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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깡통로봇 Sep 04. 2022

주름

등자배기에 소금을 허옇게 들러 붙이던 더위도 

손등 툭툭 터뜨리던 추위도 

흐르고 흘러, 

이제

삶의 무게를 줄이며  

거죽만 남은, 

늙음으로 처진 

몸을 

조심스레 닦아 내려간다.     


밭이랑으로 접힌 주름마다 

수염 곱게 늘인 옥수수, 잎 넓게 퍼뜨려 온통 덮은 고구마, 가지 찢을 듯 매달려 빨갛게 빛나는 토마토가 자라나듯, 

시간을 넘어온 

저 접힌 그늘 속에서

내 유년이 꿈을 키웠으리      


하늘빛을 향해 손을 뻗어

쭉쭉 위로 

오르고 키워갈 때,

땅은 힘껏 몸을 당겨

흔들리지 않는 깊은 뿌리를 

넝쿨처럼 퍼뜨렸다. 

    

구르고 구르던 수레가 

담고 가던 버거운 무게에 

걸음 간격이 멀어지면, 

제 속도를 미처 따라오지 못한 

지난 시간은

머릿속 주름을 펴서 

사이사이 접어두었던 

무거웠던 기억들을 떨어내

아픔의 찡그림도 웃음의 찡그림도 하나로 모아  

피부에 넣어 새겼다.     


옷으로 덮였던 

속살을 드러내고, 

중력을 넘지 못하고 흘러내린 시간을 

손끝으로 조심조심 문지르며

슬픔보다는 가볍게, 

힘을 빼고

씻겨 내려간다.     


더위를 몰아낸 긴 비가 그치자

높아진 하늘엔 

주름 잡힌 꼬릴 가진 빨간 잠자리가 

파란 물결 속을

높이 높이 올라

땅 무게에 잡히지 않는

날갯짓으로 난다. 




* 이미지 출처 : Pixabay (by Lu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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