못 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이와 비슷할까?



올레길을 걷다 보면 중간중간 한라봉, 감귤을 한 봉지에 1000원에 판매하는 무인 판매대가 있다. 정식 상품이 되지 못할 것들을 몇 개 담아 놓고 판매하는 것인데, 혼자 걸으면서 매우 유용하게 이용할 수가 있었다. 농부들에게 그 판매가 경제적으로 큰 도움이 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되니, 걷는 이들을 위한 마음 써 줌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마침 옆에 정자가 있어 잠시 쉬면서 귤을 까먹고 있는데, 지나가던 올레꾼이 귤을 한 봉지 사서 정자에 와서 앉는다.

백패킹을 즐긴다는 이 올레꾼은 요즘은 무릎이 아파서 짐을 많이 질 수가 없어서 가볍게 해서 걷고 있다고 하며, 나의 배낭과 신발, 스틱 등의 장비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이야기를 시작해서, 어젯밤에 잠을 못 자고 봤다는 프리미어리그 축구로 화제를 끌고 간다. 친화력이 좋아 사람과 쉽게 대화를 시작하고, 성격이 유쾌한 사람들이 때로 부러울 때가 있다. 낯선 환경에서 사람과 처음 만나게 되면 생기는 서먹함이 있을 때는 더 그렇기도 하다.



날도 좀 더워지고 햇볕이 강하기도 해서 그늘 생각이 간절했는데, 대수산봉 산길을 올라가게 되니, 그늘의 시원함과 흙길의 편안함이 오르막의 힘듦을 잊게 했는데, 중간에 고라니 일지 노루 일지 모를 짐승이 숲 사잇길을 지나 후닥닥 뛰어간다. ‘아 깜짝이야.’ 놀라고 한번씩 웃게 된다.

대수산봉 정상에 오르니 어제부터 걸어온 길이 한눈에 시원하게 조망이 된다. 그런데 의자에 앉아 쉬고 있는 올레꾼의 상황이 별로 좋지가 않다. 탈진의 기운이 조금 보이는 데, 일행인듯한 사람이 난감해하며 걱정스레 지켜보고 있다. 물을 좀 줄까 하고 보는 데 가방에 물통을 두 개나 꽂고 있다. 올레 26코스를 하루에 하나씩 해서 다 도는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걷고 있는 중인 것 같은데, 일행들을 다 보내고 뒤쳐져 있는 것이다. 잠시 지켜보고 있으니 물을 마시고 쉬어서 그런지 회복이 되어 가는 듯하다.



산을 내려와서 걸어가는 길은 이 프로그램 참가자들과 섞여서 걷게 되어 그동안 누리며 좋아했던 고즈넉한 분위기에서의 걷기는 어려워졌다. 그나저나 버스 2대는 족히 넘을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26코스 완주를 목표로 걷고 있다는 것이 놀랍다.



혼인지에 도착해서 간식도 먹고 잠시 휴식을 취했는데, 신발과 양말을 벗어 햇볕에 말리고 그늘에 앉아 있으니 잠시 누워 눈을 붙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혼인지 전설 내용 요약 : 혼인지는 제주시 삼성혈에서 솟아난 고, 양, 부 세 신인이 동쪽 벽랑국에서 온 세 공주를 맞아들여 혼례를 올렸다는 전설이 있는 연못이다. 옛날 세 신인이 자줏빛 흙으로 봉하여진 나무함이 동쪽 바닷가에 떠밀려와 이를 열어보니 그 안에는 돌함이 들어 있었다. 돌함을 열었더니 푸른 옷을 입은 세 처녀와 송아지·망아지와 오곡 씨앗이 들어 있었다. 이 세 여인은 벽랑국의 공주들로, 세 신인은 나이에 따라 세 공주를 맞아 혼인지에서 목욕하고 혼례식을 올렸다고 전해진다. 그때 나무함이 발견된 곳은 온평리 바닷가 ‘쾌성개’라 하며, 이것이 떠오른 곳을 ‘황루알’이라 한다.


이후에 온평포구까지 가는 길은 아기자기한 집들이 있는 마을 길을 지나며 걷는 재미가 있어서 시간이 잘 지나갔다.


3코스는 산길을 지나는 A코스와 해안을 따라 걷는 B코스로 나뉘어 있는데, 3-A 코스는 올레길을 걸으면서 처음으로 코스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속으로 투덜대며 걸은 코스이다.

개인적인 선호도가 다 다를 것이란 생각을 하면서도, 이 코스를 걸을 사람들에게 A코스는 절대 추천하지 않는다.


비추천 이유 : A코스가 더 걷기 어려운 길이라서 과감하게 선택을 한 것인데, 산길을 선택하면서 기대를 했던 것들이 없고, 걸으면서 볼 만한 것들도 별로 없다. 산길 사이의 포장도로를 지루하게 걸어가는 느낌을 쭉 가지고 걸었다. 포장도로다 보니 발바닥이 점점 아파 오기 시작했다. 중간에 오름이 2개 있는데 역시 무언가 큰 감흥을 주기에 부족해 보인다. 이 코스의 추천 장소는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으로 관람을 안 한 사람은 꼭 관람을 추천한다. 근데 올레길을 걸으면서 가기보다는 다른 여행에서 들르는 것을 더 추천한다.


오늘은 3코스 중간 A와 B가 만나는 부분인 신풍까지 걷고 내일 이어서 걷기로 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