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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깡통로봇 Jun 14. 2022

가뭄

곰처럼 버티며

보름쯤 시간을 넘기니

무기력으로 추락하던 마음에 

샘물 고이듯 기운이 조금 생겨났다.     


지난 시간들은 

만지면 눅눅한 냄새가 올라와

회갈색 바람으로 덮어두었다가

되짚어가 씹어보면

끈기 없는 면발처럼 

툭툭 힘없이 끊어졌다.     


게으름으로 기운을 내던 시간을 지내고

마당으로 나오니

긴 가뭄에 푸른 채소들은 다 축축 늘어져 있다.     


기운없는 나뭇잎, 처진 옥수수잎들보다도

제 힘으로 물을 끌어올리기 벅찬 작고 여린 작물들은 

비명을 지르기도 힘겹다.     


뽑아내도 뽑아내도 

존재감을 빛내던

밭 고랑마다의 잡풀들은 

메마른 시간에도 

지치지 않는 생명력을 보여준다.      


악다구니를 무기로

제 이익을 만들어가는 이들은

가뭄으로 메마른 가슴에 상처를 주는 것으로 

존재감을 빛내려니,

뿌려놓는 저주의 말들이 자신을 얽매어 

제 추악함을 볼 눈마저 잃게 한다.     


게으르게 늘어졌던 시간이 

여린 것들의 생명을 담보로 한 것이었다면

무책임한 일이었음을 부끄러워하며

호스를 연결하여 물을 뿌린다.     


찔끔 물을 받아먹고도 

초록 웃음 살짝 빛내는 잎새들을 보면서

오랜 가문만큼, 흡족한 비를 

비를 기다려본다.




* 이미지 출처 :  Pixabay (by 11957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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