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4코스 중간에 있는 게스트하우스를 숙소로 잡아 놓아 3코스 중간 지점 신풍까지 걸은 다음 버스를 타고 세화 2리까지 이동을 하였다. (버스 이동은 처음 도보로만 이동하겠다는 계획과는 다른 일인데~~) (* 세화는 올레 20코스 제주 북동쪽 구좌읍에 있는 지명으로 더 잘 알려져 있으나, 이곳 서귀포시 표선면에도 같은 지명이 있다.)
그래서 오늘은 3코스 후반부와 4코스 전반부는 역 올레길을 걷게 되었다.
어제는 저녁 식사를 게스트하우스에서 했었다. 식사를 하면서 다른 게스트들과 인사를 나누고 여행의 감상을 나누는 것은 여행에서 느끼는 또 다른 재미이기도 한데, 코로나로 인한 집합 금지로 인원이 많으면 이런 일이 어려운데, 평일이라 게스트들이 많지 않아 식사를 같이 하게 되었다.
제주 게스트하우스에는 장기로 투숙하면서 제주의 생활을 즐기는 젊은이들이 의외로 많다.
어제 묵은 게스트하우스에는 장기로 묵는 젊은 게스트들이 3명, 스텝을 하면서 제주 한달살이를 두 달째 하고 있다는 젊은 스텝이 있었다.
직장을 잡고 사회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이런저런 경험을 해 보고 싶어서, 일을 하면서 여행도 할 수 있는 스텝을 하고 있다는 젊은이나 여행하다 뜻 맞는 친구가 되어 제주에서 경험하고 즐길거리를 찾아 즐기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젊은이들까지,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유쾌한 젊음을 보내는 것 같아 좋아 보이고 그 자유로움이 부러웠다. 그런데 술을 한잔하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들이 갖고 있는 불안감이나 기성 문화에 대한 답답함 등도 듣게 되어 기성세대로서 미안함도 느끼고 누구나 삶의 고단함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지금은 여유를 즐기고 있지만 또 시간이나 조직에 얽매여 정신없이 끌려다니듯이 살아가게 될 것 같다는, 주변에서 본 경험들을 마음속에 약간 체념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 안쓰럽기도 했다.
올레길을 걷고 있는 나와 달리 해안도로를 따라 도보여행을 하는 여행자와는 혼자서 여행을 할 때 식사의 메뉴의 선택 제한이나 홀로 먹는 외로움을 공유하기도 한다.
4코스와 3코스를 역 올레 하면서 가장 많이 접한 것은 수산이다. 정말 어마어마하게 많은 양식장들이 바닷가에 계속 줄이어 나타난다. 각각의 상호에 대형 마트와의 협력관계를 표시하고 있는 양식장들을 보면서 도시에서의 우리의 소비가 또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아침 길을 걸으면 그 길의 풍광을 혼자서 여유롭게 만끽하는 느낌이 참 좋다. 아침 산책하듯 가볍게 잘 포장된 길을 걸어 표선 해수욕장까지 걸어온다.
4코스 초반 코스는 포장도로를 걷게 되어 휠체어로도 이동이 가능한 구간이다. 무장애 여행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더 확산이 되어, 장애로 인해 여행을 하지 못하는 경우를 없애 나가는 사회적, 개인적 노력이 더 필요함을 생각하며 걷는다.
표선 해수욕장의 백사장은 원형으로 엄청 넓은 크기를 자랑하는데, 여느 해수욕장의 백사장에서는 보지 못하는 독특한 광대함을 느끼게 된다.
표선해수욕장을 살짝 지나 만난 둔덕에 놓인 벤치는 이날 오전에 만난 풍경 중 가장 가슴에 담아두고 오래 기억에 남는 풍경이다. 이 벤치에 앉아 한참이나 멍하니 쉬었다 갔는데, 힘을 턱 풀어버리니 마음에 꾹꾹 채워지던 것들을 텅 비게 해주는 편한 자유로움이랄까 하는 마음에 참 행복함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신풍신천 바다목장은 겨울철에 엄청난 규모로 귤껍질을 말려 파란 하늘 아래 온통 주황색으로 물든 들판과 바다가 어우러진 풍경이 압도적인 이미지를 만들어주는 사진으로 처음 접했던 곳인데, 바다와 어우러진 끝 모르게 넓게 펼쳐진 초원은 대단히 이국적인 느낌을 주고 걷고 있는 것을 감사하게 만든다.
어제 버스를 탔던 지점에 와서 다시 버스를 타고 걸어온 길을 돌아간다.
게스트 하우스로 돌아와 배낭을 메고 어제의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4코스 후반부 길을 걸어간다.
아, 그런데 아직 아침 식사를 하지 못 했다. 표선에서 먹으려 했는데 그냥 지나치고 나니 시간이 많이 지났다.
배가 고파지기 시작해서 식사를 할 만한 곳을 찾으며 걸어가는데 마땅치가 않아 계속 걸어가는데, 고깃집 메뉴에 두루치기가 적혀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보통 두루치기를 1인분을 해 주지 않기 때문에 선택하기가 어려운 메뉴인데, 비용을 더 내더라도 아니 2인분을 시켜야 하면 그렇게라도 시킬 요량으로 물어보니, 상차림 비용을 조금 더 받고 주문이 가능하단다.
그래 아침부터 부지런히 걸은 나를 위해 먹고 싶었던 두루치기와 맥주를 시켜 먹으니 맛도 좋거니와 늦게 먹는 식사의 행복감이 밀려오는데, 앞을 보니 바다 전망도 좋은 곳이었다. (ㅋㅋ오전 내내 바다를 보며 걸었는데~ )
신흥리 마을길을 걷고 있는데 선배로부터 올레 5코스 남원 안내소에 도착하면 자신의 지인에게 안부를 전해 달라는 전화가 걸려 온다.
올레길을 제집 드나들 듯 오가며, 얼마 전에는 제주에서 일 년 가까이를 살다가 올라간 지 얼마 되지도 않았으니 안부를 전할 만큼 긴 시간이 되지도 않았을 듯한데, 굳이 안부를 전하는 마음의 정이 나로서는 참 낯설다.
아무튼 올레 남원 안내소에 들러 인사를 하고 안부를 전하니 지인분도 반가운 마음으로 고마워하신다.
남원의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하여 씻고 공용공간으로 내려가니, 이중섭의 은지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있어 체험활동을 하나 하고 물어보니 영화 소품용으로 만들고 있다고 한다. 낯선 풍경이라 한참을 관심 있게 들여다보다, 숙소의 게스트들과 반주를 곁들여 저녁 식사를 하며 서로의 여행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데, 장기 투숙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 이야기를 들어보니 직장 생활을 하다 잠시 쉬었다 가려고 왔는데, 이곳에서 안정되고 편한 느낌을 받은 게 너무 행복했어서 지금은 연차를 몰아서 쓰면서 묵고 있는 데, 딱히 뭐를 하지 않고 가만히만 있어도 좋아서 밤에 잠을 편히 자게 되었단다.
군 입대 전에 휴학하고 올레길을 걷다가 이 게스트하우스의 분위기에 반해 며칠 묵고 있다는 대학생의 이야기는 주인아저씨의 멋들어진 기타 연주와 노래가 만들어내는 낭만적인 분위기를 통해 쉽게 이해가 되었다.
방식은 달라도 삶의 속도를 늦추고 여유를 가지는 시간이 주는 편안함을 느끼면서 하루를 기분 좋게 마무리하며, 쉼이 있는 삶이 복지라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