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깡통로봇 Jul 18. 2022

멈춤

1. 골목길이 막혔다.   

  

경적이 길게 이어지고, 운전자는 창문을 내리고 답답한 표정과 불만을 여지없이 드러내지만 자기가 봐도 피할 길은 없어 보이니 딱한 노릇이다.

박스와 폐휴지를 넘치게 실은 리어카 한대가 느릿느릿 지나가는 좁은 골목에 뒤따라가는 자동차가 조바심이 났다.

이어지는 뒤차에서 운전자가 내리더니 리어카를 향해 빨리 걸어간다.

“뒤에서 미니 조심하세요.”

골목 끝까지 리어카를 밀어 놓고 뛰어 돌아오는 골목에는 차가 줄이어 늘어섰다.

아무도 경적을 울리지 않았고

뒤 운전자는 엄지를 치켜들기도,          



2. 엘리베이터는 점검 중      


점검 중이라는 빨간 깜빡임으로

출근 시간에

계단을 숨 가쁘게 내려온다.

‘아, 내려는 와도 올라는 못 가겠다.’

20층이 넘는 아파트 계단을 돌고 돌아

주차장에 도착하니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이 길다.          



3. 지하철 시위      


영상에 지하철 바닥을 기어가는 장애인 시위대가 나온다.

장애인 이동권 보장 요구에 지하철 운행이 멈추자  

출근이 늦어 고조된 불만의 표정들에 힘 입어

바닥을 기어가는 이들 위로

거칠 것 없이 험한 말을 뱉어내는 입들

“너희만 힘드냐, 다 힘겹게 살아간다.”

“사람들 불편하게 왜 돌아다니냐, 그냥 집에 있어라. “

힘든 자신의 일상에 쓸데없는 불편을 만드는 자들에 대한 분노일지 혐오일지,     


“교통에 불편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호소에 이은 시위자의 사과의 목소리 뒤로

“괜찮아요.”

울먹이며 하는 말이,

“미안해하지 않으셔도 돼요”

멈춰진 지하철과

안절부절못하는 시민 의식 속에서

울먹이며 하는 말이.


잠시의 멈춤으로 너의 바퀴가 구른다면

괜찮다 괜찮다,

눈물을 나누며 괜찮다고.         



4. 홍수 경보     


장맛비가 거칠게 쏟아붓더니

도로가 침수 위험으로

통제된다는 재난 문자가 연속으로 들어온다.     


비가 그치면

쌓인 토사를 긁어내고 물을 뿌려 청소된 길은

기억 없는 차들로 붐빌 것이다.           



5. 갇힌 세상에서     


선천적인 시각 장애를 가지고 있던 그가

다 클 때까지 장애를 갖지 않은 친구가 한 명도 없었다는 말을 할 때  

나도 자라면서 중증도의 장애를 가진 친구를 사귈 기회가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은 하늘은 줄기차게 비를 뿌려대고

끊겼던 길은 이어지질 않고 있다.

끊긴 길을 보고 나서야

멈추고 뒤를 돌아본다.

멈추고 돌아보지 않고서는 찾을 수 없는 길을.

매거진의 이전글 능소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